배영목

조선은행은 일제 강점기에 이어 광복 후에도 중앙은행으로서 은행권 발행을 독점하고 있었고, 정부의 은행으로서 국고금을 관리하였고, 다른 금융 기관에 대한 자금 공급을 통해 은행의 은행 역할도 제한적이지만 수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선은행이 새로 출범한 대한민국의 중앙은행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에는 적지 않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일제 강점기에 조선은행은 일본 대장성의 허가를 받아 은행권의 발행 한도를 조정하였지만 광복 후에는 이를 대신할 기구나 장치가 마련되지 않았다. 둘째, 조선은행은 은행권의 발행과 회수를 담당하고 있는 유일한 발권 은행이었지만 일반 은행 업무를 겸하고 있어 일반 은행과 경쟁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은행법에는 조선은행이 다른 은행을 통제할 근거가 전혀 없었다. 셋째, 조선은행은 광복과 분단으로 정리해야 할 많은 지점과 인원이 있었고, 또한 회수 의문인 대일 채권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이에 대한 정리나 청산 없이는 새로 출범한 대한민국의 중앙은행 역할을 원활하게 수행할 수 없었다.

조선은행이 중앙은행 제도를 재정비하고자 1947년 4월 「중앙은행 설립 대강」이라는 견해를 발표하였다. 과도 정부는 금융 법규 조사 위원회를 설치하여 중앙은행법 제정에 들어갔으나 이 위원회는 정부 수립으로 해체되었다. 조선은행은 행내에 특명 위원회를 두어 중앙은행 제도에 관한 연구를 계속하여 1948년 말 그 초안을 만들어 정부, 국회, ECA 기타 기관에 보내었다. 한편, 대한민국 정부는 재무부 내에 재정 금융 위원회를 설치하고 재무부 금융 분과 위원회로 하여금 앞서 제시된 조선은행안을 토대로 하여 1949년 초에 정부의 최종안을 결정하였다.¹⁶⁴⁾ 한국은행, 『한국은행 40년사』, 1990, p.19.

그런데 정부가 입법 절차를 밟기에 앞서 1949년 6월경에 미국의 전문가 자문을 요청하자 뉴욕 연방 준비은행 국제 수지 국장 브룸필드(A. I. Bloomfield)와 같은 은행 감사 국장 젠센(J .P. Jensen)이 1949년 9월 파견되었다. 이들은 5개월 간 한국의 경제 상태 및 금융 제도 등을 조사하고 조선은 행안과 재무부안을 참고하고 정부 당국, 금융계 대표, ECA 당국 등과 협의하여 1950년 4월에 「중앙은행 개편에 관한 건의서」와 「일반 금융 기관 개편에 관한 건의서」라는 안을 제출하였는데, 이것은 1950년대 이후의 통화·금융 체제의 중심이 되는 「한국은행법」과 「은행법」의 기초가 되었다.¹⁶⁵⁾ 한국은행, 앞의 책, pp.19∼21.

이 안은 재무부 재정 금융 분과 위원회에서 수정되고 다시 재무부, 법제처, 조선은행 삼자의 특명 위원회에서 재수정된 이후 3월 14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치고 국회를 통과하여 5월 5일에 공포되었고, 5월 23일에 시행령이 공포되었다. 5월 11일에 「한국은행 설립에 관한 건(대통령령 350호)」이 공포되어 설립 위원회가 설치되었다. 6월 5일에는 금융 통화 위원회가 설치되고 정부의 출자(15억 원)가 완료되고 조선은행의 자산 부채의 승계가 이루어져 6월 12일에 대한민국의 중앙은행으로서 한국은행이 출범하게 되었다. 초대 총재로는 조선은행 총재이었던 구용서(具鎔書)가 임명되었다.¹⁶⁶⁾ 한국은행, 앞의 책, pp.22∼24.

한국은행은 통화 가치의 안정, 은행 신용 제도의 건전화, 자원의 효율적 이용 도모를 목적으로 내세우고 설립되었다. 이 은행은 은행권 발행, 금융 기관으로부터의 예금 수입과 지불 준비 예금 수입 및 금융 기관에 대한 대출 업무, 국고 업무 및 정부 대행 기관에 대한 여수신 업무, 통화 금융 정책을 위한 공개 시장 조작 업무, 금융 기관의 여·수신 대출 한도 등 은행에 대한 특별 통제, 외환 업무와 이에 부수되는 외환 정책의 운용, 은행 감독 업무 및 검사 업무, 국내 통화 및 신용 정책상 필요한 금융 통화 위원회의 지시에 의거한 통화 금융 정책 업무 등을 신설된 금융 통화 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수행하기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