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8권 화폐와 경제 활동의 이중주
  • 제5장 대한민국의 화폐
  • 4. 돈의 관리와 가치
  • 누가 돈을 관리하는가
배영목

은행권의 발행 기관이 광복 직후에도 마찬가지로 조선은행이었지만 화폐 발행권의 소재는 정치적 변화에 따라 달라졌다. 즉,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 정부 또는 그를 대신하는 조선 총독이 화폐 발행권을 행사하고 있었고, 광복 직후부터 1948년 8월 15일 이전까지는 미군정이 화폐 발행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한 1948년 8월 15일 이후에는 한국 정부가 화폐 발행권을 행사하고 그 업무를 조선은행이 담당하고, 1950년 6월 1일부터 신설된 한국은행이 담당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한국이 명실 공히 화폐 주권을 회복하는 것은 대한민국 정부가 된 이후이지만 그 업무는 1950년 6월 이전에는 조선은행이, 그 이후부터는 한국은행이 담당하였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은행법」 ‘제4조 한국은행의 업무’에 의하면 은행권 발행은 한국은행이 독점하고 한국은행권은 유일한 법화가 되고 그 형식은 정부의 승인 하에 금융 통화 위원회가 결정한다. 그리고 한국은행이 지급 준비금 인출에 대비하여 단순히 보유하고 있는 한국은행권은 물론 자산 부채 어느 것으로도 인정되지 않는다.192) “제1절 은행권의 발행 제47조 : 화폐의 발행권은 한국은행만이 가진다. 제48조 : 한국은행이 발행한 은행권은 대한민국 내에 유일한 법화로서 공사 일체의 거래에 무제한으로 통용된다. 제49조 : 한국은행은 정부의 승인을 얻어 금융통화위원회가 정한 바에 의하여 여하한 규격, 모양, 권종의 은행권이라도 발행할 수 있다. 제50조 : 한국은행이 보유하는 한국은행권은 한국은행의 자산 또는 부채가 되지 않는다”(한국은행, 앞의 책, 1990, p.630).

1950년 5월 새로 제정된 「한국은행법」에 근거하여 설립된 한국은행은 대한민국의 중앙은행으로서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이 은행은 조선은행과 달리 다른 은행과 경쟁하지 않고 은행의 은행으로 다른 은행을 감독하고 보호하여 대한민국의 화폐에 대한 신뢰를 높여야 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었다. 이와 같이 대한민국에서 화폐를 적절히 공급함으로써 경제 활동을 원 활히 하는 동시에 그 가치를 안정시켜야 하는 역할이 한국은행에 부여되는 동시에 이의 활동을 결정하는 기구로 금융 통화 위원회가 설치되었다. 금융 통화 위원회는 미국의 연방 준비 이사회 제도를 모방하여 도입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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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금융 통화 위원회 회의 기록화
제1차 금융 통화 위원회 회의 기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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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행은 광복 전에는 일본 대장대신, 광복 후에는 미군정청, 정부 수립 후에는 한국 정부의 재무부 장관의 지시에 따라 대출이나 금리를 조정하여 왔지만, 한국은행은 조선은행과 달리 금융 통화 위원회라는 상대적으로 중립적이고 민주적인 통화 관리 기구의 통제를 받게 되었다. 정회원 7인은 재무부 장관, 한국은행 총재, 금융 기관 대표 2인, 대한 상공 회의소, 농림부 장관, 기획처 경제 위원회 추천 각 1인으로 구성되고 재무부 장관이 위원장이 되었다.

금융 통화 위원회 의장은 재무부 장관이 맡았지만 정부 및 민간의 각 기구의 대표가 참여하는 민주적 기구로서 금융 통화 위원회가 출범하였다. 이 기구는 형식적으로 독립성을 가지고 있었으나 정부의 요구에 순응한 결과로 정부의 재정 적자를 보전하면서 은행의 대민간 대출을 적극적으로 억제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에 그쳤다. 1950년대 통화 남발의 주원인이 전쟁 중에는 전비 지출과 재정 적자, 전후에는 국방과 경제 재건을 위한 재정 적자에 있었기 때문에 재정 적자로 인한 통화 남발은 1957년부터 정부 스스로 재정 안정화 계획을 강력히 추진하기 이전까지는 지속되었다.

화폐의 제조는 조폐 공사가, 화폐의 발행은 한국은행이, 화폐량의 통제는 금융 통화 위원회가 맡게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직접 은행권 제조 단계부터 통제하는 전대미문의 일이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1954년 2월 11일 통화 팽창에 따른 인플레이션을 수급하기 위해 대통령의 특별 명 령으로 은행권 제조를 중단시켰다. 대통령의 명에 따라 경상남도 경찰국장이 경찰관을 대동하여 은행권 인쇄 기기 및 완제품과 반제품을 모두 창고에 입고하고 봉인시켰다. 이제 은행권 제조는 대통령의 승인을 받아야 하였다. 같은 해 6월 18일부터 반제품의 인쇄가 가능하였고 작업 중지 명령도 일부 해제되어 10원권과 100원권 인쇄가 재개되었으며, 10월 말에는 봉인도 해제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1960년 4월 혁명으로 물러나기까지 은행권의 제조는 한국은행이 대통령의 승인을 받아야만 가능하였다.193) 한국조폐공사, 『한국화폐전사』, 1993, p.374.

1962년 5월 군사 정부에 의한 한국은행법의 개정으로 재무부 장관이 재의 요구권을 가지면서 통화 금융 정책에 관한 권한이 사실상 재무부에 귀속되었다. 그에 따라 화폐량에 대한 통제는 사실상 정부에 귀속되었다. 이 시기에 은행도 국유화되어 재무부가 중앙은행과 은행을 완전히 장악하여 통화량 통제에 관한 전권을 행사하게 되었고, 금융 통화 위원회는 금융 통화 운영 위원회로 격하되었다. 한국은행은 이를 계기로 통화 관리를 통한 물가 안정보다는 정부의 재정 적자를 보전하는 것뿐 아니라 경제 개발에 필요한 투자 자금, 이른바 성장 통화를 제공하는 것에 주력하게 되어 화폐량에 대한 통제력이 더욱 약화되었다.

1987년부터 민주화와 금융의 자율화, 그리고 개방화라는 흐름 속에서 중앙은행의 독립 문제가 표면화되고, 오랜 논란 과정을 거쳐 1997년 외환 위기 직전에 한국은행법이 여섯 번째 개정되었다. 이 개정에서 중앙은행의 설립 목적이 물가 안정으로 명시되고 금융 통화 운영 위원회가 금융 통화 위원회로 격상되고 위원장은 재무부 장관에서 한국은행 총재로 바뀐 대신에 은행 감독원이 통합 금융 감독원으로 편입되었다. 경제 기획원과 재무부가 통합한 재정 경제원의 장관이 재의 요구권을 가지되 제한적으로 행사하게 하였다. 그 결과로 한국은행이 화폐 발행 기관일 뿐 아니라 통화 정책에서 있어서 중심적인 위치에 있게 되었으나 아직은 다른 선진국과 비교될 만큼의 독립성을 가진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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