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9권 옷차림과 치장의 변천
  • 제1장 우리 옷의 기본형과 시대별 변천
  • 4. 조선시대 남녀 평상복의 변천
  • 여자 평상복
  • 독특한 형태의 치마
김문자

‘치마’라는 용어는 1419년(세종 2)에 ‘赤亇’라는 표기로 처음 등장한다. ‘赤’은 ‘텨’이고 ‘亇’는 ‘마’여서 ‘텨마’이고, 『훈몽자회』에 기재된 ‘쵸마’, ‘츄마’가 최초의 한글 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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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란치마
스란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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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한씨(16세기 후반) 묘에서는 솜치마 다섯 점, 겹치마 한 점, 스란치마(금박의 스란을 댄 치마) 한 점이 출토되었다. 겹치마는 거의 훼손된 상태이나 치마 길이가 82∼100㎝에 이르러 평상용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스란치마는 치마 자체에 스란과 도련선 장식을 직금한 홑치마이 다. 현재 여섯 폭만이 남아 있으며 총 길이가 127㎝에 이른다.

남양 홍씨(16세기) 묘에서 출토된 치마는 치마를 긴 길이로 완성한 후 지금의 다트(dart) 주름을 잡는 식의 독특한 형태이다. 앞부분을 짧게 하고 양옆에서 뒤쪽으로 갈수록 지면(地面)에 끌리는 부분을 많게 하여 착용할 때 치마선이 우아하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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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복 치마
예복 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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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살펴본 두 유물로 미루어 볼 때, 의례용 치마는 계절을 막론하고 홑치마로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평상용보다 30㎝가량 길게 만든 후 앞부분을 다양한 덧주름으로 처리하여 보행할 때 지장을 주지 않게끔 하였다.

조선 초·중기에는 겉치마로 솜치마, 솜누비치마, 겹치마, 겹누비치마 등을 입었으나 후기에 와서는 솜치마, 누비치마 등은 사라지고 주로 겹치마만 입었다.42)김인숙, 「포제와 치마」, 『한국의 복식』, 복식 문화 연구회, 1998, 202∼203쪽. 18세기 이후 예복으로 청홍 치마를 겹쳐 입었으며, 19세기에는 일반 치마 외에 장치마, 위치마, 스란치마, 대란치마 등의 기록이 보인다.

일반적으로 왼쪽 여밈이 상류층 부녀자의 착장 방법으로 알려져 있으나 출토 유물은 오히려 반대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43)박성실, 「조선조 치마 재고-16세기 출토 복식을 중심으로-」, 『복식』 30, 한국 복식학회, 1996, 295∼306쪽. 따라서 출토 유물의 치마 여밈은 오른쪽 여밈이며 주름 방향은 현재와 같다. 치마의 색은 연령에 따라 다른데, 어릴 때부터 출가해서 아이를 낳을 때까지는 다홍치마를, 중년이 되면 남치마를, 노년이 되면 옥색이나 회색 계통을 입었다. 그러나 내외(內外)가 공존할 때는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큰일이 있을 때는 남치마를 입었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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