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9권 옷차림과 치장의 변천
  • 제3장 궁궐 안 특별한 사람들의 옷차림
  • 1. 궁궐 안의 일상 옷차림
  • 절대 지존, 왕
임재영

왕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글을 읽고 아침 식사 전에 대비나 대왕대비 등 웃전에 아침 문안 인사를 하고, 아랫사람으로부터 문안 인사를 받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아침 식사 후 편전(便殿, 왕이 평상시 거처하는 궁전)에 나가 승지(承旨)로부터 국정을 보고받는 것으로 나랏일을 시작하는데 공사 구별 없이 일과가 진행된다. 대신(大臣)들과 접견하거나 경서(經書) 강의를 받으며 국정에 관계되는 많은 의식과 행사에 참석한다. 행사와 의식에 참석할 때는 격에 맞는 차림새를 하여 법도와 위엄을 갖추었다. 왕의 생활은 공적인 의미가 더 많아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는 늘 관복을 입어 격식을 갖추었다.

침전(寢殿)에서 일어나 하루를 준비하면서 일상 관복(常服)인 익선관(翼善冠)을 쓰고 곤룡포(袞龍袍)를 입는다. 사적인 공간인 침전 밖은 왕의 공적인 공간이기에 왕은 권위와 위엄 있는 모습으로 공인으로서의 차림을 하게 된다. 상복은 일상적인 정무를 보는 경우 외에도 간단한 의식에 참여할 때에 입었는데, 이는 상복을 간단한 기본 예복의 의미로 입었음을 말해 준다.

중국의 당관(唐冠)에서 연유한 익선관은 검은색 모자 위에 위를 향한 매미 날개형의 뿔이 있는 모습으로, 뿔은 큰 뿔에 작은 뿔이 겹쳐져 있는 형 태이다. 곤룡포는 깃이 둥글고 오른쪽 어깨에서 여밈 단추로 여미는 형태로 홍색이며 가슴, 등, 양어깨에 금색의 오조원룡보(五爪圓龍補) 흉배(胸背)를 달았다. 여기에 같은 색 감으로 바탕을 싸서 만든 다음, 기다란 띠 중간중간에 금색과 옥으로 장식한 허리띠인 옥대(玉帶)를 띠고 검은색 가죽으로 만든 장화 형태의 흑궤자피(여름에는 흑칠피)를 신었다. 오조원룡보는 발톱이 다섯 개인 용을 원형의 상태로 배열하여 수를 놓은 것이다. 우리나라 전통 의복의 깃 형태가 직선인 것과는 달리 둥근 깃의 형태인데 이러한 포를 단령(團領)이라고 한다. 단령은 당나라에서 신라로 전래된 관복으로, 이후 조선시대까지 왕뿐 아니라 신하들도 일상적인 관복으로 계속 입었다. 다만, 대한제국 때 고종이 황제가 된 후에는 곤룡포의 색이 홍색에서 황색으로 바뀌었다. 고종 이전의 조선 왕은 중국의 황제와 동등한 지위를 누릴 수 없었기 때문에 황제의 색인 황색 옷을 입지 못하다가 고종이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고치고 황제에 등극하면서 황색 곤룡포를 입은 것이다. 이는 조선과 중국의 외교 관계를 반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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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고려시대에는 오사고모(烏紗高帽)에 상색(縔色)의 포를 입었다. 1123년(인종 원년)에 고려를 방문한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이 쓴 『고려도경(高麗圖經)』의 기록을139)『고려도경』 권7, 관복. 통해 검은색으로 된 높은 모자에 담황색의 소매통이 좁은 포를 입은 모습을 유추할 수 있다. 따라서 조선시대와 유사한 모습이다. 다만, 조선시대에는 홍색의 포를 입은 데 반해 고려시대에는 황색 계열을 입었다는 점에서 중국과의 외교 관계에 있어서 조선과는 달리 자주적이고 당당했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왕위를 계승할 왕세자(王世子)는 대부분 왕의 맏아들인 원자가 책봉되는데 원자는 후계자로 확정된 후 대개 일고여덟 살에 책봉례(冊封禮)를 통해 왕세자로 공표된다. 왕세자로 책봉되면 그때부터 왕으로서 갖추어야 할 수련이 시작되어 일상생활이 이에 맞추어 진행된다. 왕세자의 일상생활은 왕보다는 비교적 여유롭다. 아침저녁으로 웃어른께 문안 인사를 드리는 것과 공부가 하루 일과의 전부이다. 그 중 특이할 만한 점은 아침저녁 왕의 수라상을 살피는 시선(視膳)과 부모의 약을 먼저 맛보는 시탕(侍湯)이다. 문안으로 시작되는 일과는 아침 식사 후 곧이어 아침 공부인 조강(朝講), 낮 공부인 주강(晝講), 저녁 공부인 석강(夕講)으로 이어진다. 이 밖에도 틈틈이 왕세자 교육을 담당하는 시강원(侍講院) 관원을 불러 공부하는 소대(召對)와 밤의 야대(夜對)가 있다.140)김문식·김정호, 『조선의 왕세자 교육』, 김영사, 2003, 213쪽. 왕세자는 일상적인 일과 외에는 왕이 참석하는 국가 의례 행사나 연회에 함께 참석한다. 간혹 왕과 함께 능행(陵幸)을 가거나 사냥을 겸한 군사 훈련인 강무(講武)에 참석하여 궁궐 밖 바람을 쐬기도 하고, 다른 형제들과 어울려 활쏘기와 격구(擊毬)를 즐기기도 한다.

경복궁에서 왕세자의 거처는 자선당(資善堂)으로 궁궐의 중심 건물인 근정전(勤政殿)의 동쪽에 위치하여 동궁(東宮)이라고 한다. 자선당은 왕세자의 공식 활동 공간으로, 부속 건물로는 교육과 보필이 이루어지는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과 경호 기관인 익위사(翊衛司)가 있다. 조선 초에는 왕세자를 위한 교육 제도인 서연(書筵)을 담당할 기관이 설치되지 못하다가 세조 때 세자 교육 담당 관청으로 세자시강원이 설립되었다. 유교 경전과 역사 강의 및 유교 도덕 교육이 이루어졌으며 학문적·도덕적 자질 함양에 주안점을 두었다.

왕세자는 차기 왕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왕과 동일하게 익선관을 쓰고 곤룡포를 입었다. 다만, 왕과 차이를 두어 곤룡포의 색이 흑색이고, 흉배의 무늬 또한 용의 발톱이 네 개인 사조원룡보이다. 궁궐에는 왕세자 이외에도 왕세자로 책봉되지 못한 대군과 군이 있는데 이들은 열 살 이후에는 보모상궁과 함께 궁궐 밖으로 독립을 한다. 이들은 궁궐 안에서도 일상복 차림을 하는데, 왕의 평상복이 일반 사대부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듯이 일반 사대부가의 어린이와 같은 옷차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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