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9권 옷차림과 치장의 변천
  • 제5장 전통 사회의 패션 리더들
  • 2. 유행 스타일은 누가 어떻게 만들었을까
  • 보여 줄까, 말까
이민주

인간이 옷을 입으려 하는 욕구 중에는 노출과 은폐라는 서로 양면적인 기능이 있다. 복식은 신체 노출에 대한 수치심과 생식 기능의 중요성으로 성적 기관을 은폐시키고자 하지만 수치심이 지나치게 강해지면 오히려 성적인 특징에 대하여 호기심과 매력이 부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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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조낭관계회도의 저고리
호조낭관계회도의 저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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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를 위하여 신체의 일부를 가리는 관습은 오랜 기간 계속되면서 사회의 규범으로 정착되었으며, 정숙성의 기준이 되었다. 또한, 관습적으로 가리던 부위는 이성으로 하여금 강한 성적 매력을 느끼게 한다.269)유송옥·이은영·황선진, 『복식 문화』, 교문사, 1995, 15쪽. 특히, 성적인 것을 노골적으로 보이는 대신에 암시함으로써 상대방에게 성적인 것을 상기시키고 계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게 한다. 여기에서 유행은 가치를 좀 더 높이기 위해 감추는 것과 감추던 것을 백일하에 드러내 놓음으로써 새로운 매력과 쾌락을 제공하게 된다.

우리나라 여성의 복식 구조는 상고시대 이후 큰 변화 없이 엉덩이를 덮던 저고리의 길이가 1537년(중종 32)을 전후하여 짧아지기 시작하였다.270)고복남, 『한국 전통 복식사 연구』, 일조각, 1986, 66∼67쪽. 충북대학교 박물 관에 소장되어 있는 명주 삼회장저고리는 길이가 49㎝로 허리를 살짝 덮을 정도이며, 1550년(명종 5)경의 호조낭관계회도(戶曹郎官契會圖)에 보이는 여인들의 저고리 길이도 허리에 이른다. 그 후 조선 후기로 들어오면서 점점 짧아진 저고리의 길이는 1920년대에 19㎝ 내외로 진동 길이보다도 짧아지기에 이르렀다. 저고리와 치마 사이로 허리 말기와 겨드랑이가 보이고 저고리의 품도 좁아져 섶이 여며지지 않으며, 앞이 벌어지고 소매통 역시 좁아져 입고 벗기조차 힘들게 되었다. 이처럼 우리 복식에서 노출은 오랜 생활 동안 기본적으로 착용하여 오던 의복이 생략되거나 간소화되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이익(李瀷, 1681∼1763)은 당시 짧아진 저고리의 형태가 부녀자들 사이에 널리 유행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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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업은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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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모를 쓴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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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부녀자의 의복은 짧은 적삼에 소매가 좁은데 어느 때부터인지 알지 못하며, 귀천이 통용하니 해괴한 일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습속에 젖어 예사로 알고 있다. 또 여름에 입는 홑적삼은 아래를 줄이고 위로 걷어 올려 치마 말기를 가리지 못하니 더욱 해괴한 일이다. 이는 복요(服妖)이니 마땅히 금하여야 할 것이다.271)이익, 『성호사설』 권16, 인사문(人事門).

또한, 허리에 잔주름이 촘촘히 잡혀 있는 치마의 겉자락을 가슴 앞으로 잡아 당겨 입는 동시에 치마를 걷어 올려 허리끈을 맴으로써 치마의 길이는 짧아지고, 엉덩이는 불룩하고, 아래로 내려가면서 조금씩 좁아지는 ‘하후상박’형의 새로운 스타일이 형성되었다. 더욱이 짧아진 치마 밑으로 단속곳, 속바지 등 속옷의 노출은 의복의 단조로움에 의해 둔감해진 성적 충동 을 자각시켜 여성을 매력적으로 만들었다. 이로써 기생, 나아가 반가 부녀자와 일반 부녀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똑같은 스타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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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연군주 저고리
청연군주 저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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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우리 복식에서의 노출은 일정 기간 동안 익숙하게 받아들이던 형태의 범위를 벗어나 극단의 단소(短小) 경향과 넓이의 축소로 표현되었다.272)김영자, 「한국 복식미의 연구-의례관과 표현미를 중심으로-」, 『복식』 16, 1991, 2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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