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9권 옷차림과 치장의 변천
  • 제5장 전통 사회의 패션 리더들
  • 3. 사대부가의 차림새
  • 뒤가 끌리는 치마 주리군
이민주

우리나라의 치마는 구성이 단순한 반면, 길이나 색상, 입는 방법이 다양하여 착용자의 패션 감각을 돋보이게 할 수 있다. 치마는 여성들의 가장 대표적인 하의로 치마의 길이에 따라 땅에 수척이 끌리는 주리군에서부터 밑단을 균일하게 접어 올린 접음 단 장식의 치마와 복부 부분을 접어 박거나 다트 주름을 이용하여 앞 길이는 짧게 하고 뒤 길이는 긴 트레인을 연상시키는 치마 등 다양한 종류가 있었다. 이 밖에 직금단이나 스란단으로 장식단을 만들어 치마를 한층 화려하게 하는 예장용 치마는 반가 부녀자들의 치 마를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요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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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선단 치마
금선단 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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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양로연도의 치마
화산양로연도의 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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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과천에서 출토된 청주 한씨의 스란치마는 치마의 중간 부위에 28㎝ 너비의 포도동자문의 쌍스란을 직금하였다. 또한, 선단과 밑단에도 치마와 대비되는 장식단을 사용하였다. 평산 신씨(1523∼1593) 묘에서 출토된 치마는 치마 전체에 금선단을 사용하였는데, 납작한 금사로 그려진 매화, 모란, 연화, 자미화 등 네 종류의 꽃과 만초 덩굴이 가득하다. 또한, 16세기의 유물로 확인된 남양 홍씨 묘에서 출토된 전단 후장형의 트레인이 긴 치마는 뒤를 강조하는 서양의 드레스보다 약 300년을 앞선 의례용 치마이다. 이 전단후장형의 치마는 긴 길이의 치마로 완성한 후 앞부분 상단을 접어 고정하여 보행에 불 편하지 않도록 길이를 조절한 방식이다. 따라서 예장용 치마임에도 불구하고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없기 때문에 한국 국학 진흥원에 소장되어 있는 화산양로연도(花山養老宴圖, 1519)에서 음식을 나르는 여인들의 모습에서도 전단 후장형의 치마가 보인다.

이처럼 금선을 두르는 것은 일부 특별한 날, 특별한 사람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흉년이 해마다 더 심해지는데도 백성들의 사치는 갈수록 더해 가고, 혼인의 폐단도 더 심하여 납채하는 물품이 적은 자는 5, 6필이고 많은 자는 10여 필이나 되며, 혼례하고 잔치할 때는 반드시 금선을 두른 저고리와 구슬 달린 치마를 입는다고 하였다.305)『명종실록』 권12, 명종 6년 9월 임인. 이는 신부뿐만 아니라 하객들도 모두 이런 치마를 입었음을 말하며, 사치가 대중화되어 다양한 치마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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