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09권 옷차림과 치장의 변천
  • 제5장 전통 사회의 패션 리더들
  • 4. 조선의 멋쟁이, 별감
  • 맵시 있는 홍의
이민주

홍의는 각 전의 별감이 착용하던 평상복으로, 『경국대전』 「예전」 의장조를 보면 예복으로는 자건(세자궁이면 청건), 청단령, 조아(絛兒)로 되어 있으며, 상복으로는 주황 초립, 직령으로 되어 있다. 그 후 『속대전』의 별감복은 자건에 홍직령을 착용하며, 대·소조의(大小朝儀)에는 녹직령을 착용하게 하였으나 교외에 나갈 때에는 홍색 철릭을 착용하게 하였다. 이렇듯 별감의 기본복은 단령, 직령, 철릭이고, 복색은 청색에서 홍색 그리고 녹색으로 변하고 있다. 그러나 1778년(정조 2) 용비(冗費)를 덜기 위해 홍의 한 가지 복색만 사용하게 하였다.

차비별감은 성내·성외·궐내에 거둥할 때 및 파문(把門) 때에는 다같이 두건에 홍색 직령을 착용하되, 다만 능행·교행 때는 천익(天翼, 철릭)을 착용한다. 무예별감은 전좌·거둥 및 능행·교행을 논할 것 없이 천익·초립·호수(虎鬚)를 착용하고, 시위 이외의 파문 때는 두건·천익을 착용한다.317)『정조실록』 권5, 정조 2년 4월 계사.

전통 사회 우리나라의 복색은 순수함의 발로인지, 색금(色禁)에 따른 결과인지, 잦은 국상(國喪) 때문인지, 아니면 염료가 부족해서인지 한 가지로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흰색 옷이 기본이다. 따라서 조용하고 은근하며 수수한 아름다움이 우리 민족을 대변하고 있다.

한편, 별감의 복색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홍색이다. 전통 사회에서 홍색 은 진상하는 복색으로 위로 1품부터 아래로 유음 자제(有陰子弟)와 부녀에 이르기까지 속옷 외에는 홍색 상의의 착용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그 밖의 대소 남녀의 의상도 일체 금지하였다.318)『세종실록』 권112, 세종 28년 5월 임진. 그러나 어의를 비롯하여 재상들도 홍색의 착용을 좋아하여 값이 비쌀 뿐 아니라 염료에 대한 폐단까지 생기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감은 직령이든 철릭이든 간에 홍색 한 가지로 입게 하였으니 어디를 가든 눈에 띄는 특별한 복색이 되었을 것이다.

유숙(劉淑, 1827∼1873) 작품이라고 전해지는 대쾌도(大快圖)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복색을 보면, 흰색 바지저고리, 흰색 바지에 연갈색과 연남색 저고리가 대부분이고 그 위에 연남색의 창옷을 착용하고 있어 침착하고 소극적인 인상을 주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역전시키고 활기와 강렬함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별감의 복색이다.

확대보기
대쾌도
대쾌도
팝업창 닫기

「한양가」에 나오는 별감의 복색을 자세히 살펴보자.

다홍 생초 고운 홍의 숙초 창의 받쳐 입고

보라 누비저고리에 외올뜨기 누비바지

양색단 누비배자 전배자 받쳐 입고

금향수주 누비토수 전토수 받쳐 끼고.

가장 겉에 입은 홍의는 다홍 생초로 되어 있고 안에는 숙초 창의를 받쳐 입고 있다. 생초는 정련을 하지 않은 것으로 올이 꼿꼿하여 힘이 있고 정형성을 과시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에 반해 숙초는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장점이 있으므로 숙초를 입고 생초를 입어야 옷의 맵시가 그대로 살게 된다. 더욱이 신윤복의 검문, 유곽쟁웅, 주사거배(酒肆擧盃) 와 유숙의 대쾌도 등의 풍속화에 보이는 별감의 복색은 겉의 홍색과 안의 청색이 강한 대비를 보여 주고 있어 더욱 강렬함을 느끼게 한다. 당시 일반인들의 복식에 비해 뛰어난 맵시와 색상의 화려함을 보이고 있는 별감의 복식이 당시의 패션을 선도하고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확대보기
대쾌도 부분
대쾌도 부분
팝업창 닫기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