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0권 자연과 정성의 산물, 우리 음식
  • 제3장 특별한 날, 특별한 음식
  • 2. 생일날 잘 먹으려고 이레 굶는다
  • 해마다 맞는 생일, 생일상
윤성재

생일은 사람이 태어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아기가 출생하여 세 살이 될 때까지는 돌이라고 하고 이후부터는 생일이라 한다. 손아랫사람인 경우에는 생일, 손윗사람은 생신(生辰), 임금에게는 탄일(誕日)·탄신(誕辰)이라고 하였다. 생일은 자신이 태어난 기쁜 날이라기보다는 자신을 위해 고생하신 부모를 생각하는 날로 생각하여 자기 스스로 생일상을 차려 먹는다거나, 부모가 이미 돌아가신 경우에는 생일상 차리는 것을 꺼리기도 하였다.148)정자(程子)가, “사람이 부모가 없으면 생일에 마땅히 갑절이나 슬퍼해야 할 것이니, 다시 어찌 차마 술을 갖추고 풍악을 베풀어 즐거움을 삼겠느냐.” 하였다. (『성호사설(星湖僿說)』 권13, 인사문(人事門) 하생조(賀生條)) 유희춘이 본인 스스로 생일을 챙기지는 않고, “자식들이 차리기 때문에 그냥 두었다.”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고려시대 왕실에서는 임금이나 태자의 생일을 절일(節日)이라 하여 천 춘절(千春節)이나 성평절(成平節), 함녕절(咸寧節) 등으로 생일에 이름을 붙이고, 축수도량(祝壽道場)과 성대한 잔치를 베풀어 축하하였다.149)『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권75, 예고(禮考)22, 부탄일(附誕日). 하지만 고려 현종의 경우와 같이 생일에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신하들의 축하를 일절 금지하고 연회도 받지 않으며, 다만 축수도량만 베푼 경우도 있었다.150)『고려사』 권4, 세가4, 현종 3년 6월. 그런데 고려시대에 왕의 생일에는 국가 행사로서 축하 잔치를 하였지만 일반 민들도 생일잔치를 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다만 인간의 삶에서 생일은 가장 보편적인 기념일이기 때문에 생일을 의미 있는 날로 여겼을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면 왕의 탄일뿐 아니라 양반가나 일반 민의 생일잔치도 흔히 벌어졌다. 조선 중기 유학자 미암 유희춘(柳希春, 1513∼1577)이 남긴 『미암일기(眉巖日記)』를 보면 당시 양반가에서 생일을 어떻게 축하했는지 알 수 있다. 유희춘의 생일은 12월 4일이고, 그의 부인 송덕봉은 12월 20일이 생일이었다. 1570년(선조 3)에는 적당히 중간 날인 12월 13일에 두 사람의 생일을 함께 축하하였고, 1572년(선조 5) 미암의 생일날에는 그가 대궐 안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6일에 생일상을 차렸다. 여기서 미암은 “내가 서울에서 벼슬살이를 하면서부터 일찍이 스스로 생일잔치란 것을 해본 적이 없는데 이날만은 자식이 차리기 때문에 내버려 뒀다.”고 썼다. 이듬해 생일에는 외손녀인 은우(恩遇)가 두창(痘瘡)을 앓고 있어 생일상을 차리지 않았다. 생일상에는 술과 고기가 올라가는데 그것이 마마신을 화나게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대신 20일 부인의 생일에는 딸과 서녀(庶女)인 수복(壽福)이 부부에게 축수(祝壽)하는 술자리를 마련하여, 딸인 은우어미와 사위인 윤관중(尹寬中), 서녀 해복(海福)이 번갈아 헌수를 하고 과일상을 간략히 차렸다.151)유희춘(柳希春), 『미암일기(眉巖日記)』 기해년(1575) 12월 2일∼4일. 이로 보아 날짜를 반드시 지키지는 않았으나, 비교적 제 날짜에 생일상을 차리려고 노력하였으며, 환자가 있으면 생일상을 차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또 이러한 축하상은 자신이 차리는 것이 아니라 자식으로부터 받는 것으로 여겼다는 사실도 나타난다.

그렇다면 생일상에는 어떤 음식이 올라갔을까? 1575년(선조 8) 미암의 생일에 부인이 주과(酒果)를 차렸다고 간단히 기록되어 있으나, 그렇게 단순한 상차림은 아니었을 것이다. 우선 미암의 사위(서녀 해복의 남편)인 흥덕 현감(興德縣監) 김종려(金宗麗)는 미암의 생일 이틀 전과 송덕봉의 생일 전날에 생일상을 차리기 위한 찬물(饌物)을 보내왔다. 조카인 유광용과 미암과의 관계를 알 수 없는 이여수(李汝綏)도 미암의 생일을 위해 찬물을 보냈다. 사위인 윤관중과 서녀인 해명, 해성도 덕봉의 생일을 위해 찬물을 보냈다. 이를 정리하면 표 ‘1575년 유희춘가에서 받은 생일 찬물’과 같다.152)유희춘이 이즈음 받은 찬물은 더 많다. 가령 12월 3일에 해남 좌수나 별감이 큰 전복 다섯 곶이나 오징어 여섯 마리 등을 가져온 것 등이 그 예이다. 그러나 그렇게 받은 찬물이 생일이기 때문에 받은 것인지 일상적인 경제 행위인지 판별이 어려우므로 ‘생일이기 때문에 받았다’고 기록한 것만을 표로 작성하였다.

<표> 1575년 유희춘가에서 받은 생일 찬물
생일 당사자
(생일)
보낸 사람
(관계, 거주지)
받은 물목
유희춘
(12월 4일)
김종려
(사위, 흥덕)
-해산물 : 큰 조기 5속(束), 백새우 1두(斗), 대구 1마리, 민어 1마리, 굴비 5속, 생(生)숭어 10마리, 자해(雌蟹) 50개, 감태(甘苔) 20동
-고기 : 생노루 1두, 생 꿩(生雉) 5마리, 말린 꿩 2마리, 작은 송아지 1두
-과(果) : 약과 200잎(葉), 곶감 1접, 홍시 50개, 생밤 5되
-술 : 약주 3동이, 소주 2그릇
-꿀 : 2승(升)
이여수
(친구, 이진)
-해산물 : 껍데기 있는 생전복 30개, 껍데기 없는 생전복 20개, 낙지 10속, 굴 10사발, 감조개(蚶蛤) 1두 4되, 감태 20주지(注之)
유광용
(조카, 영광)
-해산물 : 큰 숭어 2마리, 굴 1그릇
-고기 : 생꿩 1수
송덕봉
(12월 20일)
김종려
(사위 ,흥덕)
-해산물 : 큰 조기 3속, 피조기 5속, 민어 2마리, 생숭어 5마리
-고기 : 노루 앞다리 2부, 생꿩 3마리, 소 뒷다리 1부(部)
-과 : 곶감 1접, 약과 152잎, 대계피(大桂皮) 51잎
-술 : 약주 2동이
-소금 5말, 참깨 5두
해명, 해성
(서녀)
-고기반찬(魚饌)
윤관중
(사위, 해남)
-숭어 4마리, 낙지, 석화

표를 살펴보면 주로 어육(魚肉)과 과실부터 소소한 꿀, 소금, 술 등을 받고 약과나 곶감도 온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해산물의 비중이 높은 것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찬물을 보낸 사위나 조카 등이 바닷가에 위치한 흥덕이나 해남, 영광 등지에 살고 있어서 비교적 손쉽게 구해 보낼 수 있었기 때문이며, 또 겨울철 날씨 덕분에 해산물이 상하지 않고 무사히 운반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미암과 덕봉의 생일에는 이러한 재료들로 풍성한 생일상을 차렸을 것이다. 하지만 미암이 쓴 일기에는 이것들로 어떤 음식을 장만하여 상을 차렸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조자호(趙慈鎬)가 1938년에 쓴 『조선 요리법(朝鮮料理法)』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각 계절에 따라 어른 생신상을 아침 밥상과 점심 장국상으로 나누어 대략적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겨울 생일인 미암과 덕봉의 생일상도 이와 비슷한 상차림이었을 것이다. 표 ‘겨울 어른 생신상 상차림’은 조자호의 『조선 요리법』에 나오는 내용이다.

생일상은 계절에 따라서 재료가 달라지나, 아침에는 흰밥과 미역국으로 생일을 맞은 당사자를 축하하고, 점심은 국수장국으로 손님을 대접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실제로 구한말 어른의 생신상을 차려본 노부인의 말에 의하면 아침상은 식구끼리 나눠먹는 상이기 때문에 점심상에 비하여 비교적 간소하였다고 한다.153)이규숙 구술, 김연옥 편집, 앞의 책, 136∼137쪽. 조자호가 제시한 생일상에도 아침상은 밥과 국, 김치를 제외하고 나물과 구이, 자반, 조치 등 여덟 종류의 반찬이 오른 반면, 점심 장국상은 장국이나 김치 외에 갖은 어육류와 과실 종류, 정과나 떡, 약식, 화채 등으로 화려하고 다채롭게 꾸민 것을 알 수 있다.

<표> 겨울 어른 생신상 상차림
겨울 아침
밥상 차림
1. 밥 2. 국(곰국) 3. 김치(나박김치, 햇깍두기) 4. 갖은 나물 5. 구이(갈비구이, 움파 산적, 너비아니) 6. 갖은 자반(어란을 곁들여 놓는다) 7. 갖은 장아찌 8. 조림(생선 조림) 9. 생선 조치나 명란 조치 10. 김쌈 11. 전골 : 갖은 전골
겨울 점심
국수장국상
1. 장국(국수장국, 만두) 2. 장김치 3. 찜(구자, 갈비찜, 떡찜이나 숭어찜) 4. 회(육회, 잉어회) 5. 생실과(배, 사과, 생률, 준시, 율란, 귤) 6. 갖은 숙실과 7. 갈랍(편육, 갖은 전유어, 족편) 8. 수란 9. 느리미 10. 잡채 11. 약식 12. 갖은 정과 13. 떡(갖은 떡에 웃기까지 한다) 14. 화채(식혜, 수정과, 원소병-하나는 생략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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