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0권 자연과 정성의 산물, 우리 음식
  • 제3장 특별한 날, 특별한 음식
  • 3. 국수는 언제 먹여 주나
  • 혼례와 혼례 음식
윤성재

추석이나 설날 등의 명절 때 일가친척들이 모이면 어른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그런데, 국수는 언제 먹여 주나?” 언제 결혼하느냐는 물음이다.

우리나라에서 혼례는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라 하여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통과 의례 가운데 하나로 여긴다. 혼례는 단순하게 남녀가 결합하여 새 가정을 이룬다는 것 이외에 가업을 계승하고 조상을 숭배하며 자녀를 낳아 집안을 번성하게 하는데 기본이 되는 의례이기 때문에 여느 행사보다 성대한 의식을 치렀다. 우리나라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짝을 지어 부부가 된다는 것은 양(陽)과 음(陰)이 만나는 것이기 때문에 양인 낮과 음인 밤이 만나는 시간, 즉 날이 저무는 무렵에 의식을 거행하였다. 여기서 어두울 무렵에 하는 예식이라는 뜻의 혼례(昏禮·婚禮)라는 말이 나왔다. 전통적으로는 혼례를 장가가기 혹은 장가들기(入丈家)라 하여, 신랑이 신부 집으로 가서 혼례를 치르고 최소한 3일을 지낸 후에 신부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혼인이 이루어졌다.156)예서에 따른 전통적인 의례, 즉 친영에 따른 혼인 절차는 이성임, 「정비된 혼인, 일탈된 성」, 『혼인과 연애의 풍속도』(국사 편찬 위원회 편), 두산동아, 2005 참고.

혼례는 혼담이 오가는 것에서 시작하여 근친(覲親)까지 길고 복잡한 의 례가 따른다. 이러한 절차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그 의례의 의미에 맞는 음식이 준비된다. 혼례 음식은 시대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이는데 고구려에서는 신랑 집에서 신부 집으로 돼지고기와 술만 보낼 뿐이지 재물을 보내는 예는 없으며, 신라에서도 혼인 의식에는 술과 음식뿐인데, 잘 차리고 못 차리는 것은 빈부에 따라 달랐다고 한다.157)『북사(北史)』 권94, 열전82, 고구려. 예를 들자면 신라 신문왕(재위 681∼691)이 일길찬 김흠운(金欽運)의 작은 딸을 왕비로 맞이할 때에는 비단 15수레, 쌀·술·기름·꿀·간장·된장·포·식혜 135수레, 벼 150수레를 납채(納采)로 썼을 정도로 호화로웠다.158)『삼국사기』 권6, 신라본기6, 신문왕 3년 봄 2월. 고려시대 혼례 음식의 구체적인 모습은 알 수 없으나, 다만 귀인이나 벼슬아치의 경우에는 예물을 쓰지만 서민들은 단지 쌀이나 술을 보내는 것으로 혼인식을 치렀다고 한다.159)서긍(徐兢), 『고려도경(高麗圖經)』 권22, 잡속1. 조선시대의 혼례 음식은 여러 기록을 통해 구체적인 실상을 확인할 수 있는데 납폐(納幣) 때의 봉채떡, 초례(醮禮) 때의 초례상, 잔치의 큰상과 입맷상, 현구고례(見舅姑禮) 때 드리는 폐백, 이바지 등이 대표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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