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0권 자연과 정성의 산물, 우리 음식
  • 제4장 명절 음식 , 그 넉넉함의 향연
  • 5. 삼복 무더위를 쫓는 개장국
  • 여름을 이겨내는 방법, 이열치열
이정기

개는 이미 신석기시대부터 인간이 사육한 최초의 가축으로 확인된다. 인간에게 길들여지기 이전에 개는 야생에서 활동하던 야견(野犬)이었을 것이다. 중국 신석기 유적지에서는 개의 뼈가 돼지의 뼈와 함께 많은 양이 발견되었는데, 이것으로 보아 개가 가축 중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주례』에도 식용 육축(食用六畜)으로 말, 소, 양, 닭, 돼지와 함께 개를 들고 있어 오래전부터 개를 식용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사마천의 『사기』 기록에서처럼 삼복에 개를 잡아 제사를 지내기도 하였다. 이처럼 개는 식용이나 제사의 희생물로 쓰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역시 식용하던 개가 오래전부터 존재하였다. 고려시대에는 더운 여름인 삼복에 관리들에게 3일의 휴가를 주었고, 삼복 중에는 공사를 금하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하였다. 관리들이 정무를 보거나 백성들이 국가의 역을 지기 힘겨운 삼복더위 때 관리들의 능률 향상이나 민심의 안정을 위해 이러한 조치를 내린 것으로 보인다. 삼복더위에 선비들은 대나무나 소나무의 푸른 그늘이 있고 그 옆으로 물이 흐르는 정자에서 더위를 식히면서 시를 짓곤 하였다. 그런데 정작 삼복에 먹는 음식에 대한 기록, 특히 개고기를 먹었다는 기록은 찾기 힘들다. 이는 통일 신라와 고려시대에 불교가 융성하여 개고기를 비롯한 육축 먹기를 꺼려하다가 원 간섭기에 몽고 사람들에 의해 다시 육식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다시 개고기를 먹게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고려사』 「열전」에 보면 충렬왕 때의 인물인 김문비(金文庇)라는 자가 항상 개를 구워 대나무 조각으로 털을 긁어내어 버리고 이를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고려시대보다 개고기 식용 사례가 더 많은데, 특히 조선 후기에 집중된다. 『동국세시기』에 보면, 복날에 개장국을 먹는 유래를 사마천의 『사기』에서 찾고 있다. 즉 진덕공 2년에 삼복 제사를 지냈는데, 성안 4대문에서 개를 잡아 충재를 막았다고 하였다. 『열양세시기』에는 복날에 개를 삶아 국을 끓여 먹으면 양기(陽氣)를 도울 수 있다고 하였고, 『한양세시기(漢陽歲時記)』에도 삼복에는 개장국을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경도잡지』에는 삼복에 개장을 먹는 이유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곧 개장국을 먹고 땀을 흘리면 더위를 제거하고 허한 것을 보강할 수 있다고 하여, 개장국을 삼복 절식 가운데 최고로 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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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장국
개장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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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필지(夫人必知)』에는 눈까지 누런 황구(黃狗)는 비위를 보하고 부인 혈분에 명약이며, 꼬리와 발까지 검은 흑구(黑狗)는 남자 신경(腎莖, 생식기)에 효력이 비상한 약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조선 숙종 때 실학자인 홍만선(洪萬選, 1643∼1715)의 『산림경제(山林經濟)』에는 황구의 고기가 사람을 보하므로 황구를 일등품으로 여긴다고 기록하고 있다. 1795년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에는 황구를 이용한 개고기찜(狗蒸)이 올랐으며, 정학유(丁學游, 1786∼1855)의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에 며느리가 근친(覲親)갈 때 개를 삶아 건져 가는 풍습이 있었다고 전한다. 이렇게 개고기는 약용으로 중시하여 복날뿐만 아니라 잔치 음식이나 선물용으로도 애용되었다.

조선 후기 기록에 의하면 개장국은 ‘구장(狗醬)’, ‘팽구위갱(烹狗爲羹, 개를 삶아 만든 국)’ ‘구이(狗胹, 삶은 개)’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는 개고기를 양념하여 푹 삶아 먹거나 개를 삶은 후 국물을 적당히 넣어 밥을 말아 먹을 수 있게 조리한 음식을 말한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개고기 요리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개장국을 끓이는 방법은 지방마다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개를 삶아서 파, 들깻잎 등의 야채를 넣고 고춧가루로 맵게 양념하여 먹는다. 아마도 개장국을 끓일 때 나는 특유의 냄새를 제거하기 위한 조치이거나 개고기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기 때문에 쇠고기로 끓이는 육개장과 비슷 한 조리법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한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에 박제가가 정약용에게 보낸 편지가 있는데, 개고기를 먹고 기운을 차리도록 독려하는 내용이다. 이 편지에서 그는 손쉽게 개를 잡는 방법과 개장국을 요리하는 법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박제가표 개장국 요리법은 개를 잡아 티끌이 묻지 않도록 매달아 놓고 껍질을 벗긴 후 내장만 씻어 가마솥에 넣고 삶은 후 식초, 장, 기름, 파 등으로 양념하여 먹는 것이다. 그런데 『조선 무쌍 신식 요리 제법』에는 개장(地羊湯)은 백숙으로 만들어 먹는 것이 가장 맛이 좋고 보기에도 좋다고 하였다. 이 책에서는 개고기의 요리 방법을 삶는 법, 찌는 법, 굽는 법, 구장(狗醬) 같이 다양하고 자세하게 여러 쪽에 걸쳐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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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계탕
삼계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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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삼복에 개장국보다 삼계탕이나 육개장을 먹는데, 조풍연(1914∼1991)이 쓴 『서울 잡학 사전』에 “중국에서는 양고기를 끓이고 염소 고기를 구워 먹었으나, 우리나라는 양이나 염소가 귀하므로 대신 개를 잡아 장국을 끓여 먹었다. 개고기를 못 먹는 이를 위해 생각해 낸 것이 쇠고기로 흡사 개장처럼 끓이는 육개장이다.”라고 하였다. 또한 삼계탕에 대해서는 “여름철 개장국보다 더 여유 있는 집안의 시식이다. 계삼탕이 삼계탕이 된 것은 인삼이 대중화되고 외국인들이 인삼의 가치를 인정하게 되자, 삼을 위로 놓아 명칭을 다시 붙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현재 복날에 개장국 대신 삼계탕과 육개장을 먹는 이유와 다르지 않다. 또한 개장국을 흔히 보신탕이나 영양탕으로 부르는데, 이는 개를 주재료로 만든 음식이라는 점을 희석시키기 위함이다. 개장국 대신 삼계탕이나 육개장을 먹거나 개장국을 보신탕이나 영양탕으로 부르는 것은 개고기 식용을 꺼리는 사회 통념이 반영되어 온 결과라고 생각한다.

삼복에 더위를 이기기 위해 먹는 음식으로 개장국 외에 팥죽을 끓여 먹기도 하였다. 이를 요즘에는 동짓날 먹는 팥죽과 구별하기 위해 ‘삼복팥죽’이라 부르기도 한다. 『동국세시기』에 개장국과 함께 붉은 팥으로 죽을 쑤어 먹는다고 하였고, 『열양세시기』에는 복날 팥죽을 끓여 여역(癘疫)223)구체적으로 홍역(천연두)과 염병을 뜻하지만, 일반적으로 전염병(돌림병)을 통칭한다.에 걸리지 않도록 빈다고 하였다. 『한양세시기』에도 삼복에 개장국과 함께 팥죽을 먹는데, 이날 팥죽을 먹으면 더위를 먹지 않고 질병에도 걸리지 않기 때문에 초복부터 말복까지 먹었다고 한다. 삼복에 먹는 팥죽은 동짓날 팥죽과는 달리 옹심이를 만들어 넣지 않는다. 그러나 삼복에 먹는 팥죽도 역신(疫神)을 쫓는다는 속신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동지팥죽처럼 벽사의 의미가 있는 듯하다.224)팥죽뿐만 아니라 개장국도 더운 여름 전염병을 막는 벽사의 의미를 갖고 있는 듯하다. 경기도에서는 개를 잡아 피를 문 앞에 뿌리고 고기를 먹으면 장티푸스 같은 병의 전염을 막을 수 있다고 하며, 황해도에서는 1월 15일에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해 개를 잡아 피를 벽에 바르고 고기는 먹는다고 한다(국립 민속 박물관, 『조선 대세시기』 Ⅰ, 2003, 116쪽 각주 98). 삼복의 팥죽은 무더운 여름에 쉽게 지치지 않고 상한 음식으로 병이 나지 않도록 기원하는 뜻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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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심이 없는 팥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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