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0권 자연과 정성의 산물, 우리 음식
  • 제5장 천년을 함께한 차
  • 3. 유교 문화와 차
  • 선비와 차
김지원

이 그림은 군현도(群賢圖)라는 그림과 내용상 이어진다. 물론 같은 김홍도의 작품이다. 앞에서 차를 끓이던 다동은 그림 왼쪽 아래에서 여전히 열심히 부채질을 하며 차를 끓이고 있다. 아까의 뿔 달린 사슴은 사라졌고 대신 꽃나무와 바위가 운치를 더한다. 아래쪽에 울타리가 있는 것으로 볼 때 잘 꾸며진 후원(後園)으로 생각된다. 파초와 바위가 울타리 안쪽에 있고, 그 옆 긴 상 위에는 향로, 두루마리, 책, 연적 등이 놓여 있다. 평상복을 입고 있는 다섯 사람은 모두 격식을 차리지 않고 앉아 있는데, 방건(方巾)을 쓰고 거문고를 타는 인물이 주인인 듯하고, 이곳은 그의 정원일 것이다. 백악지장(百樂之丈)이라 불렸던 거문고는 선비의 높은 기상을 나타내고, 자연과 화답하는 매체로 여겨서 선비들이 거문고를 연주하거나 감상하는 경우가 많았다.

파초의 오른쪽에 있는 세 사람은 시를 감상하는 중이다. 가운데 인물이 들고 있는 두루마리가 만약 그림이었다면 모두 모여 보겠지만, 시 감상이기 때문에 제각기 담배를 피거나 상에 기대앉은 채 거문고 소리를 들으며 편하게 듣고 있다. 시 한 수를 다 읽거나 거문고 연주가 끝나면 다동이 곧 차를 가져온다. 차를 마시며, 자연과 예술도 함께 즐기는 다회가 열리게 된다. 다회는 조선시대 선비들이 흔히 가졌던 모임으로 다회 장면을 그린 그림이 많이 남아 있다.

오늘날 선비라고 하면 엄격한 생활에 흰 옷을 입고 책만 읽고, 고루한 생각을 가진 이미지를 많이 떠올린다. 실제 조선시대 ‘선비’는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그렇게 경직된 생각과 생활만을 하지 않았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공자가 제시한 군자를 선비의 모범으로 삼았다. 공자는 『논어(論語)』 「술이편(述而篇)」에서 군자의 이상적인 생활을 말하며 “도(道)에 뜻을 두고, 덕(德)을 지키며, 인(仁)에 의지하고, 예(藝)에 노닐어야 한다.”고 하였다. 여 기서 예는 육예(六藝), 즉 예(禮, 예법)·악(樂, 음악)·사(射, 활쏘기)·어(御, 말 다루기)·서(書, 글씨 쓰기)·수(數, 수학)를 가리킨다. 군자는 예에서 생활하여야 한다(遊於藝). 선비들이 거문고를 연주하거나 시와 글씨를 감상하는 것은 학문과 사색을 통해 군자의 길에 이르고자 하는 수양의 한 가지이며, 속세의 고민을 씻어 주고, 아취와 심미를 채워 주는 여가 행위였다.

확대보기
군현도
군현도
팝업창 닫기

선비들은 차를 끓여 마시는 일도 중요하게 여겼다. 차는 책을 읽고 글을 쓰거나 명상에 잠길 때 각성 효과로 크게 도움이 되었지만, 그보다 선비들이 차를 즐긴 이유는 차의 덕이 높다고 인식하여 차를 마시는 일이 군자가 되기 위하여 수양하는 방법의 하나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숭앙했던 고려 말 유학자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은 차 마시는 일을 군자가 되게 하는 일로 생각하였다. 이색은 「다후소영(茶後小詠, 차 마신 후 읊다)」이라는 시에서 정성을 다해 끓인 차를 마시면 코는 향기를 맡게 되고 눈에는 편견이 없어지고, 몸 밖의 티끌도 보이지 않는다고 하였다. 또 차를 마시면 살과 뼈가 똑바르게 되고, 마음이 밝고 깨끗하게 되어 생각의 그릇됨이 없어지고, 군자가 되어 천하를 생각하게 된다고 하였다.268)이색(李穡), 『목은집(牧隱藁)』 권6, 「다후소영(茶後小詠)」. 정성을 다해 차를 끓이고 마음을 바로 하여 차를 마시는 과정은 곧은 마음을 가꾸고자 하는 군자의 수행과 같은 길이었다.

확대보기
선교장 활래정
선교장 활래정
팝업창 닫기

또, 우리나라 선비 문화의 원류를 이루었던 사람 중 한 사람인 한재(寒齋) 이목(李穆, 1471∼1498)은 「다부(茶賦)」에서 사상과 차를 접목시키며 차를 예찬하였다. 이 글에서는 차와의 인연, 차의 종류와 명칭, 산지, 차 달이기에 이어, 차의 일곱 가지 효과(修), 다섯 가지 공(功), 여섯 가지 덕(德)을 역대 성현들의 공과 덕에 견주어 군자 수양 방법의 하나로 서술하고 있다. 「다부」의 마지막 문장에서는 “정신이 기운을 움직여 묘경(妙境)에 이르니, 즐거움을 꾀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르게 된다. 이 역시 내 마음의 차이니 어찌 꼭 밖에서만 구하리오.”라고 하였다.269)김명배, 앞의 책, 324∼332쪽 이목은 차를 예찬함과 동시에 ‘내 마음의 차(吾心之茶)’로 마음과 차가 둘이 아닌 하나이며, 마음의 차를 통해 군자가 되고 구도할 수 있는 정신을 가질 수 있음을 제시하였다. 그에게 차는 맛이나 멋, 즐거움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다. 차 생활을 통해 궁극적으로 도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선비들은 자연 속에서 격식을 따지지 않고 소박하게 차를 즐겼고, 시와 글씨를 감상하며, 친목을 돈독히 하는 교류의 장으로 다회를 열었다. 다회는 주로 수석, 파초, 대나무, 꽃나무 등으로 꾸며진 정원이나 누각, 또는 선비의 사랑방에서 이루어졌다. 활래정(活來亭)은 이러한 조선시대 선비들의 차 생활을 잘 보여 준다.

강원도 강릉 선교장(船橋莊)의 다정(茶亭)인 활래정은 선교장 정원에 판 인공 연못 위에 세운 정자이다. 1816년(순조 16)에 세워졌다. 연못에는 붉은 연꽃과 푸른 연잎으로 가득 차 있고, 정자 뒤쪽은 고송(古松)으로 빽빽하다. 활래정은 온돌방과 누마루가 ㄱ자형으로 이루어졌다. 방과 마루를 연결하는 복도 옆에는 손님에게 대접할 차를 끓이는 다실(茶室)이 있다. 벽이 없이 문으로만 둘러져 있어 문을 모두 열어 놓으면 정자 속에 앉아서도 바깥의 자연과 일체가 될 수 있다. 한여름 활래정의 마루에 앉아 문을 활짝 열어젖히면 연못에 가득 피어 있는 홍련이 한눈에 들어온다. 송나라의 유학자 주돈이(朱敦頤, 1017∼1073)는 「애련설(愛蓮說)」에서 연꽃을 군자에 비유하였다.

확대보기
활래정 내부
활래정 내부
팝업창 닫기

연꽃이 진흙에서 나왔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고 잔잔한 물에 씻으나 요염하지 않으며, 줄기의 속은 비고 겉은 곧으며, 넝쿨도 뻗지 않고 가지도 치지 않으며, 향기는 멀리 갈수록 더욱 맑아지며, 꼿꼿이 깨끗하게 서 있어,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어도 가까이서 만만하게 다룰 수 없음을 사랑하노라. …… 연꽃은 군자를 상징하는 꽃이다.270)황견 편·성백효 역주, 「애련설」, 『역주 고문진보 전집(譯註古文眞寶前集)』, 전통 문화 연구회, 2001.

뒷산의 소나무 역시 사계절 푸름을 변치 않기에 절개가 있는 선비의 정신을 상징한다. 연꽃과 소나무를 바라보며 마음을 가라앉혀 차를 마시는 것도 수양의 한 과정이다. 이에 선비들은 자연을 가까이 하여 그 물성을 보고 본받고자 하였다. 군자의 도는 멀리 있지 않으며, 특별한 방법으로 찾는 것도 아니다. 차 한 잔 마시는 사이에도 깨달을 수 있고, 꽃과 나무를 바라 보면서도 깨달을 수 있다. 바로 내 마음에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선비들은 차를 마시는 평범한 일상생활 속에서 군자의 도를 찾은 것이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