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1권 신앙과 사상으로 본 불교 전통의 흐름
  • 제3장 불교 사상과 신앙의 사회적 확대
  • 1. 숭불 정책과 종단 체제의 확립
  • 종단 체제의 정비와 발전
  • 법상종의 대두와 발전
최연식

고려의 법상종은 유식학을 사상적 기반으로 하면서 동시에 신라 하대에 성행하였던 진표계의 점찰 신앙을 계승한 종파였다. 후삼국이 통일된 이후 진표의 흐름을 계승한 석충(釋冲)이 진표가 미륵에게서 받았다는 점찰 간자를 왕건에게 바치고 후원을 받으면서 법상종은 개경의 불교계에 들어왔지만166)『삼국유사』 권4, 의해(義解), 심지계조(心地繼祖). 고려 초에는 활동 양상이 그다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법상종이 본격적으로 중앙에 대두하는 것은 목종이 자신의 원찰로 법상종 사찰인 숭 교사(崇敎寺)를 창건하면서부터였다. 특히, 이 숭교사에서 출가하여 승려 생활을 했던 현종이 국왕이 되어 적극적으로 후원하면서 법상종은 주요 종단으로서의 위상을 확보하게 되었다.

확대보기
감지금니 대보적경
감지금니 대보적경
팝업창 닫기
확대보기
대보적경 사성기
대보적경 사성기
팝업창 닫기

왕손인 현종이 출가한 것은 불행한 출생 배경 때문이었다. 즉, 현종의 어머니는 태조의 손녀딸로서 본래 경종의 왕비였는데 경종이 죽고 난 이후에 궁궐에서 나와 홀로 지내는 동안에 아저씨뻘 되는 태조의 아들 욱(郁, 安宗)과 사통하여 현종을 갖게 되었다. 임신으로 말미암아 두 사람의 사통 사실이 알려지자 욱은 먼 지방으로 유배되어 곧 병사하였고, 현종의 어머니도 현종을 낳은 직후 죽고 말았다. 고아가 된 그는 외삼촌인 성종의 배려로 궁궐에서 자랐지만 성종이 죽고 나자 목종의 모후인 천추 태후(千秋太后)가 곧바로 출가시켰다. 현종은 승려가 된 이후에도 자신과 김치양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왕으로 즉위시키기 위해 왕위 계승의 경쟁자들을 제거하려 한 천추 태후의 암살 음모에 시달렸지만 삼각산 등지의 사찰에서 승려들의 보호를 받으며 무사히 지내다 천추 태후가 실각한 이후에 국왕으로 추대될 수 있었다.

확대보기
현화사비 전액
현화사비 전액
팝업창 닫기

현종은 즉위 후에 불행하게 죽은 자신의 부모를 위하여 개경 근교에 큰 사찰을 건립하였는데, 이것이 후대 법상종의 중심 사찰이 된 현화사였다. 현종은 정성을 다하기 위하여 중국에서 대장경을 수입하여 봉안하고 각지에서 바친 사리와 불아(佛牙) 등을 안치하였으며, 전국에서 2,000여 명의 승려를 모아 이곳에 머무르게 하였다.167)채충순(蔡忠順) 찬(撰), 「고려국영취산대자은현화사비음기(高麗國靈鷲山大慈恩玄化寺碑陰記)」. 현화사가 낙성된 이후 법상종 승려인 법경(法鏡)을 왕사·오교도승통(五敎都僧統)으로 삼아 현화사의 주지로 임명하였는데, 그는 현종이 승려로 지낼 때에 각별한 인연을 맺었던 인물로 추정된다. 이처럼 현종과의 특별한 인연 및 현종의 지원에 힘입어 법상종은 곧바로 중심적인 종파로서의 위상을 갖게 되었다.

확대보기
현화사 비명 탁본
현화사 비명 탁본
팝업창 닫기
확대보기
현화사 석등
현화사 석등
팝업창 닫기

법상종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법상종으로 출가하는 승려의 출신도 높아졌다. 현종대에서 문종 초년까지의 시기에 왕사 및 국사로 임명되어 법상종은 물론 불교계를 주도한 법경, 정현(鼎賢, 972∼1054), 해린(海麟, 984∼1067) 등은 지방 향리의 자제로, 활동한 사찰도 자신들의 고향에 있는 사찰이었다. 정현은 죽산 지방 출신으로 고향의 칠장사에서 출가한 후 승과를 통하여 승계를 받았고 법천사와 현화사의 주지를 역임하였다. 현종 때에 수좌, 덕종 때에 승통에 올랐고 문종 때에는 왕사와 국사가 되었다. 노년에 고향의 칠장 사로 내려와 머물다가 입적하였다.

확대보기
오룡사 법경 대사 보조 혜광 탑비
오룡사 법경 대사 보조 혜광 탑비
팝업창 닫기

해린은 원주 출신으로 고향의 법천사에서 처음 출가한 후 개경에서 유식학을 공부하다 1001년(목종 4) 숭교사 개창을 기회로 정식으로 승려가 되었다. 승과에 합격하여 승계를 받은 후 법천사, 해안사, 현화사 등의 주지를 역임하였다. 덕종 때에 수좌, 정종 때에 승통이 되었고, 문종 때에 왕사, 국사에 올랐다. 노년에는 처음 출가하였던 법천사로 내려가 머무르다 입적하였다.

그런데 해린의 문하에 당대 최고 가문 출신인 소현(韶顯, 1038∼1096)이 출가하면서 점차 고위 가문 출신이 법상종을 주도하게 되었다. 소현은 인주(仁州) 이씨 출신으로 재상 이자연의 아들이었고, 누나는 문종의 왕비였다. 소현의 출가 이후 인주 이씨에서는 대대로 자손을 출가시켜 그 계보를 잇게 하였으며, 청주 김씨에서도 그러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한편, 문종은 다섯째 아들 규(竅)를 소현의 문하에 출가시켜 화엄종에 출가한 의천과 함께 왕실이 불교계를 주도하게 하려고 하였지만 규가 예종대에 역모에 연루되어 물러나면서 왕실과 법상종의 연결은 계속되지 못하였다. 고려 전기 법상종의 주요 사찰은 현화사, 숭교사, 해안사, 왕륜사, 금산사, 속리산사(법주사), 동화사, 법천사 등이었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