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1권 신앙과 사상으로 본 불교 전통의 흐름
  • 제3장 불교 사상과 신앙의 사회적 확대
  • 3. 불교 사상과 신앙의 사회화
  • 불교 신앙의 실제 모습
  • 정토 신앙과 지장 신앙
강호선

상장례와 제례는 서로 간에 같은 신앙, 같은 사상에 기반하기 마련이다. 고려에서는 불교식 상장례의 유행과 함께 사후 세계에 대한 관념과 열망도 불교 신앙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고려시대 사람들은 죽어서 정토에 갈 것을 믿었고, 사후 세계를 위해 아미타불과 지장보살을 적극적으로 신앙하였다.

사후 세계에 대한 관념은 죽어 극락왕생할 것이라는 기대와 삼악도에 떨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의 두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 두 가지 상반된 생각은 언제나 공존하지만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정도는 시대에 따라 차이가 있다.

고려시대에는 정토 신앙과 지장 신앙이 공존하였지만, 전반적으로는 정토 신앙이 좀 더 대세를 이루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사』, 묘지명, 문집 등과 같이 시대적 분위기를 읽을 수 있는 자료와 불상, 불화, 법당의 명칭 등이 지장보살과 관련된 내용보다는 아미타불과 관련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고려 불화 가운데 아미타불화가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정토 신앙이 가장 광범위하였음을 반영한다. 아미타불화 중에는 아미타독존도(阿彌陀獨尊圖) 외에도 아미타불이 지장보살과 관음보살을 거느린 것을 묘사한 그림도 있어 지장과 관음도 단독으로 신앙되는 한편으로 미타(彌陀) 정토 신앙 속에서 받아들여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고려 후기에 조성된 불화 중에는 아미타도 외에도 관경변상도(觀經變相圖)나 미타정토도 등도 다수 있는데, 이러한 불화를 통해 고려시대 신앙의 중심에는 정토 신앙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중국에서 정토 신앙은 정토종이라는 종파를 형성하기도 하였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독립된 종파로 성립되지 못하였다. 대신 구체적인 수용 모습에 다소 차이가 있으나 화엄종, 천태종, 법상종, 선종을 비롯한 중요한 종단 에서는 모두 정토 신앙을 수용하였다.

이 정토 신앙과 짝이 되는 것이 지장 신앙이다. 극락과 지옥이라는 측면에서 서로 다른 신앙처럼 보이지만, 지장 신앙에서도 궁극적으로는 지옥의 고통에서 벗어나 극락왕생하기를 희구한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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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삼존도
아미타삼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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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외(無畏)가 쓴 「동전시왕전소(同前十王前疏)」에서는 100일 동안 시왕에게 공양을 진설하였음을 알 수 있다.246)무외(無畏), 「동전십왕전소(同前十王前疏)」, 『동문선』 권111. 이 글은 팔재(八齋)의 공양을 올리면서 지었는데, 시왕의 자비로 천생만겁(千生萬劫)의 많은 죄업을 없애 금대(金臺)에 모든 성인의 인접(引接)을 친히 받으며 유도(幽道)에서 얻은 온갖 고통이 다 밝은 해의 광명을 입기를 빌고 있다. 이 밖에 이달충(李達衷)이 쓴 「김제학천처칠칠소(金提學薦妻七七疏)」247)이달충(李達衷), 「김제학천처칠칠소(金提學薦妻七七疏)」, 『동문선』 권111.나 이첨(李詹)이 쓴 「대이령천고소(代李令薦考疏)」248)이첨, 「대이령천고소(代李令薦考疏)」, 『동문선』 권111. 등을 통해서도 사십구재와 백일재가 고려 후기에 이미 일상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지장이나 시왕과 관련된 신앙은 고려 후기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하였다. 고려 전기에는 지장이나 시왕에 대한 신앙보다는 사후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기원하는 정토 신앙이 중심이 되었으며, 삼악도에서 고통 받는 영혼을 위해서는 지장 신앙보다는 우란분재가 정기적으로 설행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지옥에서 고통 받는 중생을 구제해 주는 존재로서의 지장보다는 망자를 추선(追善)하는 존재로서의 지장이 신앙되었다. 우리에게 친숙한 지옥 중생을 구제해 주는 존재로서의 지장 신앙은 조선시대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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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 지장보살 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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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시왕도
지장시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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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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