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2권 역사 속 외교 선물과 명품의 세계
  • 제2장 천 년을 넘기는 한지
  • 2. 한지의 명품과 명산지
  • 한지의 종류와 이름
김덕진

종이의 종류와 이름은 매우 많다. 재료, 생산지, 용도에 따라 다르고, 만든 장소에 따라 다르고, 또 무엇에 쓰이느냐에 따라 다르며, 모양이나 색깔 및 제작 방법에 따라서도 이름이 다르다.

원료에 따라서 닥나무를 썼을 때 저지(楮紙)라고 하였는데, 일본에서 들여와 남해안 지방에서 재배한 닥나무로 만든 종이는 왜지(倭紙)라고 하였다. 한지는 닥나무를 주원료로 하면서 필요에 따라 다른 원료를 섞었다. 등나무를 추가하여 만든 종이를 등지(藤紙), 삼을 섞어 만든 종이를 마지(麻紙), 볏짚을 섞어 만든 종이를 고정지(藁精紙)라고 하였다. 또 뽕나무를 섞어 만든 종이를 상지(桑紙), 이끼를 섞어 만든 종이를 태지(苔紙), 소나무의 껍질이나 잎을 섞어 만든 종이를 송지(松紙)라 하였다. 댓잎을 섞어 만들면 죽지(竹紙), 보릿대를 섞어 만들면 모절지(麰節紙), 버드나무의 잎이나 나무를 섞어 만들면 유지(柳紙), 율무를 섞어 만들면 의이지(薏苡紙), 잡초를 섞어 만들면 잡초지(雜草紙)라고 하였다. 실로 여러 가지 재료로 종이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재료에 따라 이름을 각기 정해 놓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런가 하면 폐지, 즉 헌 종이로 만든 종이를 환지(還紙)라고 하였다. 과거에 응시하였다가 낙방한 사람의 시험지인 낙폭지(落幅紙)나 실록 편찬 자료 및 필요 없는 공문서 등으로 환지를 만들었다. 실록을 편찬할 때 기본으로 삼은 춘추관(春秋館)의 시정기(時政記)와 사관의 사초(史草), 그리고 초안으로 작성하였던 초초(初草)·중초(重草) 등은 실록이 완성되면 조지서(造紙署)가 있던 세검정 부근 개천에서 깨끗이 씻어 다시 활용하였다. 심지어는 종이를 재생하기 위하여 사용하고 있는 공문서를 훔치는 일이 많아 사회 문제가 된 적도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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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검정
세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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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를 만든 곳에 따라서도 이름이 여러 가지였다. 신라에서 만들면 신라지, 고려에서 만들면 고려지, 조선에서 만들면 조선지라고 하였다. 우리나라 안에서는 전라도 전주에서 만든 종이는 전주지(全州紙, 전주 종이), 경상도 의령에서 만들면 의령 종이, 강원도 가평에서 만들면 가평 종이, 경기도 안성에서 만들면 안성 종이라고 하였다.

종이의 생산지 대신에 특징을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강원도 평강에서 생산되는 종이는 눈처럼 희고 윤이 난다 하여 설화지(雪花紙)라고 하였고, 전라도 용담에서 생산되는 종이는 희고 질겨서 부채를 만드는 데에 많이 썼기 때문에 용선지(龍扇紙)라 하였다. 전라도 순창의 종이는 윤이 나고 질기다 하여 상화지(霜花紙)라 하였고, 평안도 영변의 종이는 희고 질기어 백로지(白露紙)라고 하였다. 설화지나 상화지는 백면지와 함께 명나라에 외교 예물로 보낼 정도로 고급 종이였다.

용도에 따라서는 중국에 보내는 외교 문서를 작성하는 데 쓰는 고급 종이로 자문지(咨文紙), 표전지(表箋紙), 주본지(奏本紙)가 있다. 자문지는 중국 고위 관청에 보내는 문서인 자문을, 표전지는 황실의 경사를 축하하는 글인 표전문을, 주본지는 외교 실무를 위한 글인 주본을 쓰는 종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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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목
계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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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문서와 관련하여서는 계본지(啓本紙)와 계목지(啓目紙)가 있다. 중앙의 주요 관청이나 지방의 감영·병영·수영에서 임금에게 공무를 보고할 때에 큰 일을 보고하는 것을 계본이라 하는데 그때 사용하는 종이를 계본지라고 한다. 계목지는 작은 일을 보고하는 계목에 사용하는 종이이다. 신하가 임금에게 정사를 아뢰는 것을 계문이라 하는데 그때 사용하는 것을 계문지(啓聞紙)라고 한다. 또 관아에서 일반적인 공공사무를 기록할 때 쓰는 종이를 공사지(公事紙)라 하였고, 국왕 비서인 승지가 왕명을 적을 때 쓰는 종이를 주지(注紙)라고 하였다.

필기와 관련하여서는 과거 시험을 치를 때 쓰는 종이를 시지(試紙), 과거 시험에 떨어진 사람의 시험지를 낙폭지라 하였다. 책을 만들 때 쓰는 종이를 책지(冊紙), 족보를 발간할 때 쓰는 종이를 족보지(族譜紙), 편지를 쓸 때 쓰는 종이를 간지(簡紙)라 하였다. 글체의 본을 적는 데 쓰는 종이를 서본지(書本紙), 그림이나 서예에 쓰는 종이를 화선지(畵宣紙)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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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안(官案)
관안(官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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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과 관련하여서는 고사를 지낼 때 쓰는 종이를 고사지(告祀紙), 창문을 바를 때 쓰는 종이를 창호지(窓戶紙), 방바닥을 바르는 종이 를 장판지(壯版紙), 도배용으로 쓰는 종이를 도배지(塗褙紙), 선물을 쌀 때 쓰는 종이를 봉물지(封物紙)라고 하였다. 또 부채를 만드는 데 쓰는 종이를 선자지(扇子紙), 병졸들의 겨울 옷 속에 솜 대신 넣었던 종이를 의지(衣紙), 달력을 만드는 데 쓰는 종이를 역지(曆紙), 기름을 발라 방수용으로 쓰는 종이를 유지(油紙), 갓 위에 씌웠던 기름 바른 종이를 입모지(笠帽紙), 머리 빗는 빗의 집을 만드는 종이를 소지(梳紙)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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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지에 쓴 『천자문』
색지에 쓴 『천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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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사용 목적에 따라 품질·재료·공정·크기·색깔 등을 차별화하여 각기 다른 이름의 종이를 만들어 실용적인 소비 생활을 하였다.

이 밖에도 모양이나 품질에 따라 가장 저급한 종이를 피지(皮紙), 가장 대중적인 종이를 상지(常紙), 제법 두꺼운 양질의 종이를 장지(壯紙), 특별히 두껍게 만든 종이를 후지(厚紙), 특별히 다듬이질을 정성 들여 한 고급 종이를 도련지(搗鍊紙), 넓고 긴 종이를 대호지(大好紙), 좁고 짧은 종이를 소호지(小好紙)라고 하였다. 이 가운데 대호지와 소호지는 크기만 다를 뿐 청나라에 외교 예물로 보내는 고급 종이였다. 닥종이는 원래 흰 색깔의 백지(白紙)인데, 흰 무명천처럼 고운 고급 백지인 백면지(白綿紙)도 마찬가지로 청나라나 일본에 보내는 외교 예물이었다.

여기에 물감을 들인 색지(色紙)도 적지 않게 사용되었다. 푸른 물감을 들인 청지(靑紙), 치자로 노란 물감을 들인 황지(黃紙), 홍화로 분홍 물감을 들인 도화지(桃花紙), 단목으로 붉은 물감을 들인 단목지(丹木紙), 검은 물감을 들인 흑지(黑紙) 등이 있다. 특히 고려 성종대에 최승로(崔承老, 927∼989)가 시무 28조를 올리면서 제18조에서 예전에 불경을 모두 황지로 썼다고 하였고,86)『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권2, 성종(成宗). 옛날에 서화를 쓰거나 그릴 때에 황지를 사용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황지는 귀중한 문건을 작성할 때 주로 사용하였던 듯하고 좀먹지 않도록 특수 재료를 첨가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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