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2권 역사 속 외교 선물과 명품의 세계
  • 제4장 만병통치약, 인삼
  • 3. 해외로 뻗어 나간 인삼의 길
  • 미국의 가정 의학과 인삼의 복용법
정성일

오늘날 세계 의약계를 선도하는 국가는 두말할 나위 없이 미국이다. 첨단 의학의 모든 기술이 집적되어 있으며 세계 각국에서 소비되고 있는 약의 대부분이 미국에서 만들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미국에서 고려 인삼이 애용되고 있었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하다. 물론 여기에서 소개하는 사례는 지금으로부터 90여 년 전인 1910년대의 일이다.

미국의 사례를 소개하고 있는 사람은 도미이에 마사요시(富家正義)라는 일본인이다. 조선 총독부 기사를 역임한 그는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였다. 일찍이 그는 조선 총독부의 탁지부 전매과 개성 출장소 소장을 지낸 바 있다. 그곳은 홍삼의 제조소가 위치한 곳이기도 하였다. 그는 자신이 쓴 책228)富家正義, 『最も効驗多き朝鮮人蔘の飮み方·並に米國に於ける家庭醫藥としての人蔘の用い方』, 勝島活版所, 1918.에서 인삼의 효험에 대하여 언급한 후 당시 우리나라에서의 인삼 복용법을 소개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인삼의 제조법과 효능까지도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그런데 더욱 주목을 끄는 것은 미국 가정에서의 인삼 복용법에 대하여 소상하게 설명하고 있는 점이다.

당시 미국에서는 인삼에 대한 학리적(學理的) 연구가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와 동시에 이미 미국의 일부 가정에서는 가정용 의약으로 인삼을 각종 질병 치료에 사용하고 있었다. 그가 관명(官命)을 받아 미국으로 건너가 이러한 현실을 직접 목격하였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당시 미국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이루어진 방법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229)富家正義, 앞의 책, 39∼40쪽.

첫째, 인삼제(人蔘劑)를 만드는 방법과 효능이다. 인삼 가루로 만드는 삼분제(蔘粉劑)는 인삼 뿌리를 곱게 갈아서 만든 분말 3온스(약 24匁)와 밀크(糖) 1온스가 필요하다. 인삼은 충분히 건조된 것을 사용하는데 백삼이든 홍삼이든 상관없다. 우선 건삼을 잘게 부순 다음 차(茶)를 가는 절구 같은 것에 넣고 가루가 고와질 때까지 간다. 밀크당에는 윈다 그린 기름을 60방울 첨가하고 여기에 인삼 분말을 넣고 잘 섞는다. 그런 다음 병에 넣어 둔다. 이것을 복용할 때에는 차완(茶碗)에 따뜻한 물을 붓고 인삼 분말을 찻숟가락으로 한 개 정도 넣은 다음 약 1분 동안 비등점에 달할 때까지 데운다. 이것을 식혔다가 식사 전에 1회 마신다. 또 인삼 분말에 설탕이나 크림, 곡물 가루 등을 섞어서 마시기도 한다. 이렇게 하면 위병·뇌병·신경통 등에 잘 듣는다. 만성 변비로 고생하는 사람에게도 좋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에게도 잘 듣는데, 잠이 오게 하는 최면약(催眠藥)으로 특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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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 그림
인삼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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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인삼의 잎과 뿌리를 생식으로 복용하는 방법이다. 가장 손쉬운 것은 옛날부터 야생 인삼 채집자들이 늘 이용하는 방법인데, 땅에서 캐낸 인삼을 잘 씻어서 흙을 제거한 다음 생으로 먹는다. 또 인삼의 생잎을 압착하여 씹어 먹는 것이다. 인삼의 잎에는 후지바카마·트리가부토·로베리아 등의 약재 성분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방법은 하루에 3∼6회 적당한 시간을 정해서 이용하는데, 생근(生根)일 경우에는 뿌리의 굵기를 연필 큰 것 정도로 해서 1회에 1∼2치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생식한다. 또 잎일 경우에는 1∼3개의 작은 잎 조각을 먹는다. 생근이나 잎을 우유 등에 담가 두었다가 차를 마시듯이 따뜻하게 데워서 마시면 맛 좋은 음료수가 된다.

셋째, 말린 뿌리(건삼)를 복용하는 방법이다. 백삼이든 홍삼이든 건조 시킨 인삼 뿌리를 잘라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2∼3시간마다 한 개씩 입 속에 넣고 잘 씹어서 즙과 액을 먹으면 가장 효과가 크다고 한다. 중국인들은 이 방법을 주로 사용한다.

넷째, 팅크제의 제조법과 효능에 관한 것이다. 백삼이든 홍삼이든 건삼과 잎을 이용하여 팅크제(丁幾劑)를 만든다. 먼저 건삼을 빻아서 분말을 만든다. 그리고 섬유와 잎 조각을 따로따로 과일 병이나 통에 담아 둔다. 아니면 함께 넣어 두어도 상관없다. 여기에 같은 양의 알코올과 물을 부은 다음 인삼이 불면 알코올과 물을 조금씩 더 넣고 증발을 막기 위하여 덮개로 잘 막아 둔다. 10일에서 14∼15일이 지난 뒤 인삼을 압착하여 즙을 짜낸 것이 인삼 팅크이다.

성년인 경우에는 1회에 10∼15방울 정도를 사용하면 적당하다. 팅크 1온스를 6온스 병에 넣어 약종점(藥種店)에서 여러 종의 약재를 알코올에 침투시켜 만든 약재인 인삼 혼합제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 1회의 사용량은 찻숟가락 한 개 정도로 해서 하루에 3∼4회 정도 마신다. 이 인삼 팅크를 잘 익은 파인애플 즙에 섞어서 먹으면 가장 좋은 소화제가 된다. 류머티즘 약과 섞어서 사용하면 류머티즘에도 효능이 있다고 한다.

다섯째, 인삼차를 마시는 법이다. 인삼 종자의 채집이 끝나면 깨끗하게 씻은 잎과 줄기를 부엌의 스토브에서 천천히 말린 다음 그것을 종이봉투에 저장해 둔다. 먹을 때에는 보통 차를 끓여 마시듯이 크림이나 설탕을 넣어서 마시면 된다. 위가 약하거나 신경 쇠약으로 고생하는 사람에게 특효가 있다.

이상은 마치 우리나라의 어느 한의원에서 듣는 것처럼 인삼의 뿌리에서 줄기, 잎에 이르기까지 버리는 것 하나 없이 모두 복용하는 법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미국인들이 이용하고 있는 인삼 복용법이라고는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앞에서 소개한 내용이 모두 미국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 살고 있는 약초 전문가인 하딩(A. R. Harding) 이230)원래 의사였던 그는 인삼 연구에 심혈을 기울여 『인삼과 약용 식물(Ginseng and Other Medical Plants)』(1908)이라는 책을 펴낸 바 있다. 도미이에에게 친절하게 일러 준 것이라는 점이다.

그뿐만 아니라 하딩은 가정 의약으로 미국에서 실시한 실험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소개해 주었다. 하딩과 가까이에 살고 있던 중년의 한 사람은 전부터 류머티즘으로 심한 고생을 하고 있었는데, 병원의 의사마저 완치할 수 없다고 포기한 상태였다고 한다. 그런데 우연하게 인삼 복용을 권유하는 사람이 있어서 시험 삼아 그렇게 해보았다. 그러자 몇 주일 지난 뒤에는 거의 완치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치료 경험이 축적되면서 미국에서는 인삼이 류머티즘에 매우 효험이 있다고 알려진 듯하다.

미국인은 식후에 특히 펩신제(pepsin劑)를 복용하는 습관이 있는데, 시험 삼아 인삼을 잘 익은 파인애플 즙에 섞어서 복용하였더니, 매우 맛이 좋고 소화도 잘 되었다고 한다. 아울러 인삼제(人蔘劑)를 양질의 포도주에 섞어서 적당히 음용(飮用)하면 위장병 치료에도 매우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도끼로 손가락이 절단된 사람에게 곧장 인삼으로 만든 고약(膏藥)을 발랐더니 상처가 금방 아물고 치유가 되었다고 한다. 또한 지금 미국에서 인삼은 “목소리를 좋게 하고, 소화를 촉진하며, 각종 신경통에 특효가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것을 복용하면 몸이 튼튼해지고, 위장병의 원인을 치료해 주며, 식욕을 촉진시킨다고 한다. 이 밖에도 홍삼이든 백삼이든 상관없이 삼 뿌리를 가루를 내서 15g 혹은 찻숟가락으로 반숟가락 아니면 4분의 1을 약 1홉 5작의 끓인 물에 타서 식사할 때나 식사 중간에 매일 한 번씩 마시면 한위(寒胃)의 경우는 대체로 며칠만 지나면 모두 낫게 된다고 한다.231)富家正義, 앞의 책, 46∼49쪽.

미국에서 시판되고 있는 인삼으로 만든 약품은 두 종류가 있다. 그 중 하나는 ‘센’이라고 하는 약품인데 건위제(健胃劑)로 쓰고 있다. 다른 하나는 ‘진센 톤’이라고 하는데 최근에 판매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사용자들이 보낸 통신문을 보니, “오래된 위장병이 진센 톤 때문에 완치되었다.”든가 “병으로 쇠약해져 25파운드나 체중이 줄었는데, 진센 톤을 복용하고 나 서 1개월 만에 옛날 체중으로 되돌아왔다.” “신경통이 모두 나았다.”는 식의 편지가 수도 없이 본사 앞으로 전달되고 있었다. 이런 예를 보더라도 미국에서 인삼을 신뢰하는 사람이 상당수 생겼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인삼의 효용과 복용법은 대체로 이상과 같다. 근래 일본에서도 인삼 복용자가 꽤 많이 늘었다고 하는데, 복용법을 숙지하지 않아 어렵게 얻은 영약(靈藥)의 효험을 보지 못하고 헛되이 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서 도미이에가 미국에 가서 보고 들은 대로 발표하였다는 것이다.232)富家正義, 앞의 책, 49∼50쪽.

지금과는 상황이 사뭇 다르겠지만 1910년대의 미국에서는 인삼이 가정 의학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컸던 것 같다. 앞에 소개한 자료로 보건대 인삼의 뿌리만이 아니라 잎과 줄기까지도 다양하게 치료와 양생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저 몇몇 가정에서만 은밀하게 이용되는 것이 아니라 센, 진센 톤과 같이 인삼을 원료로 하여 약품으로 개발한 것까지 미국에서 시판되고 있었다고 하니 더욱 그렇다. 우리가 지금 소화가 잘 안 될 때 먹는 소화제나 위장약으로 당시 미국에서는 인삼을 사용하고 있었고, 상처가 난 자리에 바르는 연고의 역할도 인삼이 대신하고 있었다. 신경통에 특효가 있고 류머티즘과 같은 고질적인 병을 낫게 하며, 심지어는 목소리까지도 맑게 한다고 할 정도로 당시 미국인들은 인삼에 크게 의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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