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2권 역사 속 외교 선물과 명품의 세계
  • 제5장 우리 먹을거리의 명품, 김치
  • 1. 김치의 역사
  • 김치의 혁명
김경옥

고추가 우리나라에 전래되면서 김치에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고추가 우리나라에 유입된 시기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은데, 대체로 임진왜란 직후에 중국과 일본을 통해서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고추가 중국에서 전래되었다는 설은 고추를 ‘당나라에서 들어온 매운 풀’이라는 의미로 ‘당신자(唐辛子)’ 혹은 ‘당초(唐椒)’ 등으로 부른 데에 근거를 두고 있다. 또 고추의 일본 전래설은 이수광(李睟光, 1563∼1628)의 『지봉유설(芝峯類說)』에서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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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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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만초(南蠻椒)는 독이 많고 처음에 일본에서 전래되어 속칭 ‘왜개자(倭介子)’라 불렀다. 지금은 왕왕 이것을 심고 있으며, 술집에서는 그 맹렬한 맛을 즐겼는데, 혹자는 소주에 고추를 넣어서 마시고 죽은 사람이 많았다.

‘남만초’와 ‘왜개자’ 등은 고추의 별칭으로, 17세기 초엽에 이미 우리나라에 전래되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그러나 고추가 우리나라 전역에 널리 보급된 것은 이보다 훨씬 이후의 일이다. 18세기 초에 간행된 『산림경제(山林經濟)』에 등재된 김치에는 여전히 고추가 첨가되어 있지 않다. 고추는 17세기 초에 전래되었지만, 100여 년이 지난 18세기까지도 김치에 첨가되지 않았던 것이다. 18세기에도 김치는 여전히 소금에 절이거나 식초와 향신료 등을 첨가하는 수준이었다. 다만 18세기에 일어난 김치의 변화라고 한다면, 김치 담그는 방법이 조금 달라졌을 뿐이다. 『산림경제』에는 저(嫢·菹)라 불리는 김치를 담그는 방법 다섯 가지가 소개되어 있다. 그런데 1787년(정조 11)에 펴낸 서명응(徐命膺)의 『고사십이집(攷事十二集)』에는 쌀·누룩·소금·기름 등을 이용하여 채소를 발효시켜서 먹는 것을 저(菹)라고 하였다. 이것을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에는 ‘저채(菹菜)’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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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미식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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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18세기 중엽에 이르면, 비로소 김치의 부재료로 고추가 첨가된다. 이 시기는 ‘김치의 혁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김치의 외형이 변화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1766년(영조 42)에 간행된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고추를 넣어 담근 김치의 종류가 무려 41종이나 수록되어 있다. 18세기 김치 담그는 방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침나복함저법(沈蘿蔔鹹菹法): 잎줄기가 달린 무에 청각채·호박·가지 등의 채소와 고추·천초·겨자 등의 향신료를 섞고 마늘 즙을 듬뿍 넣어서 김치를 만든다. 오늘날의 총각김치와 같다.

황과담저법(黃瓜淡菹法): 오이의 세 면에 칼집을 넣고 그 속에 고춧가루·마늘을 넣어 삭힌 다음 김치를 담그는데, 오늘날의 오이소박이와 같다.

이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18세기 중엽에 비로소 김치에 고추가 첨가되면서 각종 향신료와 젓갈 등이 함께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즉, 김치의 부재료로 동물성 재료가 첨가되어 김치의 맛과 영양은 물론 감칠맛이 한층 향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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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소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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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각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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섞박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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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말엽에 이르면 비로소 김치의 형태가 오늘날의 김치와 흡사하게 변한다. 이 시기의 가장 큰 변화는 김치의 재료로 배추가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증보산림경제』에는 ‘숭침저’라 하여 배추김치가 등재되어 있고, 『시의전서(是議全書)』에도 통배추가 기록되어 있으며,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도 ‘장김치’가 수록되어 있다.250)이춘자·김귀영·박혜원, 앞의 책, 25쪽. 이처럼 18세기 말엽에 김치의 주재료로 무와 오이, 가지 이외에 통이 크고 알찬 배추가 사용된 것이다. 이 시기 김치의 겉모양 변화에 대하여 『증보산림경제』에는 “김치에 고추 양념이 듬뿍 첨가되어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가 하면, 『임원십육지』에는 김치에 젓갈을 첨가하여 담근 ‘젓국지’ 가 등재되어 있다. 이처럼 18세기 중엽 김치에 고추와 젓갈이 첨가되면서 김치 담그는 방법도 변화되었다. 그 결과 장아찌·물김치·소박이·섞박지·식해김치 등 김치의 종류가 다양하게 발달하였다.

이와 같이 조선시대 문헌에서 확인된 김치는 기본적으로 채소를 소금에 절인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지(漬)·염지(鹽漬)·지염(漬鹽)·침채(沈菜)·침저(沈葅)·침지(沈漬)·엄채(醃菜)·함채(鹹菜)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특히 18세기 중엽 김치에 고추가 첨가되면서 김치 담그는 방법이 다양하게 변화되었고, 이것이 오늘날 김치의 기초가 되었다.

한편, 매운 김치의 대명사인 배추김치가 만들어진 시기는 1950년대이다. 육종학자 우장춘(禹長春, 1898∼1959)이 우리 땅에 알맞은 우량 채소 종자를 자급할 수 있게 하면서 시작되었다.251)최준식·정혜경, 앞의 책, 118쪽. 즉, 무와 배추를 주원료로 하고, 여기에 다량의 고추를 첨가하여 담근 맵고 붉은 김치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더욱이 1950년에 발생한 6·25 전쟁은 대규모 인구 이동을 불러일으켰고, 이때 각 지방의 김치 담그는 방법 또한 크게 변화되었다. 전쟁 때 많은 사람들이 피난길에 올랐고, 피난민들은 다른 지방의 김치를 맛보게 된 것이다. 전쟁이 끝난 직후 도로 시설의 복구와 교통수단의 발달, 그리고 매스컴의 영향을 받으면서 각 지방의 독특한 김치의 맛은 점차 지역성을 잃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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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배추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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