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3권 20세기 여성, 전통과 근대의 교차로에 서다
  • 제1장 여자여 외출하라
  • 1. 한국 여성의 이미지
  • 빨래터 풍경
허영란

서울에는 특이한 소리가 있는데, 그것은 물장수의 지게가 삐걱거리는 소리다. …… 물장수가 물지게를 지고 다니면서 걱정스런 태도라고는 전혀 없이 명랑한 음성으로 천연스럽게 물을 사라고 외치고 다닌다. …… 물장수 소음 말고도 또 거리에서 나는 다른 잡음은 여인들의 빨래 소리이다. 무척이나 호기심이 많고 그러다가도 누가 곁으로 지나가면 재빨리 조심스럽게 얼굴을 감추는 한국 여인은 다른 동양 여자들에 비해서 훨씬 온유한 성품을 가졌다. 그러나 이 여인들이 젖은 빨래를 방망이로 힘차게 두들기는 것을 본다면 어떨까! 한국 여인들은 일반적으로 온순하고 성실할 뿐 아니라 남자들에 비해서 훨씬 능력이 있는…… 무능력하기만 한 한국 남성을 위주로 구성된 한민족이 이제까지 버티고 생존할 수 있었던 것만 봐도 남성들이 먼지나 재처럼 하찮게 여기는 한국 여인들이 얼마나 부지런하고 힘들게 일하면서 지탱해 왔는지를 잘 증명해 준다.1)에쏜 써드, 「서울, 한국의 수도」, 『극동』, 1902, 김영자 편역, 『서울, 제2의 고향─유럽인의 눈에 비친 100년 전 서울─』, 서울학 연구소, 1994, 44∼48쪽 재인용.

에쏜 써드(Esson Third)가 쓴 『서울 견문록』의 일부이다. 중국 체류 유 럽인들이 상하이(上海)를 중심으로 발행한 『극동』이라는 잡지의 1902년도분에 실려 있는 이 글에는 이방인의 눈에 비친 서울의 풍경과 서울 사람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당시 한국을 방문하였던 서양인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특히 길거리나 공개된 장소에서 여성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이야기는 흔히 접할 수 있는 경험담이었다. 그렇기에 여성들이 개울가에 옹기종기 모여서 힘차게 빨래를 하고 있는 모습은 매우 인상 깊은 장면이었다. “거리의 군중들 사이에 여자들은 전무”하고 “거리에서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여인들은 몸을 드러내지 않았다.”2)카를로 로제티(Carlo Rossetti), 『백 년 전 이태리 외교관이 본 한국과 한국인, 꼬레아 꼬레아니』, 서울학 연구소, 1994, 113∼114쪽. 그러나 빨래터에 나온 여인은 남존여비(男尊女卑)의 사회에서 낯선 사람과 마주치면 재빨리 얼굴을 감추는 여성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 때문인지 개울가에 모여 앉아 젖은 방망이를 힘껏 두드리는 활기찬 광경, 씩씩한 빨랫방망이 소리, 그 사이사이에 섞여 있었을 아낙네들의 수다……, 은자의 나라를 찾은 이방인은 한민족을 지탱해 온 저력을 그처럼 생기 있는 여성에게서 발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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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기 서울 거리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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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터의 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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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터의 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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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이탈리아 외교관 까를로 로제티(Carlo Rossetti)는 “계속해서 빨래거리를 끊이지 않게 하여 긴 수다를 늘어놓을 여유를 주지 않기”3)카를로 로제티, 앞의 책, 108쪽. 위해서 한국인은 흰옷을 입는 것이 아닐까 하며 자유로운 상상력을 발휘하였다. 그는 수다를 떠느라 여성이 빨래를 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 남성이 ‘더러운 도포 몇 자락’밖에 걸칠 수 없는 것이라며 남성을 불쌍히 여겼다.

대낮에도 길에서는 모습을 보기 어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개울가에서 빨랫방망이를 요란하게 두드리는 여성들, 무능력한 남성에 대비되는 억척스런 여성들……. 이처럼 개화기 한국 여성의 이미지는 이중적이다. 가부장제 아래에서 고생하는 며느리와 곳간 열쇠를 쥐고 살림을 관장하는 권위적인 안방마님처럼, 전통적인 여성 이미지에는 수줍음과 당당함, 나약함과 강인함이라는 대조적인 이미지가 겹쳐져 있다. 아마도 그러한 이중성 자체가 한국 여성의 실제 모습에 가까울 것이다.

전근대 사회에서 여성은 사회의 공식 영역에서 소외되어 있었지만, 그것이 그들의 존재를 전적으로 규정할 정도로 결정적이지는 않았다. 한국의 여성은 안채의 주인으로서, 그리고 유교적인 명분 사회를 뒷받침하는 행위자로서, 또는 가족의 의식주를 충족시키기 위한 가사 노동의 담당자로서, 공식적·비공식적 지위를 차지하고 그 역할을 인정받아 왔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가족이 기본적인 생산의 단위이자 사회적 관계를 재생산하는 근간이었는데, 여성은 바로 그 가족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가정과 직장이 분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가정이 차지하는 사회적 비중은 매우 컸다. 그에 비례해서 여성의 지위나 역할 역시 중요하였다.4)조혜정, 「한국의 가부장제에 관한 해석적 분석」, 『성, 가족, 그리고 문화─인류학적 접근─』, 집문당, 1997, 59쪽. 여성이 책임져야 하는 가사 노동의 종류와 분량은 매우 많고 무거웠으며, 그것이 가족과 사회의 재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결정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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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공불환도(三公不換圖) 부분
삼공불환도(三公不換圖)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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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러한 여성의 위상은 어디까지나 어머니라는 역할을 전제하여 보장되는 것이었다. 한말에 조선을 방문한 스웨덴 기자 아손 그렙스트(Willam Andersson Grebst)가 관찰한 대로 한국 여성에게 어머니라는 지위는 모든 권리와 의무의 원천이었다.

코레아 여성에게 지워지는 가장 큰 의무는 사회 계층을 막론하고 어머니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여성 최대의 염원이며, 항상 여자 측에 책임이 돌아가게 마련인 자식 없는 결혼 생활은 이혼의 충분한 사유가 된다.5)아손 그렙스트(William Andersson Grebst), 『스웨덴 기자 아손, 100년 전 한국을 걷다』, 책과 함께, 2005, 178쪽.

어머니로서의 의무는 한국 여성의 삶을 지배하였다. 자식을 낳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쫓겨나는 여성이 있었던 반면, 어떤 여성은 가부장의 어머니로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입신양명(立身揚名)을 목표로 하는 남성이 대외적인 성공을 위해 경제 활동과 노동을 등한시하는 상황에서, 여성은 가문의 체면을 지키는 역할부터 아들의 교육, 가족의 생계유지에 이르는 책임을 실질적으로 감당하였다.6)조혜정, 앞의 글, 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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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류층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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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류층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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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술이나 마시고 주정이나 해대는 집안에서는 아내의 노동이나 근면함이 가정을 꾸려나가는 근본”7)아손 그렙스트, 앞의 책, 179쪽.이었다. 예컨대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의 『허생전(許生傳)』에서 허생의 아내는 ‘바가지’를 긁어 큰 뜻을 품고 학문에 매진하는 남편을 돈벌이로 내모는 악역을 맡고 있다. 그러나 남산골 허생이 10년 동안이나 아무런 경제 활동도 하지 않고 고매한 독서에 전 념하는 동안 집안의 생계를 홀로 책임진 것은 다름 아닌 그 아내였다.

가정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여성, 곧 어머니는 가정에 어려움이 닥치거나 가족이 위기에 빠지면 적극적으로 그것에 대응하고 가정을 건사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우리 역사가 우여곡절이 많았던 만큼 많은 여성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가정 밖으로 생계유지 활동에 나서야만 하였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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