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3권 20세기 여성, 전통과 근대의 교차로에 서다
  • 제2장 한 달 만의 외출
  • 4. 부녀계와 여성 유대
  • 부녀계의 유형
이임하

6·25 전쟁 뒤 부녀계의 성행과 파탄은 경제적 고통, 가정 불화, 이혼, 자살 등 여성에게 고통을 주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기도 하였지만 여성은 계를 통해 가정 경제를 일으키고 이웃이나 친지, 동창과 새로운 유대 관계를 형성하였다. 6·25 전쟁 뒤 여성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부녀계는 구성원, 운영 방식에서 이전의 계와 차이가 많았다. 이전의 계가 주로 혈연이나 촌락을 중심으로 운영되어 사회적 기능이 앞섰다면 부녀계는 목돈 마련이라는 경제적 기능을 우선하였다. 여성이 계에 가입하는 이유는 “한 번에 목돈을 타 그것을 자본으로 삼아 소상업을 경영하려고 가입하는 경우와 목돈을 타 고리대금을 하여 돈벌이를 하기 위하여 가입하는 경우와 타인에게 빌려 쓴 고리의 차금(借金)을 청산하기 위하여 가입하는 경우”,151)이각우, 「낙찰계의 법률상 문제」 2, 『경찰 고시』 1972년 12월호, 경찰 고시사, 48쪽. 또는 자녀의 학자금 마련, 결혼 비용 마련 등 대부분 목돈이 필요해서였다.

그러나 목돈 마련이라는 목적은 같아도 부녀계의 형태는 다양하였다. 우선 계원 사이의 관계에 따라 친척계, 동창계, 직장 부인계, 동업자계, 사회봉사계 등이 있었다. 또 목돈을 쓰는 성격에 따라 돈계, 양복계, 광목계, 금반지계, 가구계 등으로 나뉘기도 하였다. 그러나 가장 일반적인 유형 구분은 거래 방식에 따라 분류하는 것으로 순번계(번호계), 추첨계, 낙찰계, 정액계, 일수계 등이었다. 이러한 구분이 일반적인 이유는 부녀계의 목적이 대부분 목돈 마련이라는 경제적 기능인 까닭에 어떤 방식으로 곗돈을 탈 것인가가 중요하였기 때문이다.

순번계는 번호계라고도 하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방식이다. 순번계는 계를 조직할 때나 첫 번째 모임에서 곗돈을 타는 순서를 정해 놓고 순서에 따라 불입 금액에 차등을 두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곗돈을 타는 시기를 예측할 수 있어 목돈 마련과 사업 계획 수립에 편리하였기 때문에 가장 많이 조직되었다. 급부 순서는 계주가 순번을 정해서 계원에게 나누어 주거나 심지 뽑기로 정하였다.

나는 번호계만 해 봤어. 순번계. 다달이 나가서 뽑기…… 그렇지 않으면 계주가 다 번호를 매겨서 줘. 너는 몇 번에 타고 몇 번에 타고 내가 안 하고 싶으면 안 하고 그렇게도 하고 싶으면 그 번호 갖고 하고. 3모리를 준다면 앞 번호 주고 뒤 번호 주고 나누어 줘…… 그 자리에서 종이를 25명이면 25장을 해 가지고 거기다 1번, 2번을 써요. …… 그냥 그 자리서 써서 싹싹 비벼서 쟁반에다 놔. 그 와중에서 하나씩 가져가.152)구술 김정묘·면담 이임하, 2006년 3월 2일.

추첨계는 무진의 거래 방식과 비슷하며 대도시에서 유행하였다. 계원이 20명이면 첫 회에는 계주를 제외한 19명이 균등 분담해 낸 곗돈을 계주가 우선 타고, 2회차부터 이미 곗돈을 받은 사람이 받은 곗돈의 일정 금리에 해당하는 금액을 매월 불입하고 계약 금액에서 차감한 나머지 금액은 아직 곗돈을 타지 않은 사람이 균등하게 분담하는 방식이다. 추첨계는 매회 곗돈을 탈 사람을 아직 곗돈을 타지 않은 사람 가운데서 추첨하여 정한다.

낙찰계는 가까운 친지나 동업자, 또는 대도시의 유한 계층에서 유행하 였다. 운영 방식은 계원이 일정액의 곗돈을 균등하게 낸 뒤 입찰해서 최저 입찰자에게 낙찰시키고, 낙찰 뒤 남은 곗돈은 나머지 계원이 나누어 갖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열 명으로 구성된 100만 원 낙찰계라면, 한 사람이 10만 원씩 낸 곗돈 100만 원을 낙찰에 붙인다. 만일 낙찰 금액이 80만 원이면 낙찰자가 80만 원을 갖고 낙찰 받지 않은 아홉 명이 나머지 20만 원을 나누어 갖는다. 낙찰계는 일수계와 함께 급전을 융통하는 수단으로 많이 이용되었는데 일수계에 비해 규모가 컸다. 또한 모든 입찰이 그렇듯이 낙찰 금액이 높으면 금리 차에 따른 이익이 낙찰자에게 돌아갔고 그렇지 않으면 다른 계원에게 이익이 돌아갔다. 따라서 투기성이 강하고 파산 위험이 다른 계에 비해 높았다.

정액계는 곗돈을 타지 못한 사람은 계속해서 매월 일정액의 곗돈을 불입하고 곗돈을 이미 탄 사람은 월정액에 이자를 더하여 곗돈을 불입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따라서 뒤 번호를 받은 사람일수록 곗돈을 많이 탈 수 있는 이점이 있었다.

일수계는 계원이 매일 일정액의 곗돈을 내서 첫 번째 계원에게 우선 급부하여 주고 나머지는 추첨을 통해 곗돈을 타는 순서를 정하였다. 먼저 곗돈을 탄 사람은 월정액과 함께 이미 탄 곗돈에 대한 이자를 내 뒤에 곗돈을 타는 사람의 이자를 보장해 주었다. 일수계는 주로 중소 상인, 노점상, 행상 같은 저소득층이 많이 이용하였고 그렇기 때문에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계는 곗돈을 타는 시기가 중요하였기 때문에 순번계, 추첨계, 일수계 등에서는 무작위적인 추첨 방식을 선호하였다.

그 심지, 구찌 뽑기라고 하는 것 할 때는 아침에 집에서 그것 뽑으려고 …… 계란도 안 깬데 집에서. 아침에 계란 해 먹을 일 있잖아요. …… 미역국도 안 먹고 그것 뽑으려고. …… 내가 돈이 필요한데 서로 양보를 안 해줘요. 그러니까 그것을 뽑아야 하잖아요.153)구술 김정묘·면담 이임하, 2006년 3월 2일.

계의 유형 가운데 가장 일반적인 것은 번호계였다. 1963년 조사에 따르면 번호계의 비율은 70%이고 추첨계·입찰계·일수계의 비율은 10% 미만이었다. 1986년 조사에서도 번호계는 72.6%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154)정한규, 「계의 사회 경제적 요인에 관한 연구」, 『한국 경제』 15, 성균관 대학교 한국 산업 연구소, 1987, 23쪽. 이 글에서 인용하는 ‘1986년 조사’는 모두 이 글을 근거로 하였다. 계 가입자의 대다수가 투기적 성격이 농후한 추첨식이나 입찰식을 피하고 안정적이면서 자금 수요 계획을 세우는 데 유리한 번호계를 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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