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3권 20세기 여성, 전통과 근대의 교차로에 서다
  • 제3장 무식하면 짐승과 같습니다
  • 2. 규율과 훈육 그리고 정체성 찾기
  • 기숙사 생활
김정화

여학교가 생기기 시작한 초창기에는 기숙사에 대한 편견도 컸다. 기숙사는 고아나 가난한 집 딸이 어쩔 수 없어 들어가는 고아원과 동일시되었다. 그러나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학교가 집중되어 있는 서울로 어린 학생이 몰려들자 특히 여학생에게 기숙사는 학교 선택의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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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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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을 도시의 학교로 보내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능력도 중요하였지만, 무엇보다 가족을 떠난 어린 딸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보호의 공간이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딸을 맡기려는 가족은 기숙사를 무엇보다 통제와 감시가 가능한 공간이라고 인식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기숙사는 무엇 보다도 엄격한 규율에 따라 움직이는 그런 곳이어야 했다. 기숙사는 교육보다는 규칙에 따른 순종을 강조하였다. 종소리에 따라 일어나서 종소리로 하루를 마감하는 기숙사의 하루는 시간별로 정해진 규율에 따라 이루어졌다.

내가 하는 일은 종치기였다. 아침 여섯 시에 기상하라는 종, 일곱 시에 식당 당번 사생은 나와서 조반 먹게 준비하라는 종, 일곱 시 반에 다 나와서 조반 먹으라는 종, 낮 열두 시에 다시금 식사 준비 사생 나와서 식탁 준비하라는 종, 열두 시 반에 점심 먹으라는 종, 저녁 다섯 시에 준비하라는 종, 다섯 시 반에 먹으라는 종, 일곱 시에 조용히 각자 자기 방에 들어가 공부하라는 종, 아홉 시 반에 공부 끝내고 취침 준비하라는 종, 열 시에 소등하고 다 잠자리에 들라는 종. 이렇게 하루 열 번 이상씩 기숙사 1·2·3층을 돌아다니며 종을 힘 있게 흔들어 댔다.204)김정옥, 「‘종치기’로 기숙사의 아침을 열며」, 『이화 기숙사 110년 이야기』, 이화 여자 대학교 출판부, 1998, 101쪽.

기숙사의 하루 생활은 오전 6시에 일어나 아침 청소로 시작되었다. 당번은 좀 더 일찍 일어나서 식사 준비를 하였다. 당번은 큰 당번 하나, 작은 당번 하나 합하여 두 사람이 일주일씩 돌아가면서 식사 준비를 하였다. 아침은 오전 7시이며, 점심은 기숙사에서 가지고 간 도시락으로 먹고 저녁은 오후 6시에 먹었다. 그리고 밤 7시 반부터 9시 반까지 각자 방에서 자습을 하고 10시에 종이 울리면 일제히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일주일에 두 번씩 목욕을 하여야 했고, 외출은 일요일과 수요일에 방과 뒤부터 5시까지만 허락되었는데, 동네라도 반드시 가는 곳은 외출부에 기록해야 했다. 또 면회는 수요일 수업이 끝난 뒤에 허용되었는데 사감 선생이 옆에서 감시하였다. 다음은 한 여학교 기숙사생의 유의 사항이다.

5. 본교의 교과서 및 참고서 이외의 독서를 금한다.

6. 허가 없이 가족, 친척, 졸업생, 통학생, 기타 일체 내방자를 사내에 들 이지 말 것

14. 기숙사의 주번은 실장 순번(順番)으로 다음 임무를 맡는다.

    1 기숙사 계원의 명령 전달

    2 아침저녁 점호 등 집합 시의 지휘

    3 등교 전 소등 후 사내의 순검

    4 대청소 후의 점검

    5 주번 일지 기록

15. 취사 당번은 3명을 두고 1주간 임기로 순차 교체하고 다음 임무를 맡는다.

    1 취사에 관한 장부 기재 및 계산

    2 구입하는 사람의 그 금전 출납

    3 메뉴 조정(전주 금요일에 사감에게 제출)

    4 식전 식후의 식당 정돈

17. 시험 전 시험 중은 1시간 이내의 소등 연장을 허가한다.

18. 외출은 수요일과 일요일로 한다.

    1 수요일은 방과 후 5시 반까지로 하고 일요일은 조반 후부터 오후 5시로 한다.

    2 출입 시에는 본인이 명찰을 내주고 2시간 이상의 외출에는 외출부에 기재하여 사감에게 날인을 받을 것

    3 외출에는 반드시 2인 이상이 동행할 것

21. 보통 청소는 아침저녁 2회로 하고, 아침에는 점호 전에 저녁에는 석반 후에 행한다.

22. 대청소는 매주 토요일 방과 후에 행한다.205)숙명 여자 중고등학교 편, 『숙명 70년사』, 숙명 여자 중고등학교, 1976, 149∼150쪽

소소한 일상생활마저도 철저한 규제를 받았다. 이러한 규칙을 지키려면 엄청난 참을성과 성실성이 있어야만 했고, 이러한 일상의 반복은 소녀들 을 순종하는 여성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시간별로 이루어지는 규율을 처음에는 지키기 쉽지 않지만 점차 익숙해지면서 몸이 기억하게 되었다.

엄격한 규율을 강요하였던 학교일수록 부모들은 좀 더 안심하고 딸을 맡길 수 있었다. 엄격한 규율의 기숙사 생활에서 “낫븐 시어머니 미테서 사는 살림보다도 사감을 잘 맛나지 못한 긔숙 생활은 더 괴롭고 쓸쓸하다.”206)KYH, 「우리 학교 사감 선생의 태도─평양 여자 고보 기숙사─」, 『신여성』 제11월호, 1924, 83쪽.고 할 정도로 사감은 절대적 존재였다. 현진건(玄鎭健, 1900∼1943)의 『B사감과 러브레터』는 사감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여러 겹 주름이 잡힌 훨렁 벗겨진 이마라든지, 숱이 적어서 법대로 쪽지거나 틀어 올리지를 못하고 엉성하게 그냥 빗겨 넘긴 머리꼬리가 뒤통수에 염소 똥만 하게 붙은 것이라든지, 벌써 늙어 가는 자취를 감출 길이 없었다. 뾰족한 입을 앙다물고 돋보기 너머로 쌀쌀한 눈이 노릴 때엔 기숙생들이 오싹하고 몸서리를 치리만큼 그는 엄격하고 매서웠다.207)현진건, 『B사감과 러브레터』, 『아름다운 우리 소설』 1, 문예 출판사, 2005, 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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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감과 사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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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감에 대한 이미지는 배운, 더구나 결혼하지 않은 여성에 대해 남성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을 심상화(心像化)한 것이지만 그만큼 소녀들에게 기숙사는 융통성 없는 공간이었으며, 사감은 ‘못된 시어머니’에 대한 상상으로 덧씌워졌다.

그렇다고 기숙사 생활에서 곳곳에 펼쳐진 금기 사항을 학생들이 완벽하게 지켰던 것은 아니었 다. 사진 찍지 못하는 규칙은 졸업할 무렵이나 장난기 섞인 군중 심리가 동원되면 기숙사 철조망 밖에 사진사를 불러다 놓고 철조망에 나란히 서서 바깥 경치를 보는 것처럼 서서 찍는 방법 등을 써서 종종 어기기도 하였다. 한편 학생들은 엄격한 규율 속에서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즐거움을 찾기도 하였다.

보통 기숙사는 본 건물과 식당, 공동 화장실과 세탁실을 겸한 목욕탕, 사감실, 당번실, 면회실, 오락실 등으로 이루어졌다. 보통 한 방에는 1학년에서 4학년까지 한 명씩 배정되어 네다섯 명이 함께 생활하였고, 4학년이 조장이 되어 ‘방 언니’가 되어 그 방을 통솔·감독하였다. 각 방의 ‘방 언니’는 한 달씩 교대로 ‘요장’이라는 이름으로 전체 기숙사 살림살이를 주관하는 책임을 맡았다. 기숙사 생활에서 사감은 시어머니로, 방 언니는 친정어머니로, 학생들은 며느리로 기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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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 실장의 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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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에서 소녀들은 집 안을 아름답게 꾸미고 사는 방식을 배웠으며, 방 언니의 경험은 어떻게 전체의 조화를 만들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하였고, 또 공동생활을 통해 기른 자기희생적이고 인내하는 정신은 가정을 이루었을 때나 사회에 나갔을 때 그대로 활용할 수 있었다. 기숙사 생활은 소녀들에게 난생 처음 집과 어머니와 떨어졌다는 불안감과 함께 가족 이외의 사람들과 함께 생활한다는 새로운 경험이었고, 방 언니는 때론 엄격하지만 때론 어머니와 같은 존재였다.

“마치 맏며느리 실습과도 같았다.”208)최덕경(7회), “엄격했던 기숙사 생활, 삶에 큰 보탬”, 『경북 여고 70년사』, 경북 여자 고등학교, 1970, 210쪽.라고 하는 기숙사 생활은 “제일 잘하기는 빨래 일이며 부지런하고 집안 살림 잘하기로 유명하다고 하니 더 욱이 며느리 택하는 분들에게는 한 표준”이 된다는209)「여학생의 기숙사 생활」, 『동아일보』 1928년 10월 22일자. 것을 학교의 자랑거리로 여길 만큼 한편으로는 의식적·무의식적으로 학생들을 순종하는 여성으로 키워 냈다.

기숙사에서의 생활은 엄격하고 검소한 일상생활이었다. 소녀들끼리 한 공간에서 살면서 기숙사의 엄격한 감시와 통제에 힘들어했지만 동시에 어린 소녀들에게 단련의 기회를 주기도 하였다.

일정한 시간을 엄숙히 직히인다던지 자긔의 할 일은 엇더한 로동이던지 실혀 아니하고 독립독행(獨立獨行)을 할 수 잇는 건젼한 맘을 길너 주는 데는 아모리 하야도 긔숙사만 한 데가 업슬줄노 암니다. 긔숙사는 제일 제가 처리하는 가온대에 남과 가치 사랑 속에 사라가는 힘과 사랑의 별텬디이며 가난한 이나 부귀한 이나 다함께 음식에 가치 배부르고 가튼 자리에 함께 안식(安息)을 하는 평등의 나라일 것이외다. 일뎡한 시간에 이러나 차례를 뎡하야 돌녀가며 밥도 짓고 걸네질도 치우며 빨내도 하는 등 사람의 참맛과 로동의 신성함을 깨우쳐 알게 되는 곳도 이 긔슉사이며 공부하는 시간 노는 시간 잠자는 시간 등 아침에 이러나 밤에 눕기까지 가장 규측뎍 가장 근면뎍로 생활하는 곳이 곳 긔숙사일 것이외다.210)「기숙사 생활의 필요, 정신 여학교 교감 박경희 양 담」, 『동아일보』 1921년 3월 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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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의 엄격한 규칙과 공동체 생활은 한편으로 부자유스러운 경험이었지만 동시에 소녀들은 함께한다는 것, 더불어 자립과 평등의 경험을 배우는 기회이기도 하였다. 서울로 유학을 올 정도의 소녀들은 대부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고 직접 노동한 경험은 거의 없었다. 다종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며, 모든 일을 자기 손으로 해야 하고 힘을 합해야만 하는 기숙사의 공동체 생활은 소녀들끼리의 ‘자매애’를 새롭게 경험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세상에 나서 남자들의 예속을 버서나 한 사람 못술 둘너메고 사회덕으로 활동할 훈련”211)조백추(趙白萩), 「기숙사 생활의 이모양 저모양 」, 『신여성』 제4권 4호, 1926, 32∼33쪽.이라고 생각할 만큼 중요한 경험이었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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