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3권 20세기 여성, 전통과 근대의 교차로에 서다
  • 제4장 반비간에서 주방으로
  • 3. 여성의 공간
  • 근대적 공간 배치와 고립
김춘수

‘집 바깥’과 구분되는 사생활 공간의 구축은 확실히 근대의 특징이다. 근대 이전 서구에서 집 내부는 공간적으로 분할되지 않았으며, 공간의 기능적 분할도 약하였다. 집이 커서 공간적 여유가 있어도 공간이 기능적으로 분화되지 않았던 것은 마찬가지였다.308)이진경, 『근대적 시·공간의 탄생』, 푸른 숲, 1997, 144쪽. 근대 이전 서구 주택의 또 다른 특징은 집과 집 밖이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와 생활공간과 노동 공간이 분리되면서 노동의 흐름은 가족이라는 독립되고 고립된 영역의 탄생을 자극하였다. ‘집 바깥’과 ‘집 안’의 분리는 근대 이후 노동이 사생활 혹은 생활 공간과 분리되는 과정과 긴밀히 연결된다.

이러한 양상은 우리나라 전통적 주거의 특징이기도 하다. 다만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주거 공간에서 성별(性別) 분리의 원리는 다른 요소에 비해 강하게 작용하였다. 상류 주택의 경우 안채가 여성과 아동의 공간으로 규정되었다. 이러한 공간 구분은 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출산 및 육아를 안채에 거주하는 여성만의 일로 만들었다. 우리나라 전통 가옥의 부엌도 주거의 중심 공간에서 분리되어, 여성 노동의 공간으로만 인식되었다. 가족 내 아랫사람의 일손이 많을수록 부엌은 주거 공간 안에서 주 생활공간에서 멀리 떨어져 더욱 탈중심화되었으며, 일하는 사람이 생업을 영위하는 장이 되었다. 이는 여성의 공간과 아랫사람들의 노동 공간이 순차적으로 낮게 인식되었음을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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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가옥의 부엌
전통 가옥의 부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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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부엌에서의 노동은 다양한 주체가 참여하였다. 할머니, 어머니, 장모, 어멈, 애기, 며느리, 계집, 계집종, 아낙, 처녀 등으로 불리는 여성이 드나드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사내자식은 부엌에 들어오면 안 된다.”는 불문율에도 불구하고 남성의 출입이 전면 통제되었던 것은 아니다. 소설에 나타난 부엌과 관련된 용어를 분석한 글을 보면 부엌 출입자가 남자인가 여자인가로 구분되는 것은 아니었다.309)서정자, 앞의 글, 23∼51쪽. 도리어 상류층에서는 남성은 물론이고 여성이 부엌에서 작업하는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 부엌은 취사 노동을 중심으로 한 공간이면서도 여러 사람이 드나들고, 모이고, 들끊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곧 전근대 시기 부엌은 여성의 공간이면서도 부엌을 둘러싼 다양한 사람의 노동 공간이라는 규정이 더욱 강하였다.

이렇듯 관념상으로 부엌은 여성의 공간이었지만, 상류 주택에서는 취사 노동자의 작업장이 었다. 따라서 전통적인 주거 공간에서 부엌은 외부에 더욱 열려 있는 공간이었다. 부엌과 외부의 연결 통로는 부엌의 뒷문이었다. 부엌의 뒷문은 음식을 빼돌리는 통로가 되기도 하고, 정분난 과부와 홀아비가 내통하는 곳이기도 하였다.

한편 전통 사회에서 부엌은 취사 노동을 하는 낮은 신분 사람과 여성의 공간이면서도, 부엌 바깥 사람들과 위계질서를 공고히 하고 재생산하는 공간이었다. 재래 부엌의 구조와 취사 노동의 과정은 오랜 기간에 걸쳐 정교화된 것으로 보이는데, 재래 부엌의 불편함을 지적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다음 세 가지이다. 첫째는 부엌과 거실의 거리가 멀지 않은 데도 새로 신을 신고 마당을 통해 가는 것이다. 둘째는 장독대와 찬광이 따로 있어 이것을 날라 와야 하는 것이다. 셋째는 상을 보아 일일이 각방으로 나르는 것이다.310)『동아일보』 1955년 1월 3일자 이러한 불편함은 과거에 서서 하는 작업 행위와 앉아 있는 휴식, 담소 등의 행위의 장이 상하 위계 또는 성적 역할에 따라 나뉘어 구성원에게 일관되게 부여되었던 점과 관련된다.311)전남일, 「한국 주거 내부 공간의 근대화 요소에 관한 연구」, 『한국 가정 관리 학회지』 제20권 4호, 한국 가정 관리 학회, 2002, 68쪽. 앉아서 상을 받는 사람이나 쉬는 사람과 서서 일하고 시중드는 행위의 장은 명확하게 분리되었다. 이 분리된 선을 하루에도 몇 번씩 넘음으로써 상하 위계가 재생산되었으며 가족 구성원에게 체화(體化)되었다.

칠월에 혼인하니까. 여름이니까 진짓상 갖다 드렸지. 인제 갈이 접어드니까 요마큼씩한 쟁첩이 있잖어, 놋반상? 거기다가 진짓상을 봐 와요. 그러니 얼마나 어려워. 그냥이나 열어제뜨리구 가지구 가는 줄 알어? 죄 뚜껑을 덮어. 반찬 수효대루. 그래 가지구 무릎을 끓어서 진짓상 갖다 드리지, 고 자리에 앉아서 죄 열어서 장반에다가 뚜껑 받치지, 그러구 한참 고 옆에 가 앉았어요, 나가지두 못해요. 그러구 거진 반쯤 잡수믄 또 장반에다 숭늉을 받쳐서 갖다 드리지. 그래서 진짓상이 나야 그 진짓상 물려서 갖다가 치구.312)구술 한상숙·편집 목수현, 『밥해 먹으믄 바느질허랴, 바느질 아니믄 빨래허랴』, 뿌리 깊은 나무, 1992, 52쪽.

밥상을 들고 나오는 예법을 통해 새로운 가족 구성원이 된 며느리는 상하 질서를 몸에 익혔다. 부엌과 거실이 가까워도 신발을 다시 벗고 신고하며 부엌과 거실을 오갔으며, 외상을 한 끼에 세 개씩 내가야 하는 노동은 전근대 가족의 상하 질서를 유지하는 원리였다.

근대 이후로 주거 공간은 외부 공간과의 관계가 약화되고, 주거 공간 내부로 고립된다. 개인, 또는 가족 공동체 단위로 통제하였던 지배적 생활공간-모든 가능한 삶의 행위가 일어났던, 우리나라의 경우 마당까지 포함하여-을 상실하면서 주거의 내부 공간은 외부 사회와 단절된 독립적이고 사적인 기능만을 수행하게 된다.

특히 1970년대에는 부엌의 격리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주부의 노동은 가족들의 일상과 철저히 분리된다. 주부는 식사를 준비하거나 정리하고, 나머지 가족은 격리된 거실에서 신문을 보거나 텔레비전을 보았다. 재래 부엌이건 개량된 부엌이건 입식화된 부엌이건 이 시기 부엌은 독립 공간으로서 난방이 되지 않는 춥고 어두운 공간이었다. 부엌의 입식화 이후에도 식사 공간은 주로 거실이나 안방이었으며, 상을 펴고 음식을 가져다 먹었다. 가사 노동 공간인 부엌과 주 생활공간이 격리되었기 때문이다. 일과 휴식의 분리는 남성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되어, 집은 남성의 휴식 공간이었다. 반면 휴식을 취하는 남성을 위해 여성은 노동을 해야 하였다. 주거 공간에서 휴식과 노동은 공간적으로 나뉘어 이루어졌다. 어떤 조력자도 없이 주부 혼자만의 노동을 예찬하던 이 시기에 여성은 가족을 위해 부엌에 유폐되고, 사랑의 감옥 속에 갇혔다.

1980년대 이후에는 부엌과 인접하여 식탁이 놓이고 거실과 부엌이 일체화되는 이른바 ‘LDK형식’의 부엌이 정착하였다. 공간의 일체화로 부엌과 거실의 구분이 모호해졌으며, 주부의 가사 작업과 가족생활 사이의 구분도 희미해졌다. 1990년대 이후에는 이러한 부엌과 거실의 일체화 경향이 더욱 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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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의 변천-1960년대의 재래식 아궁이 부엌
부엌의 변천-1960년대의 재래식 아궁이 부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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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의 변천-1970년대의 블록 키친
부엌의 변천-1970년대의 블록 키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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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의 변천-거실과 부엌이 통합된 2000년대의 주방
부엌의 변천-거실과 부엌이 통합된 2000년대의 주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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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의 변천-1980년대의 시스템 키친
부엌의 변천-1980년대의 시스템 키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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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부엌과 생활공간의 일체화를 이끌었던 것은 식탁의 도입이다. 식탁이 놓이면서 부엌과 생활공간의 공간적 격리가 극적으로 해소되었다. ‘식사 공간’이라는 장소는 남성을 포함한 가족 구성원 모두가 식사하려면 이동해야만 하는 장소가 되었다. 과거 가사 노동의 기능적 편리함을 저해하고, 성적 불평등을 초래한 부엌과 식사 공간의 분리는 점차 사라지고, 가족의 사회생활의 장으로서 역할이 중시되었다. 또한 여성이 부엌에서 밥상을 들고 연장자나 남성이 있는 장소로 가서 서비스해야 하는 과거의 불평등한 생활 구조가 바뀌었다. 이로써 좌식(坐式) 생활에서 방에 앉아 있는 행위는 곧 서서 일하는 사람으로부터 서비스를 받는다는 전통적 의미가 약화되었다.313)전남일, 앞의 글, 56쪽 반면 입식(立式) 생활은 어떤 행위를 위하여 장소를 이동하는 것을 전제로 한 좀 더 평등한 생활 방식으로 간주되기 시작하였다. 이로서 펜던트(pendant) 아래의 둥근 식탁에서 식사하는 장면은 소위 ‘단란 가정’의 이미지를 만들어 근대화되고 평등하며 선진적인 가족 모델로 정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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