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4권 나라를 지켜낸 우리 무기와 무예
  • 제1장 고대의 무기와 무예
  • 1. 고대 무기의 기본
  • 병사의 기본 무기, 창
김성태

[병사의 기본 무기, 창]10)김성태, 「삼국시대 철모의 연구」, 『사림』 16, 수선 사학회, 2001.

현대의 군인이 휴대하는 기본 병기가 소총이라면, 고대의 전투에서 사졸이 지니던 기본 무기는 창(槍)이었다. 활은 정규군이 아닌 일반민도 소지할 수 있었으며, 수성전에서는 남녀노소(男女老少), 관군민(官軍民)을 막론하고 활을 들고 전투에 참여하였다. 반면 창은 병사만이 지녔던 것으로 파악된다. 김해 예안리 고분군의 발굴 결과로 이런 추측이 가능한데, 화살촉은 여자나 어린아이의 무덤에서도 확인되는 데에 비하여 창의 머리인 철모(鐵鉾)는 장년(壯年)의 남성 무덤에서만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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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창을 든 개마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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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창은 보병용과 기병용으로 크게 구분된다. 보병용은 길이가 대략 250㎝ 정도로 짧은 편이었다. 구조는 매우 단순하여 창대와 창머리로 되어 있다. 창대는 보통 나무나 대로 만들었으며, 습기를 막기 위하여 옻칠을 하기도 하였다. 창머리는 슴베가 있어 창대를 꼽는 조선시대의 것과는 달리, 날 아래에 긴 고깔처럼 생긴 투겁을 만들어 창대에 끼우는 투겁식이 대부분이다. 창머리의 길이는 일반적으로 20∼30㎝ 정도이다. 보통 보병용 창에는 창대 끝에 부착하는 금속제의 고달은 박지 않았다. 삼국시대 전기의 창 중에는 창날이 30㎝ 정도로 지나치게 길고 투겁의 직경이 2㎝ 정도로 극히 좁은, 비실용적인 형태의 초대형 창머리가 확인되기도 한다. 이런 초대형 창머리는 시신을 두는 시상대(屍牀臺) 위에 나란히 깔기도 하고, 다량으로 한 군데에 매납(埋納)하기도 하는 점으로 미루어 부와 권력을 상징하는 의기로 만든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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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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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병용 창은 전문 용어로 삭(矟)이라고 부른다. 삭은 마상용(馬上用) 창으로 창대의 양쪽에 창머리가 있어서 말 위에서 전후좌우로 공격과 수비를 하기에 편리한 길이와 구조이다. 삼국시대 중기에 말과 무사 전체를 갑옷으로 무장한 중무장 기병이 전쟁의 총아로 등장하면서, 그에 부응하여 삭도 중요한 병기로 부상하였다. 삭의 길이는 일반적으로 350㎝ 이상인데, 심지어 500㎝가 넘는 것도 있다. 전투에서 삭을 가지고 싸우는 모습은 삼실총의 공성도(攻城圖)에 잘 나타나 있으며, 삭으로 무장한 중무장 기마단의 모습을 여러 고분의 행렬도에서 흔히 접할 수 있다. 고구려 고분 벽화를 자세히 보면 삭에는 대부분 깃발이 걸려 있는데, 부대를 나타내는 심벌과 같은 장식적·상징적 용도도 있겠으나 접전할 때 깃발로 적을 현혹시켜 공격 효과를 극대화하는 구실을 하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한편 삼국시대 후기가 되면 신라가 보병 장창 부대를 운용하게 된다. 현재까지 그 실체를 알 수 있는 고고학 자료는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삼국사기』에 흑의장창말보당(黑衣長槍末步幢)이라는 특수 부대가 보이고,11)『삼국사기』 권40, 잡지(雜志)9, 직관 하(職官下) 무관(武官). 그들이 삼국 통일 전쟁과 나당 전쟁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사실로 미루어, 장창 보병 부대가 있었던 것은 거의 확실하다. 신라는 이런 장창 보병 부대를 신설하여 철기(鐵騎) 군단을 주축으로 하는 고구려의 보기군(步騎軍)을 효과적으로 공략하였고, 더 나아가서는 당나라와의 전투에서 당의 기병을 무력화시켰다. 보병용의 장창은 기병을 상대하기 위한 무기였으며, 그 길이는 기병의 그것과 유사하였다고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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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연미형 투겁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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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직기형 투겁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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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연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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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직기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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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을 부르는 명칭은 창(槍), 모(矛), 모(鉾) 등으로 다양하나, 일반적으로 창날을 자루에 끼울 때 창날 아래의 슴베를 장대를 꼽으면 창(槍), 그에 비해 소켓 모양의 투겁에 창대를 삽입하여 고정시키면 모(鉾)라 한다. 고대의 창모(槍鉾)에는 투겁에 창대를 끼운 투겁창인 모(鉾)가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투겁창의 형식은 투겁의 끝이 제비 꼬리형인가 아니면 그냥 평탄형인가에 따라 연미형(燕尾形)과 직기형(直基形)으로 구분하고, 한편으로 창날과 투겁의 경계가 뚜렷하여 관부(關部)가 있는가 아니면 창날과 투겁의 경계가 없이 그냥 직선형인가에 따라 유관식(有關式)과 무관식(無關式)으로 나눈다. 따라서 투겁창의 형식은 크게 유관연미형(有關燕尾形), 유관직기형(有關直基形), 무관연미형(無關燕尾形), 무관직기형(無關直基形)으로 분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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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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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전형적인 형태와 함께 특이한 모양의 투겁창도 확인된다. 3세기를 중심으로 영남 지방에서는 창날이 칼날처럼 긴 데에 비하여 투겁이 매우 짧은, 비실용적 형태의 짧은 투겁식 창이 출토되는데, 재력(財力)과 권력(權力)을 과시하기 위한 부장품으로 평가된다. 5세기 고구려와 신라에서는 투겁의 윗부분에 원반 모양의 철판을 끼운 석반부철모(錫盤付鐵鉾)가 대형 고분을 중심으로 부장되는데, 이는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빈번하게 확인되는 깃발창으로 볼 수 있다. 7세기가 되면 투겁창의 길이가 짧아지고 특히 창날의 크기가 투겁 길이의 절반 정도로 축소되는데, 이는 투겁창의 다량 생산에 따른 결과로 추측된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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