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4권 나라를 지켜낸 우리 무기와 무예
  • 제1장 고대의 무기와 무예
  • 3. 청야수성에 따른 공·수성용 무기
  • 부소산성의 수성용 무기와 백제 최후의 결전
김성태

[부소산성의 수성용 무기와 백제 최후의 결전]44)김성태, 「부소산성의 무기」, 『부소산성』, 부여군, 2006.

백제 멸망 당시 도성이었던 부소산성(扶蘇山城)에서는 그때의 전투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유물이 발굴되었다. 그중에서도 동문지(東門址)에서 덩어리 상태로 일괄 출토된 대형 무기류는 사비성 함락 당시 실전에서 쓴 수성용 무기의 전형(典型)이라 할 수 있고, 이를 통하여 7세기 중엽 수성용 무기의 성격을 파악하고 또한 당시의 전황(戰況)을 대략 추정할 수 있다.

이들 유물 구덩이에서 출토된 주요 무기는 대형 철겸 14점, 갈고리창 10점, 삼지갈고리 1점, 양지창 4점, 대형 철촉 20여 점 등으로, 모두 대형 무기인 점이 무엇보다도 눈길을 끈다. 출토 상태로 미루어 이 철기들은 한군데 모아 둔 상태에서 폐기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아마도 산성이 함락될 것을 대비하여 구덩이를 파서 묻은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문헌 기록과 형태를 참고하여 이들 무기의 용도를 파악해 보면, 대형 철촉은 대형의 상노(床弩)에 사용되었던 노촉(弩鏃)으로, 양지창은 성을 오르는 적의 손을 공격하는 무기로, 갈고리창은 성벽을 오르는 적을 걸어 당기는 무기로, 대형 철겸은 성벽을 오르는 적을 걸어 베는 무기로, 대형 철모는 성벽 상단에 접근한 적을 찌르기 위한 무기로, 삼지갈고리는 성벽 아래의 적을 걸어 올리는 무기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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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소산성 출토 무기
부소산성 출토 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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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괄로 수습된 대형의 무기와 기타 부소산성 주변에서 출토된 유물을 참고로 하여 백제 멸망 당시 나당 연합군과 맞서 싸운 백제의 전투 장면을 상상해 보자. 우선 백제군은 백강을 무사히 건너 부소산성 앞 100m 지점까지 진격한 적군에게 노포(弩砲)로 포석(砲石)과 대형 철촉을 집중 발사하며 방어를 시작하였을 것이다. 그런 1차 포격선을 뚫고 성벽 가까이에 접근한 적에게는 장궁(長弓)을 쏘아 2차 공격을 퍼부었을 것이며, 성벽에 거의 도달한 적병에게는 활을 쏘거나 돌을 던지기도 하였을 것이다. 적군의 기마병들은 성벽 가장자리에 뿌리거나 묻어 놓은 철질려(鐵蒺藜)를 밟고 공격력을 잃거나 진격하지 못하고 멈칫거렸을 것이다. 이런 방어망을 헤치고 성벽을 오르는 적군에게는 갈고리창으로 걷어 올리거나 창으로 찌르거나 철겸을 휘두르며 성벽 위에 한 걸음도 디디지 못하도록 막는 한편, 삼지갈고리를 이용하여 적병을 찍거나 걸기도 하고, 사다리를 타고 오르는 적병을 양지창으로 찌르기도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백제군의 결사적인 항전에도 불구하고 성이 적의 수중에 떨어지자 그들은 황급히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든지 아니면 도주하였을 것이다. 이때의 정황은 유물이 집중 출토된 지역의 소토층과 주변에서 발견된 숯 등이 잘 대변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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