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4권 나라를 지켜낸 우리 무기와 무예
  • 제3장 부국강병의 토대, 조선 전기의 무기와 무예
  • 2. 평화 속에 잠든 무기와 무예
  • 민간에서 이어진 무예
  • 씨름
박재광

한편 궁중에서 관람용 유희의 하나로서 많이 행하던 씨름도 점차 쇠퇴하였고, 민간에서도 유희로 인식되어 천시되어 갔다. 그러나 『조선 왕조 실록』 외에도 『경도잡지(京都雜誌)』,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김해읍지(金海邑誌)』, 『완당집(阮堂集)』 등의 문헌을 보면 장난삼아 씨름을 하다 진 사람이 이긴 사람을 칼로 죽이는 일까지 생길 정도로 민간에서의 씨름 열기는 대단하였던 것 같다.

따라서 고려시대를 거치며 유흥과 오락의 일면을 보이던 씨름이 조선시대에 들어와 점차 마을과 마을의 대항전이나 풍년을 기원하는 숙원 행사, 단오절 씨름 놀이 등 연례적인 대규모 축제에서 이루어지는 형식의 한 가지로 자리 잡은 것이다. 단오에는 남성 놀이로서 씨름이 반드시 행해졌으며, 7월 중원절이나 8월의 한가위에도 씨름 놀이를 찾을 수 있다. 이후 씨름은 서울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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