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5권 하늘, 시간, 땅에 대한 전통적 사색
  • 제2장 시간의 측정과 보시
  • 5. 물시계, 자격루와 옥루
  • 세종대 이후의 자격루
문중양

세종대에 장영실이 만든 자격루는 한동안 조선의 표준 시계로 사용되었다. 경복궁에 보루각이란 누각을 짓고 그 안에 자격루를 설치하였다. 소위 ‘보루각루’가 이를 두고 이른 말이다. 그런데 너무나 정밀하고 복잡한 시보 장치를 지닌 자격루는 운영이 쉽지 않았던 듯싶다. 고장도 잦았고, 고장이 나면 고치기도 쉽지 않았다. 결국 중종대에는 오래되어 낡아 자주 고장나던 자격루 대신 100년 만에 새로운 자격루를 다시 만들어 창덕궁에 신 보루각(新報漏閣)을 짓고 설치하였다. 이때가 1534년(중종 29)이었다. 현재 덕수궁에 남아 있는 자격루 유품이 바로 이때 새로 만든 것이다. 중종대에 새로 만든 자격루, 즉 신보루각루가 제 역할을 하면서 예전의 자격루는 다시 경복궁으로 보내졌다.

이후에도 자격루는 여러 번의 개수와 보수를 거쳤다. 특히, 1654년(효종 5) 시헌력의 시행과 함께 시제(時制)가 달라지면서 상당한 변화가 불가피하였다. 12시 100각법에서 12시 96각법으로 바뀌면서 예전의 잣대를 계속 쓸 수 없기 때문이었다. 또한, 절기에 따라 바꾸는 밤 시간의 잣대도 세종대에 11개를 쓰던 것을 더욱 세분하였다. 1754년부터는 24전을 쓰다가 1789년부터는 더 늘려 37전을 사용하였다. 이렇게 조선시대 거의 전 시기 동안 표준 물시계로 사용되던 자격루는 1895년(고종 32) 과거의 보시 제도를 폐지하면서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지고, 박물관의 유물 신세로 전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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