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5권 하늘, 시간, 땅에 대한 전통적 사색
  • 제3장 역과 역서
  • 2. 우리나라 역법의 역사
전용훈

‘캘린더 마케팅’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현대 사회에서 받아들이는 달력의 의미는 전통시대와 완전히 달라져 있다. 광고 매체가 되어 버린 요즈음의 달력은 더 이상 위정자가 백성을 위해 반사해 주는 시혜가 아닌 것이다. 달력의 종류도 많아져서 연말연시면 기업, 식당 등 각종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너나없이 달력을 선물하기 때문에 집 안에 두세 개 이상 달력이 없는 집이 없다. 유명 화가의 그림, 서예가의 글씨, 종교적인 염원 등을 함께 인쇄하여 모양을 달리하여 저마다의 개성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현대의 달력이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기호에 맞추어 다양해졌다고 하더라도, 달력은 언제나 시간의 규범을 담고 있어야 달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집 안의 어떤 달력을 보더라도 배경으로 들어가는 그림과 광고로 넣은 가게나 은행의 상호가 다를 뿐, 1년 열두 달에 요일별로 날짜를 배열한 것은 모두 같을 수밖에 없다. 요즈음의 달력은 보통 한 달 단위로 날짜를 모아서 표시해 두었기 때문에 ‘달력’이라고 하는데, 종이 한 장에 날짜를 하루만 표시하여 날마다 한 장씩 넘기는 것은 ‘일력(日曆)’이라 부른다. 마찬가지로 한 장의 종이에 1년치의 날짜를 모두 표기하였다면 ‘연력(年曆)’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역에 관련된 용어를 구분하여 정리하자면 이렇다. 천체 현상에 기초해서 계절, 날짜, 시간을 추산하는 것을 전통시대에는 역이라고 하였는데, 이렇게 추산된 결과를 정리하여 묶어 낸 것을 책력(冊曆)이라고 하였다. 추산의 결과를 1년 단위로 나타낸 것은 연력, 한 달 단위로 나타낸 것은 달력(혹은 월력), 하루 단위로 나타낸 것은 일력이라고 부르는 것도 여기에서 유래하였다. 책력은 계산 결과를 묶은 책이라는 뜻이니 그것을 다시 역서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역사서에는 책력이라는 말과 함께 역서라는 말이 자주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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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차계사역서(歲次癸巳曆書)
세차계사역서(歲次癸巳曆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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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달력은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까? 달력이 천체 현상에 기초한 계산의 결과라는 점에서 당연히 달력을 만들기 이전에 천체 현상을 계산해 놓은 자료가 있어야 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한국 천문 연구원에서 천문학자들이 다음 해에 일어날 천체 현상을 미리 계산하여 이 결과를 『역서』라는 이름의 책자로 매년 11월 중순에 발행한다. 그러면 민간에서 달력을 만드는 사람들은 이 자료에 따라서 다달이 날짜와 요일을 배치하고, 예쁜 사진이나 그림을 함께 넣어 세련된 달력으로 인쇄한다. 보통의 달력에서는 양력 날짜와 음력 날짜, 요일, 공휴일 등 기본적인 것만 넣어서 인쇄하므로 자세한 천체 현상의 정보가 필요 없을 듯하지만, 천문 연구원에서 발행하는 역서에는 태양과 달의 출몰 시간, 천체의 위치 등 정확한 천체 운행의 정보가 총망라되어 있다. 책상 위에 굴러다닐 정도로 흔하고 간단한 달력을 만들려면, 엄청나게 정밀하고 방대한 과학적 데이터가 기본 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전통시대에도 달력을 만드는 과정은 현재와 다르지 않았다. 조선시대, 고려시대 혹은 그보다 먼 옛날에도 달력을 만들고 사용하는 방식은 오늘날과 유사하였다.93)조선시대 역서 편찬의 과정에 대해서는 허윤섭, 「조선 후기 관상감 천문학 부문의 조직과 업무-18세기 후반을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0이 좋은 참고가 된다. 일단 천문학을 담당한 천문 관서(天文官署)에서 다음 해에 일어날 천체 현상을 총망라하여 계산한 방대하고도 정밀한 데이터를 모은다. 그런 다음 모아 놓은 데이터에 기초해서 일상에서 사용할 달력을 만든다. 달별로 날짜를 매기고, 각 날짜마다 규칙에 따라 생활의 지침을 배당하였다. 날짜 아래 칸에 “이사하기 좋은 날”, “집수리하기 좋은 날”과 같은 문구를 써넣는 것이다. 날짜를 표시할 때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달별로 한 장의 종이에 모으고, 1년치를 모두 묶어 책으로 만들었으므로 이를 달력 혹은 책력이라 불렀다. 옛날에는 천문 관서에서 천체 운행의 정밀한 계산은 물론, 이 자료에 기초해서 일상에서 쓸 달력까지도 만들었다는 점이 현재 천문 연구원의 업무와 다른 것 중의 하나이다.

현재 천문 연구원이 천체 현상을 계산하는 방법은 현대 천문학적인 원리에 따른 것이다. 뉴턴(Isaac Newton)의 중력 이론과 천체 역학 이론에서 출발하여, 더욱 정밀하게 발전한 현대적인 천체 역학 이론에 따라 컴퓨터를 사용하여 계산을 해낸다. 마찬가지로 옛날의 천문 관서에서도 천체 현상을 계산할 기반 이론과 방법이 있었다. 다만 현대의 천체 역학 이론은 만국 공통이라고 할 수 있지만,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다. 나라마다 다르고, 시대마다 달랐다고 할 수 있다.

예로부터 일상의 달력을 만드는 자료가 되는 천체 현상을 계산하는 데 필요한 기반 이론을 보통 역법(曆法)이라고 불렀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달력을 만드는 방법’쯤 된다. 또한, 이 기반 이론을 바꾸는 것을 ‘역법을 고친다는 뜻’으로 ‘개력(改曆)’이라고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초부터 명나라에서 들여온 대통력법(大統曆法)을 적용하여 달력을 만들다가, 효종 때부터는 서양 천문학 이론이 가미된 시헌력법(時憲曆法)을 적용하여 달 력을 만들었다. 여기서 대통력법과 시헌력법은 기반 이론을 가리키므로 “효종 때 대통력법에서 시헌력법으로 개력하였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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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진년 대통력
경진년 대통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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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대통력법으로 만든 달력을 흔히 ‘갑자년 대통력(甲子年大統曆)’, 시헌력법으로 만든 달력을 ‘을축년 시헌력(乙丑年時憲曆)’ 등으로 간지를 넣어 이름 붙였으므로, 대통력법으로 만든 모든 달력을 그냥 ‘대통력’, 시헌력법으로 만든 모든 달력은 그냥 ‘시헌력’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반면에 기반 이론을 ‘대통력법’이나 ‘시헌력법’이라고 쓰지 않고 그냥 ‘대통력’, ‘시헌력’ 등으로 부르기도 하였는데, 이 때문에 ‘시헌력’이라고 하면 이것이 해마다 발행하는 일반 달력을 가리키는지, 기반 이론이 되는 역법을 가리키는지 혼란스럽게 되었다.

중국에서는 오랜 옛날부터 나라를 세우면 가장 정확한 달력을 백성들에게 반포해 주는 것을 제왕의 임무로 여겨 왔다. 국왕 자신이 하늘의 시간을 백성들에게 정확히 알려 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만큼 왕이 되어 나라를 다스릴 능력도 있으니 믿고 따르라는 것이다. 그래서 새 왕조가 들어설 때마다 국왕 주변의 많은 사람이 저마다 자신이 개발해 낸 이론을 적용하여 천체 운행을 계산해야 정확한 달력을 만들 수 있다고 하면서 개력할 것을 주장하여 새로운 이론을 적용한 새로운 달력이 만들어지곤 하였다. 심지어 같은 왕조 내에서도 정치 세력의 교체가 있을 때, 새로운 이론을 적용한 새 역법으로 바꾸는 경우도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체로 중국에서 만든 역법을 수입해서 그 이론을 적 용하여 국내에서 쓸 달력을 만들어 왔다.94)중국 역법 도입의 역사에 관해서는 유경로, 『한국 천문학사 연구』, 녹두, 1999, 7∼26쪽, 183∼198쪽 ; 이은성, 앞의 책, 321∼365쪽 참조. 백제에서는 중국 남조의 송나라에서 만든 원가력법(元嘉曆法)을, 신라에서는 당나라에서 만든 원가력법과 대연력법(大衍曆法)을, 발해에서는 당나라에서 만든 선명력법(宣明曆法)을, 고려에서는 당나라에서 만든 선명력법과 원나라에서 만든 수시력법(授時曆法)을, 조선에서는 수시력법과 명나라에서 만든 대통력법을, 그리고 조선 후기에는 청나라에서 만든 시헌력법을 수입해서 달력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시대의 기록은 너무나 소략하고 역법이 사용된 연대도 분명치 않아 정말로 역법을 사용하였는지 짐작하기조차 어렵지만, 전반적으로 중국의 역법에 기초하여 국내에서 쓸 달력을 만들어 왔을 것으로 생각된다. 고려시대도 마찬가지로 나라가 세워진 직후부터 선명력법을 사용하여 달력을 만들다가, 원나라에서 수시력법으로 개력하자 이 역법을 배워 와서 사용하였다. 또한, 조선에서도 초기에는 고려 때 배워 온 수시력법과 새로이 명나라에서 수입한 대통력법을 참고하여 달력을 만들었다.

우리나라가 중국의 역법을 수입하여 독자적으로 달력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중국과 우리나라의 역사서에 기록된 날짜를 대조하여 유추해 볼 수 있다.95)한국 천문 연구원에서 펴낸 『삼국시대 연력표』, 『고려시대 연력표』, 『조선시대 연력표』 등을 참고할 수 있다. 고려시대 이전은 기록이 없어서 잘 알 수 없지만, 고려시대부터는 중국과 고려의 날짜에 차이가 나는 경우를 쉽게 찾을 수 있다. 현재에도 중국과 한국은 1시간의 시차를 두고 있듯이, 중국 대륙과 한반도는 경도상으로 거리가 있다. 만일 달의 삭(朔)이 중국과 한반도의 중간 지점쯤에서 일어나면, 어느 달의 마지막 날과 다음 달의 첫날이 서로 어긋나는 경우가 생긴다. 예를 들어 같은 날을 중국에서는 2월 1일로 적고, 고려는 1월 30일로 적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이런 일은 두 나라가 똑같은 역법을 기초로 하여 달력을 만든다고 하더라도, 각각 관측자가 있는 곳의 지방시(地方時)를 기준으로 계산을 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러므로 중국과 고려의 날짜가 어긋나는 일이 있다는 것은 고려에서도 독자적으로 자국의 기준에 맞추어 천문학적 계산을 하였다는 증거이다. 조선시대에는 중국과 날짜가 어긋나는 경우가 고려시대보다 적다. 이것은 조선시대에 천문학 계산 능력이 줄어들어서 중국을 추종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사대주의 이념에 따라 중국과 외교적으로 더욱 종속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날짜도 중국에 맞추려는 생각이 더 강했다고 볼 수 있다. 한반도의 기준에 따른 계산을 할 수 있었지만,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중국의 날짜와 어긋나는 계산이 나왔어도 중국 날짜에 따르는 일이 많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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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헌서(時憲書)
시헌서(時憲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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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때에 깊은 천문학 연구를 통해 수시력과 대통력에 모두 약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두 역법의 장점을 취해 칠정산법(七政算法)을 새로 만든 것은 우리나라 역법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물론 칠정산법을 새로운 역법이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어쨌든 달력을 만드는 기반 이론을 조선에서 자체적으로 수정하였다는 것은 큰 의의가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중국의 것을 대부분 모방한 것인지, 중국에서 나온 두 역법을 절충한 것인지를 따지기 이전에 우리 나라에서 쓸 달력을 만들기 위한 기반 이론을 우리나라 사람들의 힘으로 만들어 낸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칠정산법에 따라 만든 달력도 대통력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조선시대 사람들이 이것을 완전한 개력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1654년(효종 5)에는 200여 년 넘게 사용해 온 칠정산법을 다시 시헌력법으로 바꾸었다.96)시헌력법 도입과 시행에 관해서는 전용훈, 앞의 글, 2004, 275∼333쪽 참조. 시헌력법은 서양의 예수회 선교사들이 중국에 와서 전해 준 서양 천문학의 기반 이론을 채용한 역법이었다. 때문에 천체 운동을 계산할 때 톨레미(Ptolemy, 100∼178)나 브라헤(Tycho Brahe, 1546∼1601) 등 서양 천문학자들의 천체 운동 모델이나 계산법을 사용하였다. 중국이나 조선에서 이 역법을 쓰려고 할 때 서양식 역법을 쓴다고 반대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이 역법은 천체 현상의 계산에서 역대의 다른 역법보다 더 정확하였기 때문에 결국 채택되었고 약 250년 정도 사용되었다. 1896년(고종 33) 우리나라는 근대적 개혁을 단행하면서, 역법도 지금까지 써 왔던 시헌력법을 흔히 양력으로 불리는 태양력, 즉 그레고리 역법(Gregorian calendar)으로 바꾸어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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