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5권 하늘, 시간, 땅에 대한 전통적 사색
  • 제4장 땅의 표현과 기술
  • 1. 땅에 대한 다양한 관념
  • 중화적 세계관
오상학

고대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의 생활 공간을 세계의 중심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였다. 인간이 지니고 있는 자기 중심적 사고와 행동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라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자신이 생활하고 거주하는 공간을 세계의 중심으로 여기는 관념은 연원이 매우 오래고 또한 다양한 문화권에서 볼 수 있다. 고대 그리스시대에 우주의 중심으로 권위를 부여받은 아폴로 신전의 옴파로스(Omphalos)는 대표적인 예이다. 이러한 사고는 기원전 6세기 메소포타미아의 점토판(粘土板) 지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기독교적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는 중세의 T-O지도에서는 세계의 중심을 예루살렘으로 설정하였다. 이슬람 세계에서는 그들의 성지인 메카를 세계의 중심으로 여기기도 하였다.109)Woodward, D., eds, Art and cartography,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7, Chicago and London.

고대 중국에서도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공간을 세계의 중심으로 생각하였다. 고대 중국의 세계관은 가운데에 중국인 중화(中華), 그 주위에 이민족의 거주지인 사해(四海), 그 외부에는 미지의 공간인 대황(大荒) 또는 사황(四荒)이 배치되어 있는 동심원적 구조를 띠고 있다. 중심-주변의 지리적 관계에서 생겨난 중화관은 이후 문화적 차원의 화이관(華夷觀)으로 발전하여 중국을 문명화된 화(華), 이민족을 야만 상태인 이(夷)로 구분하였다. 이러한 중화 중심의 세계관은 시대에 따라 다소의 변화가 있었지만, 본질적인 요소는 꾸준히 이어져 내려왔다.

중심과 주변의 구분을 통해 형성된 중화적 세계관의 원형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지리학적 문헌이라 할 수 있는 『서경(書經)』 「우공(禹貢)」에서 볼 수 있다. 여기에서 나타나는 소박한 중화적 세계관이 정치적·문화적 차원으로 추상화된 것이 오복설(五服說)이다. 이는 「우공」의 말미에 수록되어 있는데, 계층적인 지역 구분으로 국토의 이상적 형태를 표시하고 있다. 500리 단위로 지역을 구분하였는데, 중심은 왕기(王畿), 왕성의 곡식을 확보하기 위한 지역인 전복(甸服), 경대부(卿大夫)·남작(男爵)·제후(諸侯)가 관할하던 후복(侯服), 문치(文治)와 무단 정치가 공존하는 수복(綏服), 오랑캐(夷)와 가벼운 죄인이 거주하는 요복(要服), 오랑캐(蠻)와 중죄인이 거주하는 황복(荒服)이 그것이다.

1743년에 간행된 정지교(鄭之僑)의 『육경도(六經圖)』에 수록된 요제오복도(堯制五服圖)는 오복설을 모식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중심에서 주변으로 갈수록 왕화(王化)의 정도, 문명의 수준 등이 낮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심원적 구조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원이 아닌 사각형의 구조를 띠고 있는 것이 이채롭다. 이것은 일종의 지도로서 당시 방형(方形)의 대지라는 지리적 세계관에 기초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공」에 수록된 소박한 중화적 세계관은 중국 고대의 지리서인 『산해경(山海經)』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산해경』에서 보여 주는 세계는 「우 공」의 것보다는 훨씬 확대된 세계였다. 『산해경』은 「산경」과 「해경」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이 기술하고 있는 공간은 중국을 중심으로 그 주위에 해내 제국(海內諸國)을 배치하고 그 외방에 해외 제국(海外諸國), 그 바깥에는 대황 제국(大荒諸國)이 에워싸고 있는 구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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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경도』의 요제오복도
『육경도』의 요제오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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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주변의 동심원적 공간 구조는 중국 고대의 대표적인 백과전서류라 할 수 있는 『회남자(淮南子)』에서 좀 더 정형화된 형태로 나타난다. 여기에서는 중심이 구주(九州)가 되는데 사방 1,000리이다. 그 외부에 팔인(八殥)이 있는데 마찬가지로 사방 1,000리이다. 팔인의 밖에는 사방 1,000리의 팔굉(八紘)이 있고, 팔굉의 밖에는 팔극(八極)이 있다.110)『회남자(淮南子)』 권4, 지형훈(地形訓). 『회남자』에서는 『이아(爾雅)』에서 제시되었던 중심-주변의 방위 관계가 기본 4방위에 중간 방위를 추가하여 8방위로 더욱 확장된 점이 특징이다.

그러나 『산해경』이나 『회남자』 등에서 볼 수 있는 좀 더 확장된 중화적 세계관은 한대(漢代) 이후 유교가 정착되면서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유교적 입장에서 볼 때 앞에서 열거한 서적들은 이단서(異端書)에 불과하여 성현의 사상을 수록하고 있는 유교의 경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지리적 세계에 대한 이후의 논의는 현실적으로 왕화가 미치는 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데, 경험적으로 접하는 주변 지역만이 의미를 지닐 수 있었다. 인간이 거주하지 않는 지역, 경험적으로 확증할 수 없는 상상 속의 세계는 현실성을 강조하는 유학의 입장에서는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이로 인해 중국에서의 세계 지도는 중국과 그 주변의 조공국(朝貢國)으로 구성되는 직방 세계(職方世界)를 중심으로 그려지곤 하였다. 대표적인 예로 1136년 송나라에서 제작된 지도인 우적도(禹迹圖)와 화이도(華夷圖)를 들 수 있다. 이후 중국에서의 세계 지도는 이러한 직방 세계 중심의 세계 지도가 주류를 이루는데, 명대에 제작된 고금형승지도(古今形勝地圖), 황명직방지도(皇明職方地圖) 등 많은 지도가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전통은 계속 이어져 서양의 지리적 지식이 도입되는 19세기에도 직방 세계 중심의 세계 지도가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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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형승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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