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5권 하늘, 시간, 땅에 대한 전통적 사색
  • 제5장 풍수지리와 정치
  • 1. 음양오행 사상과 풍수
  • 음양오행과 기
임종태

옛사람들이 땅과 인간의 감응을 설명하는 데 사용한 ‘합리적’ 이론은 바로 음양오행(陰陽五行)과 기(氣)의 학설이었다. 그 바탕에는 이 우주를 이루고 있는 천지, 만물, 사람이 서로 조화롭게 연관되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유기체적 세계관이 깔려 있었다. 이러한 세계관은 한국의 전통 사회에만 존재하였던 것은 아니다. 세계의 사물을 죽어 있는 물질 입자들의 기계적 운동으로 파악하는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1650), 뉴턴(Newton Sir Isaac, 1642∼1727) 이후의 서구 과학이 등장하기 이전에는 모든 문명권이 이러한 생각을 공유하고 있었다. 고대인들의 눈에는 산과 강물, 하늘의 기후, 사람의 노동이 서로 의존하며 전체 우주의 조화로운 리듬에 함께 참여하고 있었다. 만물의 상호 연관에 대한 소박한 경험은 문명이 발전하면서 학자들에 의해 더욱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형태로 표현되었는데, 서구의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철학이나 동아시아 문명권의 음양오행 사상이 대표적인 예이다.

음양오행과 기의 사상은 중국의 춘추전국(春秋戰國)시대에 뚜렷이 나타나서 한(漢)나라 때에 이르러 포괄적이며 추상적인 이론으로 발전하였다. 음양과 오행의 관념은 기본적으로 세계를 이루는 사물들, 그리고 그 사물들이 겪는 변화를 둘 또는 다섯으로 구분하여 분류하는 범주 체계이다.

음양의 관념에 따르면, 세계 만물은 서로 대립하면서도 보완하는 두 범주로 나누어진다. 이때 양은 능동적이며 남성적인 상태, 음은 수동적이며 여성적인 상태를 지칭한다. 예를 들어 하늘, 태양, 임금, 남성, 운동 등은 양(陽), 반대로 땅, 달, 신하, 여성, 정지 등은 음(陰)으로 분류되었다. 이러한 생각은 고대 중국의 점술서(占術書)로서 이후 동아시아의 세계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주역(周易)』의 밑바탕이 되었다. 『주역』의 괘(卦)는 각각 양과 음을 뜻하는 이어진 선(─)과 끊어진 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음과 양의 기호가 합쳐져서, 세계 만물 및 그 변화를 표현하는 8괘와 64괘가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8괘 중의 이괘(離卦, ☲)는 음을 가운데로 하고 양이 그 바깥을 둘러싼 형상으로 불, 여름, 남쪽 등을 상징한다.

이에 비해 오행은 삼라만상을 금(金), 목(木), 수(水), 화(火), 토(土)의 다섯으로 분류하는 체계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이 오행을 만물을 구성하는 다섯 요소로, 즉 서구의 ‘원소(element)’와 유사한 개념으로 이해하였다. 하지만 실은 오행이란 만물이 처해 있는 동적인 상태를 표현하는 범주들이었다. 고대 중국인들은 이 오행의 체계를 특히 선호하여, 만물을 다섯의 분류쌍으로 나누는 일에 열심이었다. 오행을 설명하는 가장 이른 문헌인 『상서(尙書)』 「홍범(洪範)」에 이미 오행을 다섯 가지의 맛, 즉 오미 (五味)와 연관시켰으며, 이러한 분류 체계는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포괄적이고 복잡해졌다. 하늘의 행성을 오성(五星)으로, 사람 몸속의 기관을 오장(五臟)으로, 곡식을 오곡(五穀)으로, 방위를 오방(五方, 동서남북 및 중앙)으로 나누는 등, 세계의 모든 사물이 오행으로 분류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로 오행의 체계는 방대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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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도설(太極圖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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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시대로부터 독자적으로 발전해 온 기의 관념은 어떤 점에서 서구의 원소와 비슷하게, 만물의 바탕을 이루는 어떤 ‘물질적’ 기초를 뜻하였다. 그런 점에서 만물은 기로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한나라 때의 문헌인 『회남자(淮南子)』는 우주 만물이 기의 소용돌이로부터 형성되는 과정을 서술하였으며, 이러한 관점은 이후 중국 및 동아시아 세계관에 깊이 뿌리 내렸다. 우주의 만물은 아직 분화되지 않은 기의 상태에서 출발하여 그것이 나누어지고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생겨난다. 예를 들어 기 중에서 가볍고 맑은 것은 천체가 되고, 무겁고 탁한 것은 뭉쳐서 땅이 된다. 생명체의 경우 사람이 맑고 영명한 기가 모인 것이라면, 동식물은 탁한 기가 모여서 된 것이다. 따라서 우주의 만물은 각각 특수한 상태에 처하거나 독특한 성질을 지닌 기로 이루어진 것이다.

음양과 오행은 바로 기가 처한 상태를 뜻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기가 능동적이고 남성적인 성격을 보이면 이를 양의 상태에 처한 기, 다시 말해 양기(陽氣)라고 부른다. 따라서 기는 그것이 처한 특정한 상태를 기준으로 음양의 기, 오행의 기로 나누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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