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5권 하늘, 시간, 땅에 대한 전통적 사색
  • 제5장 풍수지리와 정치
  • 1. 음양오행 사상과 풍수
  • 만물의 연관과 감응
임종태

음양과 오행은 단순히 만물을 분류하는 틀을 넘어, 그것들 사이의 연관과 감응의 질서를 표현하는 이론이기도 하였다. 한나라 무제(武帝) 때의 유학자 동중서(董仲舒)가 체계화한 ‘동기감응(同氣感應)’의 학설에 따르면, 만물은 음양오행의 관점에서 같은 부류에 속하는 것들끼리 서로 감응한다. 이는 ‘동류상동(同類相動)’이라는 말로도 표현하는데, 예를 들어 음양의 구도에서 같은 범주에 속한 것은 서로가 서로를 부르는 상호 작용 관계에 있으며, 반대 범주에 속한 것들끼리는 서로 배척하는 관계에 있음을 뜻하였다.

동중서는 이를 같은 악기에서 일어나는 공명(共鳴) 현상을 들어 설명하였다. 한 악기에서 궁음(宮音)이 울리면 옆에 있는 다른 악기에서도 궁음이 저절로 울린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주를 이루는 여러 영역은 음양오행의 원리에 근거하여 서로 상호 작용하고 있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날에는 사람의 몸속에서도 음이 발동하여 눕고 싶어진다. 천명(天命)을 받은 사람이 새로운 왕조를 창업하려 할 때는 하늘에서도 상서로운 징조가 나타나며, 반대로 악덕한 통치가 이루어지는 시기에는 하늘에서도 요사스런 현상이 나타난다. 동중서는 이러한 일이 결코 신비스럽다거나 ‘초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같은 종류의 기가 서로 화답하며, 반대되는 기가 서로 갈등하는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주장하였다. 결국 우주를 구성하는 각 영역, 즉 하늘, 땅, 나라, 인체는 서로 별개의 것이 아니라 음양오행의 원리에 의해 서로 긴밀한 영향을 주고받는 거대한 유기체의 일원이다.

음양오행의 사상에 전제되어 있는 또 다른 중요한 관점은 이렇듯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우주의 여러 영역들이 서로 비슷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하늘, 땅, 나라, 인체는 각각 나름의 오행을 지니고 있다. 하늘에 오성이 있듯이 인체에는 오장이 있고, 땅에는 오악(五嶽, 다섯 산)이 있 다. 사람의 몸속에 기와 피가 흘러 생명이 유지되듯이 땅도 그 가운데 기가 흐르는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이다. 나라에 임금의 통치를 도와 주는 관료들이 있듯이 하늘에도 그와 상응하는 체계가 있다. 실제로 동아시아의 별자리 체계를 만든 고대 중국인들은 하늘의 별자리들을 하늘의 세계를 통치하는 관료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고대 중국의 역사가 사마천(司馬遷)은 『사기(史記)』 중에서 별자리와 점성술의 원리를 설명한 부분에 「천관서(天官書)」라는 제목을 붙였다.147)음양오행 이론을 비롯한 중국 고대의 우주론적 사유에 대해서는 존 헨더슨, 문중양 역주, 『중국의 우주론과 청대의 과학 혁명』, 소명출판, 2004, 17∼107쪽 참조.

결론적으로 음양오행과 기의 관념은 고대 동아시아인들에게 하늘, 땅, 인간을 포함한 우주의 모든 현상을 조화롭고 질서 정연한 것으로 이해하는 체계를 제공하였다. 그들은 그 조화와 질서의 원천을 결코 우주 바깥의 초자연적인 세계에 두지 않았다. 우주는 그 내적인 원리에 의해 자연스럽게 질서를 유지하는 자족적인 세계였으며, 그런 점에서 그들의 우주관이 오늘날의 우리의 관념과는 현격히 다르지만 말이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