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5권 하늘, 시간, 땅에 대한 전통적 사색
  • 제5장 풍수지리와 정치
  • 1. 음양오행 사상과 풍수
  • 풍수지리의 원리
임종태

과거 동아시아인들의 눈에는 우주 전체가 하늘, 땅, 인간과 같이 서로 비슷한 구조를 지닌 소우주들이 음양오행의 원리에 의해 연관되고 상호 작용을 주고받는 거대한 유기체였다. 풍수지리는 물론 천문, 의학, 음악 등 고대 동아시아의 여러 ‘과학’ 분야가 이러한 믿음을 공유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별들의 세계를 지상 세계의 관료 체계와 유사한 구조로 파악함으로써, 하늘에서 일어난 이상한 현상을 지상 세계에서 일어날 일의 조짐으로 해석하는 점성술, 즉 천문(天文, 말뜻 그대로 하늘의 무늬)이라는 분야가 성립되었다.

풍수지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산천으로 이루어진 땅을 기가 흐르는 거대한 생명체로 이해한다면, 그 기의 좋고 나쁨이 그 위에서 살아가는 인간 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리라고 자연스럽게 추론할 수 있다. 전통시대의 중국인들은 인간 문명을 창시한 고대 중국의 성왕(聖王)들이 위로는 천문을 관측하고, 아래로는 지리(地理, 말뜻 그대로 땅의 무늬)를 살펴보아 그것이 인간에게 미칠 영향을 짐작하였다고 생각하였다. 지상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안위와 화복은 그를 둘러싸고 있는 하늘과 땅의 기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믿음에서였다.148)존 헨더슨, 문중양 역주, 앞의 책, 66∼67쪽.

현대 과학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주택이나 마을의 터를 풍수적으로 좋은 땅에 잡으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심리적으로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인정한다. 즉, 풍수에서 말하는 양택(陽宅)의 합리성을 부분적으로나마 받아들인다. 논쟁의 초점은 조상의 묏자리가 후손의 화복에 영향을 미친다는 음택(陰宅) 풍수로 모아진다. 하지만 음양오행에 기초한 풍수지리 이론에서 보자면 음택과 양택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이를 풍수지리의 고전적 저작인 『장서(葬書)』의 설명을 통해 살펴보자. 『금낭경(錦囊經)』으로도 불리는 『장서』는 중국 풍수지리설의 이론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고전으로, 진(晉)나라의 술사 곽박(郭璞, 276∼324)이 지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진위는 불확실한 문헌이다. 이 책은 “장사를 지내는 것은 생기(生氣)를 타는 것”이라는 유명한 구절로 시작한다. 조상의 묘를 좋은 곳에 골라 장사 지내는 일은 명당자리가 지닌 생기를 얻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선언을 시작으로, 이 문헌은 생기가 있는 좋은 지역에 조상을 장사 지내면 그 음덕이 후손에 미치리라는 믿음이 합리적 근거가 있음을 설득한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가? 『장서』는 이를 바로 ‘동기감응’의 원리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람은 부모에게서 몸을 받는다. 부모의 유해가 기(氣)를 얻으면, 그 남긴 몸(자손)이 음덕을 받는다. 경전에 이르기를, “기가 작용하여 귀신에게 응하면, 그 복이 (살아 있는) 사람에게 미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구리 광산이 서쪽에서 무너짐에 신령스러운 종이 동쪽에서 응하고, 봄에 나무에 꽃이 피면 방 안의 밤송이에도 싹이 튼다.

확대보기
전형적인 명당
전형적인 명당
팝업창 닫기

사람은 부모에게서 몸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죽은 부모의 유해가 땅이 머금은 생기의 좋은 영향을 받게 되면 부모가 남긴 몸인 후손에게도 자연스레 상서로운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부모의 유해와 자손의 몸은 같은 부류에 속한다. 그러므로 궁음이 울리면 다른 궁음이 화답하는 것처럼 유해의 안녕은 곧 자손의 복락을 가져온다. 『장서』는 유해와 후손 사이에 일 어나는 동기감응의 ‘경험적’ 증거로, 한나라의 술사 동방삭(東方朔)의 고사를 들고 있다. 한나라 무제 때에 궁궐의 종이 아무런 이유 없이 울리는 일이 일어났다. 한 무제가 그 이유를 묻자 동방삭은 반드시 ‘구리 광산’이 무너진 일이 있었을 것이라고 예언하였는데, 과연 서촉(西蜀) 지역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동방삭의 해석에 따르면, 종은 구리로 만들어진 것이며 구리는 구리 광산에서 나온 것이므로, 구리 광산의 붕괴가 종의 울림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후손은 부모에게서 나왔으니, 부모의 유해가 그 기를 물려받은 자식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이다.149)최창조 역주, 『청오경(靑烏經)·금낭경(錦囊經)』, 민음사, 1993, 59∼69쪽. 인용문의 번역에 약간의 수정을 하였다.

결국 풍수란 산천이 어우러진 땅에서 생기를 담고 있는 장소를 찾아내어 그곳에 집, 마을, 도읍, 조상의 묘를 정함으로써 우주적인 생기의 혜택을 누리려는 기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러한 장소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이처럼 풍수의 기본 원리는 간단하지만, 구체적 기법으로 들어가면 사실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 풍수지리가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시작한 위진(魏晉)시대부터 다양한 학파가 일어나 길지(吉地)를 판별하는 여러 기법을 제안하였다. 하지만 그 본령은 『장서』에서 말한 것처럼 ‘장풍득수(藏風得水)’, 즉 ‘바람을 가두고 물을 얻는’ 형국을 찾는 데 있다.150)최창조 역주, 앞의 책, 72∼77쪽. 사실 ‘풍수’라는 용어 자체가 바로 이 표현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풍수 이론에 따르면 땅속의 기는 산줄기를 따라 흐르고 있는데, 이러한 산의 흐름을 ‘용(龍)’이라고 표현한다. 마치 용이 꿈틀대며 움직이듯이 산을 따라 기가 굽이치며 흐르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렇듯 흘러가는 기는 지세의 특정한 국면을 만나면 모이게 되어, 생기를 머금은 장소, 즉 풍수에서 ‘혈(穴)’이라고 하는 명당이 만들어진다. 산을 타고 흘러가던 기가 모이기 위해서는 물의 흐름을 만나야 한다. 왜냐하면 기는 “물을 만나면 멈추기 때문이다.” 따라서 산과 물의 흐름이 만나는 것은 명당의 필수 조건이 된다. 물이 없으면 땅속의 생기는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가 버리기 때문에 마을의 터나 묘지로 쓴다고 해도 생기의 감응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장서』의 저자는 물만으로는 생기를 모으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적절한 물의 흐름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곳이 바람이 거세게 부는 곳이라면, 생기가 ‘바람을 타고 흩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장소가 명당이 되기 위해서는 바람을 가둘 수 있도록 산이 굽이치며 좌우전후를 적절히 두르고 있어야 한다.

물론 풍수의 이론과 기법에 관한 이상의 설명은 아주 개략적인 것일 뿐이다. 풍수지리가 시작한 이래 다양한 형국의 지세를 판별하여 상서로운 입지를 고르는 일은 고도의 식견을 필요로 하는 전문적 지식으로 발전하여 왔다. 게다가 땅의 기운을 판별하는 안목은 음양오행 이론에서 비롯되는 여러 복잡한 공식들을 숙지하고 있다고 해서 되는 일도 아니었다. 산천의 흐름과 그것이 담고 있는 기를 잡아낼 수 있는 직관적 감각을 갖추려면, 직접 산천을 돌아다니며 관찰하는 장기간의 고된 경험과 일종의 정신적 수련이 필요하였다. 이러한 전문성을 반영하듯 전통시대 중국과 우리나라의 왕실에서는 전문적으로 땅을 판별하는 전문가들을 교육하는 제도와 왕실이나 나라와 관련된 다양한 택지 업무를 관장하는 부서를 두었다. 물론 풍수지리의 수요가 높았던 민간에서도 전문적인 감여가(堪輿家)들이 전통시대 내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