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6권 장시에서 마트까지 근현대 시장 경제의 변천
  • 제1장 장시의 성립과 발전
  • 1. 장시의 성립과 농촌 경제의 변화
  • 동전 유통의 활성화와 상품 작물 재배의 증가
김대길

동전의 유통 확대와 조세의 금납화(金納化)는 장시를 통한 유통 구조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동전이 본격적으로 유통되기 시작한 초기에는 화폐의 공급 부족과 동전 주조 원료의 부족 등으로 화폐 유통량의 부족 현상인 전황(錢荒)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 정부는 동전을 매개로 한 상품의 매매와 국가의 수입과 지출에 동전을 사용하도록 하여 동전의 유통 영역을 확대시켜 민인들에게 화폐에 대한 가치를 인식시키려고 하였다.

동전은 초기의 유통 보급 단계를 지나 가치 척도, 교환 수단, 지불 수단, 가치 저장 수단 등 화폐 본래의 기능을 발휘하면서 소작료나 노임을 지불할 때도 동전을 쓰는 추세가 확산되었다. 그리고 토지·가옥·노비·가축의 매매와 장시 내에서의 자잘한 거래에도 동전을 매개로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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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상평통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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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 유통은 18세기에 접어들면서 일반화되었다. 1718년(숙종 44)에는 채소를 파는 노파들이나 소금을 파는 아이들까지 곡식보다는 화폐를 더 요구하는가 하면, 동전이 없으면 교역을 할 수 없는 형편이어서 농민들이 헐값으로 곡식을 팔아 동전을 마련하고 있다고 하였다.9) 『숙종실록』 권62, 숙종 44년 윤8월 무신. 1735년(영조 11)에는 여러 가지 물품을 돈이 아니면 구입할 수 없어서 비록 쌀이나 베가 있어도 반드시 동전으로 교환한 후에야 구입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10)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98책, 영조 11년 12월 13일.

동전 유통 범위의 확대는 점차 조세와 지대(地代)의 금납화로 이어졌다. 조세의 금납화는 생산물의 상품화를 촉진시키고 화폐의 유통을 확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조세의 금납화와 현물 소작료를 화폐로 대신하는 경우가 일반화되어 가자 농민들은 자신이 생산한 물품을 팔아서 동전을 마련하여야 했다. 이 과정에서 농민들은 대부분 장시와 밀접하게 연계될 수밖에 없었다. 금속 화폐가 주요한 유통 수단이 된 조건하에서 농민들은 화폐를 확보하기 위해 장시를 매개로 상업 활동을 영위하였다. 농민들의 생산물은 상품화되어 장시를 통해 판매되면서 각 지방의 장시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크게 성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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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잣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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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는 통공 발매(通共發賣)를 계기로 더욱 성장하였다. 조선 왕조는 시전(市廛) 상인들에게 각종 국역을 부과하는 대신 그들의 상업 활동과 상업적 이권을 침해하는 여러 형태의 상행위를 규제할 수 있는 일종의 전매 특권인 금난전권(禁亂廛權)을 부여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금난전권을 허무는 조치가 내려졌다. 1791년(정조 15) 채제공(蔡濟恭, 1720∼1799)의 주장으로 통공 발매가 허용된 것이다. 이 조치가 신해년에 있었기 때문에 신해통공(辛亥通共)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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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제공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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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통공은 육의전(六矣廛)을 제외한 모든 시전의 독점 매매권을 배제하고 30년 이내에 설립된 시전을 혁파하고 육의전의 전안(廛案)에 올라 있는 물품 이외의 상품을 통공 발매하기로 한 것이었다. 통공 발매의 시행은 앞선 시기에도 몇 차례 시도가 있었으나 큰 효과를 보지 못하였다. 신해통공은 특권적 전매 상업과 사상 도고들의 활동에 따른 물가의 폭등과 시전 상인들의 횡포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하자는 것으로 상업계에 있어서 일대 변혁이었다. 이는 무엇보다 소상인·소상품 생산자층에게 영업의 자유를 인정함으로써 소상인·소생산자·소도시민층의 경제적 안정을 가져오게 하였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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