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6권 장시에서 마트까지 근현대 시장 경제의 변천
  • 제1장 장시의 성립과 발전
  • 3. 이름난 장시의 발달 양상
  • 동북 지방으로 통하는 길목에서 성장한 누원점
김대길

조선 후기 상품 화폐 경제가 발달하면서 최대의 소비지인 한양 주변에 있던 여러 지역이 상품 교역 중심지로 부상하였다. 그 가운데 하나가 양주의 누원점(樓院店)이었다. 이곳은 장시가 아니면서도 그에 못지않게 상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지역이었다. 누원은 한양에서 관서와 동북 지역으로 연결되는 길목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도 처음에는 한양과 강원도·함경도를 오가는 사람들이 잠시 쉬어가는 한적한 원촌(院村)에 지나지 않았다.

누원은 18세기 이래 한양과 동북 지방의 물화 교역이 활성화되면서 상업 중심지로 성장하였다. 이곳은 지방에서 올라온 상인들이 한양으로 들어가기 전에 잠시 머무는 쉼터로서 물품의 거래 동향과 가격 등을 점검하는 정보 교환 장소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 지역은 시전 상인들의 직접적인 간섭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사상인들의 자유로운 상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사상인들은 처음에는 자신들의 근거지를 칠패·이현·용산 등지로 삼았는데 점차 그 영역을 누원을 비롯하여 송파 등 한양 근교에 위치한 물산의 집산지로 확대해 갔다.

누원점이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은 교통로의 개발과 새로운 지름길 등이 개척되면서 함경도 지역과 물화 교역이 크게 활성화된 것이 한 요인이었다. 조선 후기에는 동북 해안 지방에서 나는 북어의 유통과 수요가 크게 증대되었다. 함경도 원산에서 수합된 북어는 철령을 넘어 한양 쪽으로 오다가 누원에 이르게 된다. 이 때문에 사상인들이 누원에서 북어 등을 매점한 후 도성 내로 반입하여 차익을 챙기고 있었다. 누원의 사상인들은 시전 상인의 간섭과 단속을 피하기 위하여 동대문의 이현 상인과 접촉하거나 뚝섬·송파 상인과 연결하기도 하고, 한강을 경유하여 바로 용산으로 가기도 하였다.

누원점은 주로 동북 지방에서 올라오는 어물과 베 등이 집결하는 곳이 되었다. 그리고 삼남 지역에서 생산되는 면포 등 직물류와 동북 지방의 어물·마포 등의 교환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누원을 통과하는 상품량도 증가하였다. 따라서 이곳에 장시가 개설될 경우 시전인들이 입게 될 상업적 손실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18세기 초 누원점민들의 장시 개설 움직임이 있었으나 시전 상인들의 반발로 성사되지 못한 적이 있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한양의 포전(布廛)과 내·외어물전(內外魚物廛)의 상인들은 누원점을 근거지로 하여 활동하는 상인들이 동북 지방에서 반입되는 어물과 포를 근기(近畿) 100리 내에서 도고하는 폐단을 일체 단속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하였다.

도성과 가까운 곳에 장시 개설을 억제한 이유는 대체로 국역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는 경시전을 보호하려는 것이었다. 누원점민들의 장시 개설 시도는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그러나 칠의전인(七矣廛人)들의 반대로 무산되거나 비변사에서 누원장이란 명칭은 예전부터 없었던 것이고 외방의 장시는 경솔하게 허락할 수 없다는 판단으로 이루어지지는 못하였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누원점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사상인들은 주로 동북 지방에서 올라오는 어물을 중간에서 사들여 이를 어물전에 넘기지 않고 직접 판매함으로써 많은 차익을 남기고 있었다. 누원점의 중도아(中都兒)들은 각종 어물을 한양의 칠패와 이현 근처의 난전인들과 결탁하여 거래하였다. 이로 인해 한양의 어물 공급량과 값이 조절되기도 하고 어물전이 파산할 지경까지 이르기도 하였다. 누원점을 근거로 활동하고 있던 상인들은 ‘건방(乾房)’이라고 부르는 곳에 어물 등을 매점해 놓고 거래하기도 하였다.

한편 누원점은 18세기 말 인근에 동촌여점(東村旅店)이 생기면서 서로 간에 상업적 이익을 둘러싸고 다툼이 발생하였다. 동촌여점인들은 조정에서 특별히 배려하여 동북 어상들에게 연세(煙稅)를 받도록 해 주었는데도 오히려 작당하여 누원과 흥인문·혜화문에서 상인들을 기다려 자신들의 집으로 몰아넣어 어물을 염가로 매입하는 등 도고를 자행하였다. 이로 인해 이곳을 왕래하는 동북 지방의 상인들이 점차 줄어들어 이곳 상인들의 생활을 곤궁하게 할 뿐만 아니라 한양의 물가도 오르게 하므로 의정부에서 절목(節目)을 제정하여 이러한 폐단을 없애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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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의전인등장(七矣廛人等狀)
칠의전인등장(七矣廛人等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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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원 주변에는 마석우장·동두천장·신천장·송우장·차탄장 등이 있었고, 이들은 멀리 철원·원산과 연결되었고, 가깝게는 송파·용산·뚝섬 등과도 연결되었다. 누원의 상인들은 송파 등지의 상인들과 자금을 합자하기도 하고 정보를 교환하기도 하면서 대규모로 매점 활동을 전개하였다. 누원이 상업 중심지로 발돋움하게 된 것은 이곳에서 시전의 특권적 상업 활동과 경쟁하는 사상인들이 상권을 확보하기 위하여 생산지에서 한양으로 반입되는 상품을 매점하는 도고 행위가 가능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시전 상인들의 보호와 원활한 상품 유통을 위해 한성부와 경기 감영·평시서(平市署) 등에서 누원점민들의 난전 도고 활동을 신칙(申飭)하였지만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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