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6권 장시에서 마트까지 근현대 시장 경제의 변천
  • 제2장 경제를 살린 상품 생산과 유통
  • 3. 도로와 수로를 이용한 상품 유통
  • 물류 저장을 위해 창고를 설치하다
이상배

수로를 이용한 물류 이동 가운데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쌀이다. 한양의 경우 삼남 지방에서 올라오는 세곡과 양반 소유 농토에서 생산한 곡식을 제외하고 모자라는 쌀은 매매에 의해 충당할 수밖에 없었 다. 따라서 쌀 운송은 한양 주민들에게는 가장 큰 관심사였고, 정부가 심혈을 기울이는 주요 정책 가운데 하나였다. 이렇게 중요한 물류 운송의 중심에 수로 운송이 있었다.

그러나 배를 이용한 쌀 운송에는 다양한 복병이 도사리고 있었다. 고려 말 조선 초에는 전국 해안에 출몰하는 왜구들로 인해 배를 이용한 세곡 운송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였다.109) 『태종실록』 권2, 태종 1년 8월 무오. 또한 우리나라의 연안은 다도해라서 항로의 사정이 좋지 않을 뿐 아니라 조류가 험하여 배가 좌초되거나 난파되는 사고가 자주 발생하였다. 즉 1395년(태조 4)의 경상도 조선 14척, 1403년(태종 3)의 경상도 조선 34척, 1414년(태종 14) 전라도 조선 66척, 1455년(세조 1) 전라도 조선 54척 등의 침몰은 조정의 관리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110) 이상배, 「조선시대 남한강 수운에 관한 연구」, 『강원문화사연구』 5, 강원향토문화연구회, 2000.

이에 정부는 다른 방안을 만들어 냈다. 경상도의 쌀은 육로를 따라 죽령의 험준한 길을 넘어 충주까지 운송한 다음 충주부터 한양까지는 한강을 이용하였다. 충청도와 강원도에서도 마을마다 쌀과 곡물을 수합하여 육로를 통해 한강의 수로가 닿는 곳까지 옮겼다. 그리하여 한강 연안에는 각 고을에서 거두어들인 쌀과 곡물을 한양으로 운송하기 이전까지 보관해야 할 장소가 필요하였다. 처음에는 강 연안에 둑을 쌓아 놓고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경비를 섰다. 그러나 짐승들에 의해 유실되는 양이 많아지고, 습기가 많고 비를 맞으면 곡물이 상하기도 해 근본적으로 창고를 지어 보관하는 방법을 택하였다. 이러한 창고의 정비는 15세기에 확립되었다.

『경국대전』과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어 있는 조선시대의 조창(漕倉)과 미곡을 거두어들인 지역 및 조창에서 소유하고 있던 선박 수를 살펴보면 표 ‘조선시대의 조창과 수세 지역(15세기)’과 같다.

한양의 경창(京倉)으로 직접 납부하는 미곡은 경기도와 강원도 북부 일원에서 생산되는 것뿐이었다. 나머지는 우선 수로와 가까운 마을의 창고에 미곡을 보관하다가 조창이 있는 충주·원주·춘천·배천·강음 등지로 운송 보관하였다. 그리고 해운의 경우에도 충청과 전라도 지역의 고을 창고 에 보관하다가 수로를 이용해 해운이 가능한 아산·용안·영광·나주 지역의 조창으로 운송하여 보관하였다. 조창에 보관된 미곡은 한강의 경우 봄에 얼음이 풀리기를 기다렸다가 운송하였다. 해운은 바다의 풍랑을 고려하여 서해안 바닷길을 통해 강화도를 거쳐 한강을 거슬러 올라가 용산의 경창에 미곡을 납부하였다.

<표> 조선시대의 조창과 수세 지역(15세기)
구분 조창명 각 조창의 수세 지역 선박수
직접 납부 경창(한성) 경기도와 강원도의 준양·금성·김화·평강·이천·안협·철원  
참운

가흥창(충주) 경상도와 충청도의 충주·음성·괴산·청안·보은·단양·영춘·제천·진천·황간·영동·청풍·연풍·청산 51척
흥원창(원주) 강원도의 원주·평창·영월·정선·횡성
소양강창(춘천) 강원도의 춘천·홍천·인제·양구·낭천(화천)


금곡포창(배천) 황해도의 해주·연안·풍천·신천·장연·문화·강령·옹진·송화·장련·은율·배천 20척
조읍포창(강음) 황해도의 강음·황주·서흥·평산·봉산·곡산·수안·안악·재령·신계·우봉·토산
해운 공세곶창(아산) 충청도의 아산·서산·한산·연산·임천·정산·공주·홍주·신창·결성·보령·전의·청양·니산·대흥·석성·해미·태안·천안·비인·은진·목천·면천·연기·덕산·서천·직산·홍산·부여·염포·예산·당진·평택·온양·청주·문의·회덕·진잠·옥천·회인 60척
덕성창(용안) 전라도의 용안·전주·임실·남원·임피·김제·장수·금구·운봉·익산·만경·여산·금산·진산·태인·옥구·진안·고산·무주·함열 63척
법성창(영광) 전라도의 영광·흥덕·옥과·부안·함평·진원·담양·무장·장성·정읍·곡성·창평·고부·순창·고창 39척
영산창(나주) 전라도의 나주·순천·강진·광산·진도·낙안·광양·화순·남평·동복·흥양·무안·능성·영암·보성·장흥·해남 53척

이들 밖에 평안도와 함경도는 자체에서 생산되는 미곡을 한양으로 보 내지 않고 그 지역에서 소비하였다. 중국과 조선을 오가는 사신들이 이곳을 거쳐 가므로 이들을 접대하는 비용을 충당하는 데 주로 사용하였다. 또한 지역적으로 하삼도(下三道)에 비해 산출되는 미곡의 양도 많지 않아 한양으로 운송하지 않고 지역에서 소비하도록 조치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은 큰 창고 이외에도 지역적으로 각 읍마다 자체의 미곡을 수납하는 창고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들 창고는 대부분 운송에 편리하도록 교통의 요지나 물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또한 각각의 창고에 보관된 미곡은 대개 조세미로 한양으로 보냈지만 각 고을에서 필요로 하는 군자미(軍資米)나 진휼미(賑恤米) 등에도 사용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충청도 일원에서 가흥창에 조세미를 내는 지방의 경우 음성(陰城)과 괴산(槐山)에는 동고(東庫)·서고(西庫)·남고(南庫), 청안(淸安)에는 창곡군자창(倉穀軍資倉), 보은(報恩)은 저치고(儲置庫)·관수고(官需庫), 영춘에는 동창(東倉)·서창(西倉), 단양에는 북창(北倉)·진창(賑倉)·군자창(軍資倉)·상평창(常平倉), 제천에는 읍창(邑倉)·저치고·주포창(周浦倉)·원서창(院西倉)·전대동봉상고(田大同捧上庫), 진천에는 누상고(樓上庫), 황간에는 읍내창(邑內倉)·상촌창(上村倉)·남면창(南面倉)·대동고(大同庫)·공고(工庫)·군기고(軍器庫), 영동에는 읍창·용화창(龍化倉), 청풍에는 읍창·남창·북창·서창, 연풍에는 읍창·유창(柳倉)·수면창(水面倉), 청산에는 내현창(內縣倉)·외말성창(外末城倉)·대동고·위판고(位板庫)·군기고 등의 창고가 있었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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