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6권 장시에서 마트까지 근현대 시장 경제의 변천
  • 제3장 개항기 상업 발달과 대외 무역
  • 1. 개항기 상업계의 변화
  • 국내 시장의 발달
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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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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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부터 장시(場市)가 다시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이들 장시 가운데에는 각지의 다양한 특산물을 거래하는 원격지 유통의 중심지로 성장한 경우도 있었다. 전국의 약재(藥材)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특수 시장으로서 개항 전부터 발전하고 있던 대구와 공주의 영시(令市, 약령시)는 개항 이후 다양한 외국 수입품을 판매하면서 더욱 성장하였다. 갑오개혁 이후에 도 시장 육성책에 따라 전주, 진주, 청주 등지에도 영시가 생겨났다. 하지만 영시는 1900년대 이후 도시에 상설 점포가 들어서고, 철도에 의한 운수 산업이 성장하면서 점차 쇠퇴하였다. 반면 철도를 통한 상품 운수망이 형성됨에 따라 내륙의 상업 도시가 급성장하기 시작하였다. 기왕의 농촌 지역 장시를 대신하여 도시 시장의 상업적 비중과 역할이 커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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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 장시
홍성 장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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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 이래 시장의 발전을 주도한 것은 개항장이었다. 부산·인천과 같이 과거 한적한 어촌에 불과하던 지역이 개항장이 된 후에는 대도시의 하나로, 동시에 대규모 무역 시장으로 성장하였다. 개항장은 무역 시장으로서 외국과 통상하는 거점이 되었고, 외국 시장과 국내 시장을 연결시켜 주는 매개 역할을 하였다. 무역 규모가 확대됨에 따라 개항장은 항만·교통·금융·통신 등의 설비를 정비하게 되었고, 외국인의 자유로운 통행·매매가 가능한 거리가 확장되면서 내지와의 통상도 더욱 진전을 보게 되었다.

개항장 시장권이 성장함에 따라 기존 시장의 구조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 개항 후 미곡(米穀) 수출이 증가하자 상품으로서의 미곡 생산은 촉진되었다. 그러나 국내 소비용 미곡의 공급은 줄어들어 쌀값이 뛰어올랐고, 미곡을 구매해서 생활해야 하는 서민들은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서울, 평양 등의 대도시에서도 식량이 부족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개항장을 중심으로 한 무역 시장이 성장하고, 미곡 수출이 늘어나면서 미곡 수급의 안정적 구조가 흔들렸던 것이다. 영세민들은 식생활 자체가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기도 하였다. 결국 정부는 방곡령(防穀令)을 실시하여 미곡 수출의 확대를 막으려 하였지만, 일본의 간섭과 저지에 따라, 특히 청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이후에는 방곡령의 시행이 어려워지는 상황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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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강가의 항아리
대동강가의 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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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장이 무역 시장으로서 시장의 발전을 주도하였지만 기존 정기시(定期市)가 쇠퇴한 것은 아니었다. 일본인을 비롯한 외국인들은 개항장의 매일 시장과 상설 점포의 이용률이 높았지만, 개항장 내 한국인 거주 지역이라거나 지방의 재래 도시 및 농촌 지역에서는 상설 점포의 성장과 함께 정기적인 장시가 여전히 상품 유통의 근거지로서 역할을 다 하고 있었다.

또한 외국과의 무역 상품이 아닌 경우에도 조선 상인이 여전히 유통 과정을 담당하고 있었다. 종래의 원격지 유통이 개항장을 거치고 기선(汽船)을 이용함에 따라, 조선 상인도 기선을 이용하여 개항장 간 무역 등의 원격지 유통에 종사하였다. 이러한 유통에서는 조선 상인이 일본 상인과 대등한 수준에서 참여하였다. 더욱이 기선을 이용하지 않는 유통은 조선 상인 이 장악하였다. 일본 상인은 1880년대 중반부터 서울 시장에 진출하였지만, 1911년에도 외국 무역과 관련되지 않은 상품 유통에서는 조선 상인이 상권을 장악하고 있었다.123) 이헌창, 『한국경제통사』, 법문사, 1999, p.250.

한편 18세기 후반부터 통공 정책이 실시되고, 사상이 상권을 확대해 감에 따라 육의전을 제외한 시전 상인은 대부분 영업상 큰 타격을 받고 있었다. 국가 재정이 악화되면서 국역(國役)에 대한 보상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실정이어서 시전 상인의 상권은 점차 위축되어 가는 양상이었다. 더욱이 일본, 청나라 등 외국과의 조약 체결로 말미암아 중국 상인, 일본 상인 등이 서울에 거주하며 자유로운 상업 활동을 벌이게 되자 시전 상인들은 더욱 어려운 상황에 부닥치게 되었다. 더욱이 외국 상인들이 육의전이 취급하는 물종까지 판매하게 되자 시전 상인은 이에 강하게 반발하였고, 철시(撤市) 투쟁을 1887년, 1890년, 1898년 등 세 차례에 걸쳐 전개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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