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6권 장시에서 마트까지 근현대 시장 경제의 변천
  • 제3장 개항기 상업 발달과 대외 무역
  • 2. 개항장의 발달과 도시의 거상들
  • 도시 거상의 활동
  • 서울의 거상들
오성

서울은 정치의 중심인 동시에 경제의 중심이기도 하였다. 전통적인 시전 상인과 공인 이외에도 많은 사상과 객주가 활동하고 있었으며, 이들 가운데에는 거상으로 성장한 상인들도 있었다. 종로와 배오개, 남대문, 마포 등지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던 조선 상인 중 일부는 도산하거나 폐업하고 말았지만, 일제 강점기 말까지 혹은 그 이후까지 가업을 계승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시기 서울 지역의 대표적인 거상으로는 시전 상인 출신인 백윤수(白潤洙, 1855∼1921)와 김윤면(金潤冕, 1856∼?), 배오개에 자리 잡고 있던 박승직(朴承稷, 1864∼1950) 등을 꼽을 수 있다. 백윤수는 대대로 견직물을 취급하던 선전(縇廛) 상인이었다. 백윤수의 시전은 1905년 일본인 재정 고문 메가다(目賀田)가 단행한 화폐 개혁에 말미암은 공황으로 토착 상인 자본이 위기를 맞게 되자 어려운 사정에 빠졌다. 그러나 다른 시전 상인들이 몰락하는 와중에 백윤수는 청나라산 고급 비단을 취급하는 청상(淸商)을 상대로 거래하였고, 비단의 주요 수요자가 고관과 부유층이었던 까닭에 자금의 회수가 용이하여 공황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는 주단 등을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모직류 등은 영국에서 직수입하여 판매하였으며, 국내산 한산 모시 등 각종 저포(苧布)류도 취급하면서, “대발매(大發賣)하되 특별 염가로 다매주의(多賣主義)하에서 일반 고객을 환영한다고 명성이 날로 높아지더라.”는138) 竹內錄之助, 『朝鮮商業總攬』, 1915, p.36. 평판을 듣고 있었다. 1916년 백윤수는 자본금 25만 원 규모의 대창 무역 주식회사(大昌貿易株式會社)를 설립하면서 근대적 기업가로 전환하였다.139) 조기준, 『한국기업가사』, 박영사, 1973, pp.184∼190.

김윤면은 서울 출신이지만 자신의 대에 종로의 시전 상인으로 진출한 사람으로 백목전(白木廛)을 운영하였다. 그는 친절, 정가 판매, 신용을 신조로 시전을 경영하였으며, 이 세 가지 도리를 철저히 지킴으로써 상인으로서 대성하였다. 그는 1919년 종로와 남대문 지역의 상인들과 합자하여 자본금 200만 원의 동양 물산 주식회사(東洋物産株式會社)를 설립하였는데, 서울에서 손꼽는 대상인이 대거 주주로 참여하였다. 김윤면은 1920년대 말 개인 기업체로서는 제3위의 고액 납세자가 될 정도로 성장하였으나, 1937년 이후 일제의 통제가 심해지면서 점차 몰락의 길을 걸었다.140) 조기준, 앞의 책, pp.191∼196.

한말 서울의 거상으로서 배오개에서 포목점을 운영하던 박승직을 빼놓을 수 없다. 본래 농업에 종사하던 그는 송파장을 근거로 환포상(換布商) 활동을 하며 상당한 자금을 마련하였다. 이후 1898년경 종로 4가에서 포목 상(布木商)을 시작한 그는 점차 취급 물종을 확대하여 마포(麻布), 목면(木棉), 식염(食鹽) 등의 위탁 판매를 하는 한편, 1905년에 가서는 일본 상인이 참여한 공익사(共益社)를 설립하여 일본에서 면사포(綿絲布)를 직접 수입하여 판매하였다. 이러한 그의 기업 활동 형태는 1905년 공황 때의 위기도 무난히 극복할 수 있게 하였으며, 창업의 모태인 포목 상점도 지속적으로 발전해 나갔다. 그는 여러 기업체에 참여하고, 기업 관계 공직을 맡으면서 폭넓은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른 나이에 사숙(私塾)에서 한문을 수업하고 시세를 따라서 본점을 개점한바 기민(機敏)이 남보다 뛰어나고 신의가 돈독하므로 고객이 구름처럼 와서 현금에는 거만의 자본을 이르고 일반의 추대로 광장 주식회사(廣藏株式會社) 취체역(取締役)으로 공익사 이사를 겸하여 분망 중에 있으니 동점의 전도 희망은 한량이 없다더라.141) 竹內錄之助, 앞의 책, p.22.

곧, 박승직은 기민함과 신의를 바탕으로 거상으로 성장하였으며, 박승직 상점의 전망도 매우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실제로 그는 일제 강점기에도 활발한 기업 활동을 벌였으며, 1921년에는 한국인 소유의 개인 기업체로서는 최고액의 납세자가 되었다.142) 조기준, 앞의 책, pp.196∼204.

동점(同店)은 명치 30년에 자본금 6만 원을 적립하고 앞에서 쓴 장소(경성부 종로 4정목 15번지)에서 이 사업을 시작하였는데 동점의 사장은 박승직인바 동씨(同氏)는 적수공권(赤手空拳)으로 근근고고(勤勤攷攷)히 활동한 결과 금일의 대성이 있게 되었습니다. 동씨는 현재 주식회사 공익사 사장, 광장 주식회사 취체역, 경성 곡물 신탁 회사 감사역, 만주 공익사 취체역으로 있으며, ……동사의 사장 박승직 씨는 포목계에 40여 년 간 투신한 노장이외다.143) 장재흡, 『조선인 회사 대상점 사전』, 부업세계사, 경성, 1927, p.101.

공익사 사장, 광장 주식회사 취체역, 경성 곡물 신탁 회사 감사역, 만주 공익사 취체역 등을 맡으면서 폭넓은 활동을 전개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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