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7권 천민 예인의 삶과 예술의 궤적
  • 제1장 기생의 삶과 생활
  • 5. 처지와 생활상
  • 기생집에서 노는 격식
우인수

서울의 기생에게는 기둥서방이라고 하는 기부(妓夫)가 있었다. 원래 기부는 법으로 허용되지 않았지만 점차 관례로 굳어졌다. 이 기부가 기생의 살림살이를 책임졌으며, 손님이 있으면 손님에게 양보하고 손님이 없는 경우에 잠자리를 같이하였다고 한다.

확대보기
야금모행(夜禁冒行)
야금모행(夜禁冒行)
팝업창 닫기

대개 기부가 될 수 있는 층이 정해져 있었는데, 대개 각전의 별감(別監), 포도청 군관(軍官), 승정원 사령(使令), 의금부 나장(羅將), 각 궁가와 왕실의 외척집 청지기, 무사 등이었다. 그러다가 고종 때에 흥선 대원군이 기부가 될 수 있는 층을 별감·군관·청기기·무사의 네 개로 한정하였다. 그리고 승정원 사령이나 의금부 나장은 단지 기생보다 격이 낮은 창녀의 기둥서방, 즉 창부(娼夫)가 되는 것만을 허락하였다.

기생의 머리를 올리는 값도 상대에 따라 많고 적음의 차이가 있었는데, 흥선 대원군이 일률적으로 120냥으로 정하였다고 한다.104)박제형, 앞의 책, 106∼107쪽. 기생으로 처음 영업에 나서면 호된 신고식을 치르게 마련인데, 더러는 신고식이 호될수록 빨리 기생 영업에 적응한다고 하여 기부의 부탁을 받고 일부러 더욱 엄하게 하는 일도 있었다.

확대보기
기방쟁웅(妓房爭雄)
기방쟁웅(妓房爭雄)
팝업창 닫기

한편, 기생집에서 노는 데도 일정한 격식이 있었다. 인사하는 법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까다로운 법도가 있어서 자칫 이를 어기면 봉변을 당하기 십상이었고, 심하면 매를 맞아 머리가 터지고 뼈가 부러지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기생집에 먼저 와서 앉아 있는 손님이 있는 경우에 새로 온 사람이 들어갈 때의 격식을 대화체로 풀어 보면 대개 다음과 같은 식이었다.105)이하 문답은 『악부』에 나오는 내용이다. 여기서는 정병설, 「기생집에서 노는 법」, 『문헌과 해석』 18, 문헌과 해석사, 2002, 153∼155쪽에 의거하였다.

바깥손님 : 들어 가자.

안손님 : 두로(안손님이 없고 하인만 있으면 ‘두롭시요’라고 한다).

바깥손님 : 평안호?

안손님 : 평안호?

바깥손님 : 무사한가?

기생 : 평안헙시오?

바깥손님이 중치막 앞자락을 떡 헤치고 앉아서 담뱃대를 딱딱 털어서 좋은 담배 한 대를 부친 후에는 다음과 같은 수작이 오간다.

바깥손님 : 좌중에 통할 말 있소.

안손님 : 네 무슨 말이요?

바깥손님 : 주인 기생 소리 들읍시다.

안손님 : 좋은 말이요. 같이 들읍시다.

바깥손님 : 여보게.

기생 : 네.

바깥손님 : 시조 부르게.

기생 : 네.

기생이 시조 한 장을 부르고 나서는 또 다음과 같은 수작이 오간다.

안손님 : 시조 청한 친구한테 통할 말 있소.

바깥손님 : 네, 무슨 말이요.

안손님 : 나머지 시조는 두었다 듣는 청 좀 합시다.

바깥손님 : 청 듣답 뿐이요. 여보게.

기생 : 네.

바깥손님 : 시조 한 장 달랑 있더니, 친구가 청을 하시니, 나머지 시조는 이담에나 오거든, 하라기 전에 하렸다.

기생 : 네.

이런 식으로 몇 마디 희롱을 하며 놀다가 나올 때는 일어서 돌아서며 안손님에게는 “뵙시다.” 하고, 기생에게는 “보세.” 하고, 안손님이나 기생이 대답을 하든지 말든지 이처럼 인사하고 나오는 식이었다.

확대보기
홍루대주(紅樓待酒)
홍루대주(紅樓待酒)
팝업창 닫기

기생집을 출입할 때의 격식과 관련하여 근세의 양반 외입쟁이 중 최고로 친다는 서춘보(徐春輔)의 일화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춘보가 나이 열다섯 살 때 머리에 초립을 쓰고 밤에 기생집으로 갔다. 불량배들이 멀리서 그가 오는 것을 보고 나이가 어린 것을 업신여겨서 그 인물됨을 시험하려 하였다. 일제히 방 안에 가로누워서 그가 하는 행동을 살피고자 하였다. 춘보가 문을 열어 보고서 말하기를 “나는 기생집으로 알고 있는데, 이곳이 활인서(活人署)의 전염병동(傳染病棟)이라도 된단 말이냐.” 하였다. 그러자 불량배들이 일제히 일어나 묻기를 “(이런 곳에 오기에는 나이가) 너무 이르지 않은가?” 하였다. 춘보가 말하기를 “나는 벌써 저녁밥을 먹고 왔다.” 하였다. 사람들이 모두 탄복해서 무리 속으로 들어와 외입장이 되기를 허락하였으며, 또한 기생 서방이 되었다. 춘보는 평생 동안 기생으로 울타리를 삼고 풍류로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106)이능화, 이재곤 옮김, 앞의 책, 431쪽 ; 정병설, 앞의 글, 2002, 157쪽.

만약 기생이 외입장이에게 예의를 잃은 일이 있으면 치마와 버선을 벗겨서 맨발로 종로 거리에 다니게 하거나 기생집의 세간을 모두 때려 부수고 기생의 사과를 기다려서 새집을 사주었다고 한다.107)이능화, 이재곤 옮김, 앞의 책, 432쪽. 이런 것이 기생의 생활 주변에서 일어나는 나름의 노는 격식이었던 것이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