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7권 천민 예인의 삶과 예술의 궤적
  • 제3장 광대, 자유로운 예술을 위한 길에 서서
  • 3. 광대들의 활동을 돌아보며
  • 민간의 축제
  • 세시 놀이
손태도

전통 사회는 주로 자연 경제 사회였기에 인간의 생활 주기와 자연의 운행 주기가 맞물려 있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자연의 주기에 따른 여러 세시 행사들이 이루어졌다. 세시 행사 가운데 광대 집단의 놀이도 동원되는 행사에는 정월 대보름 놀이, 사월 초파일 놀이, 단오 놀이, 백중 놀이, 시월 상달 놀이 등이 있었다. 이러한 전통 사회의 세시 놀이와 민간 연회에서의 광대에 대해 판소리 명창 정정렬은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노래하는 이들이 세월(歲月)이 조은 는 갑오(甲午) 이전입니다. 갑오년의 봄 과거(科擧)지 과거가 계속햇고 그 후에는 과거가 업서젓스나 우리는 그가 제일 조앗습니다. …… 그 외에 예전에는 봄이면 화전(花煎)노리 여름이면 물노리 사정(射亭)노리 생일잔채 환갑(還甲)잔채 등에 으레히 창부(唱夫)를 청(請)해다 노래를 불으게 햇섯슴으로 일 년 내내 밧부게 지냇습니다.293)『매일신보』 1937년 5월 5일자.

이름난 광대였다면 전통 사회의 여러 세시 놀이와 민간 연회 등에 불려다니며 일 년 내내 바쁘게 지냈던 것이다.

한편 경기도 도당굿 화랑이 이용우는 경기도 화성군 우정면 화산리에 초파일날 하는 ‘파일 놀음’에 다녔다 한다. 파일 놀음이 붙여지면 인근의 구경꾼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한다.294)이보형, 「적벽가의 명창 모흥갑」, 『판소리 연구』 5, 판소리 학회, 1994, 386쪽. 다음은 또한 5월 단옷날 황해도 지역의 봉산 탈놀이에 대한 소개이다.

유명한 봉산 탈놀이는 매년 5월 단옷날 밤에 ‘경수대’에서 놀았다. …… 낮에는 종일 장정들이 소를 걸고 씨름을 하였고, 또 ‘광대’들이 줄을 탔고, 밤에는 밤새도록 횃불을 켜들고 탈놀이를 놀았으니, 봉산 인민들에게는 오월 단옷날이야말로 일 년 중에서도 가장 즐거운 명절날이었음이 틀림없었을 것이다.295)김일출, 앞의 글, 62쪽.

다음도 역시 전주 덕진 공원에 있었던 단오절 행사의 한 모습이다. 이곳에는 큰 못이 있어, 단오 때면 인근의 수많은 사람이 이 못에서 목욕도 하고 물맞이 등도 하며 광대들의 놀이를 즐겼던 것이다.

예로부터 장터나 놀이터를 관리하는 사람을 대방(大房)이라 하였고 그 아래 비방(裨房)이 있었다. 단오절이 다가오면 명창과 출연 계약을 맺고 무대를 가설하면서, ‘단옷일 아모 명창이 나와 춘향전 한바탕을 부른다.’는 소문을 퍼트린다. …… 명창의 춘향전을 들으려고 수천 군중이 몰려들어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루었고, 그때의 입장료는 막걸리 한 납데기(한 되) 값이었다.296)전주 대사습놀이 보존회 편, ‘전주의 단오절 행사’, 『전주 대사습사』, 도서 출판 탐진, 1992, 37쪽.

안성 농악 보유자인 김기복은 안성에서는 백중이면 난장이 서고 광대들이 줄타기도 하고 남사당패들이 인형극도 했다고 한다.297)일시 : 1999. 8. 18. 장소 : 경기도 ‘안성 농악 전수관’.

이렇듯 세시 놀이는 시기나 규모는 다를망정 각 지역마다 있었고, 이러한 연례적인 행사들에는 그 지역의 광대들이 지속적으로 참가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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