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7권 천민 예인의 삶과 예술의 궤적
  • 제3장 광대, 자유로운 예술을 위한 길에 서서
  • 3. 광대들의 활동을 돌아보며
  • 일반 연회
손태도

광대 집단이 전통 사회에서 신분상의 광대 집단으로 민속 연예를 공식적으로 담당한 집단이고 보면, 관청에서든 민간에서든 일반 연회에 이들이 우선적으로 동원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다음은 문헌 기록에 보이는 일반 연회의 한 모습이다.

고을의 수령이 한 번 절에서 놀면 중들이 접대하는 비용은 거의 반년 동안의 생활비를 써 버리게 된다. 같이 간 사람들이 술·밥·담배·신발을 으레 토색하게 마련이요, 또 만약 기생을 데리고 가서 풍악을 잡히고 광대를 시켜서 잡희를 벌이게 되면, 뭇 남녀가 와서 구경하면서 다 중에게서 밥을 토색하게 되니 중들이 감당할 수 있겠는가.298)정약용(丁若鏞), 『목민심서(牧民心書)』, 율기(律己), 칙궁(飭躬).

다음은 경기도 지역의 대표적 화랑이로 악사와 소리 광대도 한 이용우(李龍雨, 1899∼1987)가 증언한 보부상의 정기적인 놀이였던 ‘하체 놀이’에 관한 것이다.

주로 경사가 있는 집, 환갑집, 도당굿판, 집굿 등에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또한 봄철에 하체 놀이에 많이 참석하였는데, 하체 놀이란 장돌림의 규율을 잡고 새 접장을 뽑을 때에 열리던 모임이다. 곧 등짐장사꾼의 잔치인데, 이때에 기생도 참여하고, 삼현육각도 잡히며, 줄타기도 하는데, 자신이 악사로 많이 참석하였다.299)김헌선, 『한국 화랑이 무속의 원리』 1, 지식 산업사, 1997, 154쪽.

이러한 일반 연회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역시 환갑잔치 같은 것이었다. 경기 이북의 재인촌 출신 김영택은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근대 이후 재인들의 가장 큰 벌이가 되는 것은 환갑잔치, 진갑잔치와 같 은 민간의 잔치였다. 환갑잔치 등에는 하루 전에 길군악을 치고 가서, 잔칫집에서 서도 잡가(西道雜歌) 등을 부르는 저녁 놀이를 한 뒤, 그 집에서 하루 잔다. 다음 날 아침 긴영산 등의 삼현육각을 연주하면, 주인이 옷 입고, 상 받고, 잔 받고 등의 일을 한다. 잔치가 무르익어 기생들이 검무 등을 추면, 악기 반주를 하고, 주인 양주와 친척들의 춤에도 반주한다. 저녁이 되면 재인들이 놀량 사거리, 방아 타령, 양산도 등을 부르다가 판이 좋으면, 배뱅이굿, 병신 타령 등의 재담소리를 했다.300)손태도, 앞의 책, 131∼132쪽.

환갑잔치 등에서의 광대 집단의 활동은 경기 이남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후손들이 잔 올릴 때 거상(擧床) 풍류 등의 삼현육각을 치는 것이고, 기생들의 춤에도 반주한다. 그리고 광대들이 줄타기를 하거나 소리 등을 하는 것이다. 다만, 경기 이북의 광대들이 서도 소리나 배뱅이굿 등과 같은 재담소리를 주된 흥행 소리로 하는 데 비해, 경기 이남의 광대들은 판소리를 부르는 것이 달랐을 뿐이다.

전북 부안의 김금순(1912∼ )에 따르면 젊었을 때 환갑잔치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는데, 악사들이 삼현육각을 연주하고, 기생들이 검무와 승무를 추었다 한다. 그리고 광대 놀음이 있었는데, 전남 순창에서 올라온 김두한이라는 사람이 줄타기를 하였고, 줄에서 내려와서는 땅재주도 하였다 한다. 그리고 근대 판소리 5명창 중의 한 사람이었던 정정렬이 판소리를 마당에 서서 했는데 상당 시간 동안 소리를 했다 한다.301)일시 : 2000. 3. 16. 장소 : 전북 부안군 행안면 자택.

환갑잔치는 보통의 가정에서도 흔히 하는 행사이다. 그러므로 일반 연회에서 이러한 환갑잔치는 자연 광대의 주요 활동 공간이 되는 셈이다. 이 밖에도 일반 연회와 관계되는 것이 더 있겠지만, 대체로 짐작할 수 있는 것들이기에 여기서는 더 이상 다루지 않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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