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7권 천민 예인의 삶과 예술의 궤적
  • 제4장 떠돌이 예인들이 남긴 예술과 삶의 지문
  • 2. 유랑 예인의 존재 양태, 연희와 매춘
  • 다양한 패거리들
  • 각설이패
주강현

구성진 장타령이 특기였다. 예인 집단에 각설이패를 포함시킬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정확하게 말하여 거지를 예인 집단에 넣을 수는 없지 않으냐는 주장이다. 그러나 그들 ‘거지 집단’은 단순한 거지가 아니었다. 각설이의 구성진 장타령은 자체로도 일품이었고, 조직적 대오를 갖추어 민가와 장터를 나다녔다. 각설이의 장타령은 당대 시대적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고, 구성진 목구비로 신명을 돋우었다. 최근까지 전해지는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하는 식의 노랫말을 누구나 기억하리라. 조선 전기 송순(宋純, 1493∼1583)의 한시 ‘거지의 노래를 듣고(聞乞歌)’에도 각설이들이 잘 드러난다.

새벽 꿈 깰 무렵 문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 베개 밀치고 들으니 타령 소리 길게 늘어진다

그 거지 시름없고 애걸 않고 구걸하는 소리조차 의젓한데

……

지팡이 흔들고 문을 나서 노랫소리 다시 높으니

백수 노인의 의기는 어찌 저리도 헌앙(軒昻)한가

늙은 거지가 초라한 모습으로 타령 소리를 의젓하게 하면서 인생을 한탄하는 모습을 읊었다. 작중의 인물은 비록 비렁뱅이지만 노랫소리는 시름에 겨워 애걸하는 가락이 아니며 말하는 품새가 제법 오만하다. 시의 내용으 로 미루어, 자영 농민이 졸지에 몰락하여 거리로 떠도는 모습을 반영한다. 본디 거지가 원래부터 거지가 아니었음을 말해 준다. 각설이패는 조선 후기에만 있었던 존재가 아니다. 거지야 고려시대인들 없었을 리 없으며, 어느 시기에나 거지들이 구걸을 하려면 그럴듯한 연출법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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