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8권 불교 미술, 상징과 영원의 세계
  • 제5장 불교 의례와 의식 문화
  • 2. 전각 내부의 의식과 시각 문화
  • 음식을 베풀어 영혼을 구제하다
정명희

하늘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승려는 부처의 10대 제자 중 하나인 목건련존자(目鍵蓮尊者)이다. 부처의 제자는 저마다 모두 한 가지씩 남들과 다른 능력을 지니고 있는데 목련은 누구보다 신통력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하루는 그가 신통력의 눈으로 삼라만상(森羅萬象)의 온 세계를 둘러보다가 자신의 돌아가신 어머니를 보게 된다. 그의 어머니는 죽어서 아귀(餓鬼)로 태어났는데, 음식을 먹지 못하고 피골이 상접하여 차마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지옥에서 어머니를 만난 목련은 슬픔을 가다듬고 발우(鉢盂)에 밥을 가득 담아 아귀가 된 어머니에게 드시게 하였다. 그러나 밥은 입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불덩어리로 변해 어머니는 끝내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비참한 마음으로 부처에게 어머니를 구제할 방법을 물었으나, 그의 어머니는 악업이 무겁고 뿌리가 깊어 누구든 지옥의 고통을 대신할 길이 없으며 오직 시방 대중 스님들의 위신력이라야 비로소 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부처가 목련에게 제시한 유일한 방법은 음력 7월 15일에 우란분재를 베푸는 것이었다.

우란분재의 우란분은 ‘거꾸로 매달린다(倒懸)’는 의미에서 유래한 말이다. 우란분재는 지옥에 거꾸로 매달리는 고통에서 구제하는 의식을 뜻한다.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지옥을 찾아간 목련존자의 지옥 순례기는 그의 이름을 따른 『목련경(木蓮經)』, 『불설우란분경(佛說盂蘭盆經)』에 근거하고 있다. 경전에는 승려들의 여름 하안거(夏安居) 시작일인 음력 7월 15일 우란분재를 베풀면 살아 있는 부모는 물론 7대의 선망(先亡) 부모와 친척들이 모두 고통에서 벗어나 천상에서 장수를 누릴 수 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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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로도
감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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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귀도(餓鬼道)에 빠진 부모를 구제하기 위해 마련한 의식 장면은 감로도라는 의미 있는 이름의 불화로 그려졌다. 감로는 ‘단 이슬’이란 의미로 부처의 가르침, 불법(佛法)을 비유한다. 마당 한가운데에 흰 천막을 둘러치고, 임시로 마련한 널찍한 시식단(施食壇) 위에는 활짝 핀 꽃과 장엄물, 가득 쌓아 올린 공양물을 놓았다. 이 의식단 앞에서 입에서 붉은 불꽃을 내뿜는 두 인물은 굶주린 귀신, 즉 아귀이다. 아귀들은 끝없는 굶주림에 허덕이지 만 음식을 먹기만 하면 그것이 불꽃으로 변해 고통받는 형벌을 받고 있다. 감로는 이들을 아귀도에서 구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시식단 아래에는 감로를 받기 위해 아우성치는 수많은 아귀를 그려 놓는다. 상단에는 의식 도량에 강림하여 영혼에게 감로를 베풀 일곱 부처와 보살이 등장한다. 중단에는 아귀를 구제하기 위한 의식 장면이, 하단에는 현실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고난과 억울한 죽음을 상징하는 망령의 세계가 펼쳐진다. 현실 세계의 다툼과 싸움, 질병과 재난, 전쟁의 장면은 하나의 화면 속에 혼재되어 있다. 하단에 그려 놓은 영혼들은 중단에 마련한 음식을 통해 상단의 불보살을 공양하고 의식을 마련한 공덕으로 상단의 불보살이 내리는 감로를 받고 아귀의 삶에서 벗어나게 된다. 감로도에는 의식을 통해 영가와 의식을 발원한 이가 부처의 가르침을 깨닫는 과정을 한 화면에 입체적으로 재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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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사 감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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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우란분재는 민간의 세시 풍속인 백중(百中, 百種)의 풍속과 혼재되어 백중일이 되었다. 백중일인 음력 7월 15일은 백 가지 음식을 진설하여 조상의 명복을 빌었다. 농경 사회에서 이날은 휴식의 날로 마을에서는 각종 놀이와 행사가 베풀어졌다. 솟대놀이, 줄타기, 탈춤 등 남사당패는 우란분재가 열린 사찰에서 공연을 펼쳤다. 감로도의 하단에는 조선시대 백중일에 펼치던 민간 전승의 놀이 장면이 도해되어 있다.167)민간 풍습으로서의 백중(百仲·百種)에 대한 연구로는 사재동, 『우란분재와 목련 전승의 문화사』, 중앙 인문사, 2000 ; 구미래, 「백중과 우란분재의 발생 기원에 관한 연구」, 『비교 민속학』 25, 비교 민속 학회, 2003, 495∼521쪽.

7월 15일은 속칭 백종(百種)이라 부른다. 백종에는 승려들이 백 가지의 화과(花果)를 갖추어서 우란분(盂蘭盆)을 설치하고 불공한다. 서울 안의 비구니가 있는 절에는 더욱 심하여 부녀들이 많이 모여 와서 쌀을 바치고 죽은 부모의 영혼을 부르며 제사 지낸다. 가끔 가로(街路)에 탁자를 설치해 놓고 하는 일도 있었는데 지금은 엄금한다.168)이능화, 『조선 불교 통사』, 신문관, 1918 : 보련각, 1972. 감로도를 우란분재의 광경을 도해한 우란분경변상도(盂蘭盆經變相圖)로 본 논문으로는 김영주, 「우란분경변상」, 『조선시대 불화 연구』, 지식산업사, 1970 ; 홍윤식, 「하단 탱화(下壇幀畵)(영단 단화(靈壇壇畵))」, 『문화재』 11, 1977, 143∼152쪽 ; 문명대, 『한국의 불화』, 열화당, 1986, 95∼99쪽 ; 배도식, 「밀양 백중놀이」, 『우란분재와 목련 전승의 문화사』, 459∼504쪽.

성현(成俔, 1439∼1504)이 지은 『용재총화(慵齋叢話)』에는 백 가지 공양물을 마련하고 우란분을 설치한 천도 의식을 기록하였다. 16세기 이전에는 백중 의식이 길거리에 시식단을 마련하고 진행될 정도로 성행하였다. 백중일의 핵심 내용은 세상을 떠난 조상을 위해 음식을 마련하는 ‘시식’ 의례이다. 그런데 감로도에 나타나는 여러 장면은 백중일의 우란분재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천도 의식으로 유행한 수륙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 다보불(多寶佛)은 진리와 재물을 모두 갖추어 뜻과 같이 이룰 수 있고 받아 씀이 다함이 없게 한다.

○ 보승불(寶勝佛)은 나쁜 길에 빠지지 않고 뜻대로 열반에 이르게 한다.

○ 묘색신불(妙色身佛)은 추하게 태어나는 과보를 면하고 사지가 온전하며 얼굴은 원만하게 한다.

○ 광박신불(廣博身佛)은 목구멍이 넓어져 굶주림을 면하고 자기 뜻대로 충족하게 한다.

○ 이포외불(離怖畏佛)은 항상 안락을 얻고 놀람과 두려움을 영원히 멀리하고 두려움이 없음에 자재케 한다.

○ 감로왕불(甘露王佛)은 바늘같이 가는 목구멍에 대한 과보를 면하여 감로미를 얻고 큰 깨달음을 이루게 한다.

○ 아미타불(阿彌陀佛)은 모든 고혼을 극락세계로 인도한다.

감로도 상단에 나타나는 불보살은 영혼을 구제하여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역할로, 수륙재 의식에서 봉청되는 여래와 일치한다. 또한, 감로도 하단의 의식 공간에 모인 온갖 고혼과 영혼은 수륙재 의식에서 천도의 대상으로 청해진다.169)의식집의 항목과의 대조를 통해 감로도 하단부 도상이 수륙의식문에 근거하고 있음을 밝힌 글로는 윤은희, 「감로왕도 도상의 형성 문제와 16, 17세기 감로왕도 연구」, 동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3년. 의식 장소에 동참할 주인공과 관객들이 불화에 시각화된 것이다. 우란분재와 수륙재는 모두 조선시대 큰 인기를 누리며 성행한 불교 의식으로, 음식을 베풀어 극락에 이르지 못한 채 떠도는 영혼을 구제하는 시식 절차가 의식의 핵심이다. 감로도라는 새로운 형식의 불화는 영혼 천도에 힘을 쏟는 조선 후기 신앙 의례의 성격을 보여 준다.

감로도에 묘사된 의식 장면을 어느 정도 현실의 재현으로 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시각 문화를 통해 당시의 의식을 어느 정도 복원할 수 있는가의 문제와 관련 있다. 다음 절에서는 감로도가 걸려 예배되는 공간과 기능에 주안점을 두고 의식과 불화의 관계에 대해 조금 더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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