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8권 불교 미술, 상징과 영원의 세계
  • 제5장 불교 의례와 의식 문화
  • 3. 야외 의식과 시각 문화
  • 도량을 꾸미는 불교 의식구
정명희

의식을 베푸는 야외 공간에는 괘불 이외에도 여러 종류의 불화를 걸었다. 괘불을 거는 의식에 사용하는 작은 의식용 불화는 그림의 폭이 대체로 50∼60㎝로, 한 폭에 한 인물씩이 그려져 있다. 이들의 역할은 무엇이며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실제 의식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사용되었을까?

1660년(현종 1)에 발간한 의식집인 『오종범음집(五種梵音集)』은 17세기 중엽 가장 많이 설행되던 다섯 가지의 불교 의식을 뽑아 수록한 책이다. 이 책은 상단에서 진행되는 예불 의식인 영산회작법으로 시작된다. 여기에는 의식을 시작하려면 반드시 사보살과 팔금강을 청해 도량을 위호하게 하고 불화를 건 후에 본격적인 의식을 진행하라고 규정하였다. 이런 의식집의 규정은 당시의 의식 진행 절차를 보여 주는 동시에 새로운 의식용 사물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관한 재미있는 추론을 제공한다. 의식을 주재할 불보살을 도량으로 불러 모시기에 앞서서 도량을 깨끗하게 해야 하였다. 애초에 이 절차는 의식을 집행하는 승려가 사보살과 팔금강의 이름(名號)을 직접 부르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일종의 범패 의식을 통해 이들을 현실의 도량에 강림하도록 하였을 이 절차는 점차 의식이 정기적으로, 일정한 공간에서 개최되면서 새로운 불화에 대한 수요를 만들어 냈다.

대웅전 안에서 의식을 행할 때는 사보살, 팔금강의 명호를 부름으로써 이들의 강림을 상징하였다면, 의식이 확대되어 야단에서 개최할 때는 도량의 경계를 의미하는 선을 긋고 각 절차에 참석하게 될 불보살과 신중을 상 징할 수 있는 신앙의 대체물이 필요하였다. 이 때문에 작은 의식용 불화를 제작하였다. 의식을 여는 빈도가 더욱 잦아지면서 신앙 의례의 시각적 재현물이던 불화와 번은 본래의 목적과 기능이 옅어지면서 도량 장엄용이라는 일반적인 의미로 활용되었다. 불보살의 이름을 부르는 절차를 통해 불보살이 현실에 내려온 것을 상징하던 것에서 시각화의 요구에 의해 새로운 의식구가 만들어진 것이다.

확대보기
도량장엄용 불화
도량장엄용 불화
팝업창 닫기

도량 장엄번(道場莊嚴幡) 중 경전의 이름을 적는 번(經典名幡) 역시 의식의 절차를 시각화한 결과물로 나타난 장엄구이다. 경전명번은 과거 의식의 흔적을 보여 준다. 고려시대는 법화 법석, 화엄 법석, 지장 법석, 능엄회, 원각회, 법화회 등의 법석이 많이 설행되었다. 경전의 이름을 지닌 다양한 법석의 내용과 절차를 기록한 자료는 없으나 당나라 때 적산원에서 있었던 독경 의식을 통해 볼 때 아마도 경전의 내용을 강의하고 토론하는 모임이었을 것이다. 해당 경전을 독송, 강경하고 교학적인 논의를 진행하던 의식은 조선시대에 들어 거의 사라졌다. 대신 경전명번을 도량에 걸고 경전의 이름을 암송함으로써 경전을 읽는 효력을 누릴 수 있다고 신앙되었다. 경전의 위력은 의식 도량에 걸린 경전명번을 통해 의식에 동참한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것으로 믿었던 것이다.

도량이 깨끗해지고 나면 신앙의 대상과 천도 받을 대상을 도량으로 옮겨 오는 시련(侍輦) 절차를 행하게 된다. 이때 필요한 것이 불련(佛輦), 즉 가마(輦)이다. 절 밖으로 나가 영혼을 모셔 오는 절차는 가마 안에 망자의 위 패를 태워 오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185)문화재 연구소, 『불교 의식』, 문화재 관리국 문화재 연구소, 1989 ; 법현, 『영산재 연구』, 운주사, 1997 ; 홍윤식, 『불교 의식구』, 대원사, 1996. 시련 의식에는 인로왕보살번(引路王菩薩幡)이 가장 앞서고 그 뒤로 깃발들이 따른다. 인로왕보살은 죽은 이의 영혼을 극락으로 인도해 주는 보살이기에 법회의 인도를 인로왕보살에게 위임한다. 영가(靈駕)는 인로왕보살을 상징하는 번을 따라 도량으로 들어오게 된다. 인로왕보살번 뒤로 청도기(靑道旗), 영기(令旗), 순시(巡視) 깃발, 방위를 수호하는 사방신기(四方神旗)를 비롯하여 의식에 불보살의 가피력이 내리기를 염원하는 각종 깃발이 가마 앞에 앞장선다. 깃발과 번의 행렬로 인해 의식을 치르는 도량의 분위기는 한껏 고조된다.

확대보기
가마(輦)
가마(輦)
팝업창 닫기

시련 의식을 통해 옮겨진 영혼은 바로 의식 도량에 들어오지 못한다. 불법이 베풀어지는 의식에 참석하려면 몸과 영혼을 깨끗이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관욕(灌浴)이라고 한다. 관욕은 목욕을 통해 영혼의 업과 세속의 때를 청정하게 하는 절차이다. 불보살이 내려온 도량에 영혼이 참석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가진 업과 세속의 때를 깨끗하게 씻어 내야 하였다. 영혼의 목욕은 이름을 적은 나무 위패나 종이옷을 영혼의 대체물로 삼아 이루어졌다. 이 절차를 위해 마당 한편에는 임시 관욕소(灌浴所)가 설치된다. 천도 받을 영혼을 대신하여 종이옷이 사용되었다. 의식집에는 영혼이 목욕하기 위한 공간인 관욕소와 이때 소요되는 물품이 규정되어 있다. 관욕소를 설치하고 차양을 쳐 버드나무 가지와 깨끗한 정수와 수건 등 욕구(浴具)를 갖추어 놓아야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임시 관욕소가 아닌 상설 관욕소가 설치되었다는 기록을 옛 문헌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앞서 보았던 진관사 수륙사 조성기에는 사찰의 중단과 하단의 좌우 측에 욕실을 설치하였다고 하여, 조선 전기 수륙 사찰에는 영혼을 위한 욕실이 상설 공간으로 마련되었음을 알 수 있다.186)고려시대 사찰 내부에 마련된 욕실의 존재는 사자암, 회암사, 오대산 수정암에서 기록을 찾을 수 있다. 사찰 내 욕실의 존재에서 관욕(灌浴) 등 의식 수행을 위한 절차와의 관련성을 배제할 수 없다(이병희, 「고려 시기 가람 구성과 불교 신앙」, 『문화사학』 11·12·13, 한국문화사학회, 1999, 693쪽). 이 글에서는 사찰이 욕실을 일상생활을 위한 공간으로 보았다.

확대보기
영산재
영산재
팝업창 닫기

그 밖에도 의식 도량의 장엄에 있어 필수적인 것이 가화(假花)이다. 가화는 가짜 꽃으로 생화(生花)를 대신해 사용하였다. 재질에 따라 종이(紙花), 비단(綵花, 羅花), 모시(苧布花), 밀납(蠟花)으로 제작되었다. 지화는 기록상 이미 고려의 연등회, 팔관회 등에 사용되었으며, 비단으로 만든 꽃과 장엄구 역시 고려시대부터 폭넓게 사용되었다. 조선시대 들어 비단·모시 꽃은 규제를 받고 점차 종이꽃이 사용되었다. 『세종실록』에는 공적이든 사적이든 불사에 비단으로 만든 꽃 대신 종이로 만든 꽃을 쓰라고 하였고, 모시 는 외국 사신의 연회장 이외에는 쓰지 못하게 하였다.187)하수영, 「불교 의례에 수용된 가화(假花)의 문헌적 연구」, 2005, 동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확대보기
괘전
괘전
팝업창 닫기

의식 도량에 걸리는 장엄구 이외에 대형 의식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 중 하나로, 종이로 만든 돈인 지전이 있다. 지전의 존재와 재를 지낼 때의 기능은 8세기의 기록에서부터 나타난다.188)760년(경덕왕 19)에 “월명이 세상을 떠난 누이를 위해 향가를 짓고 재를 지낼 때 홀연히 광풍이 불어 지전이 날려 서쪽으로 사라졌다.”는 내용에서 재를 지내는 데 사용된 지전(紙錢)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삼국유사』 권5, 감통(感通) 월명사도솔가(月明師兜率歌)). 의식에서 지전은 주로 예수재 등에 사용한다. 가짜 돈은 사후 전생의 업보를 갚는다는 불교적 내세관에 죗값이 빚이며 이를 갚을 수 있다는 속세적 방법론이 출현함으로써 생겨났다. 경전에 의하면 사람에게는 갚아야 할 두 가지 빚이 있다. 예수재를 지냄으로써 업보에 대한 빚을 갚고 지전을 만들어 시왕전(十王殿)에 올림으로써 물리적인 빚을 갚을 수 있다. 지전 신앙은 확산되어 영산재를 지내면서 중단 권공을 할 때도 사용하였으며, 대웅전의 좌우 측이나 도량의 사방에 둘러치는 줄에 지전을 걸어 도량을 장식하기도 하였다. 이를 ‘걸어 놓은 돈’이란 의미에서 괘전(掛錢)이라고도 한다. 의식문에는 지전을 만드는 조전법(造錢法), 지전을 만들기 위해 설치하는 조전 도량의 규칙, 이렇게 만든 지전을 시왕단에 옮기는 이운 의식이 수록되어 있다.189)『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預修十王生七齋儀纂要)』, 『한국 불교 의례 자료 총서』 2, 삼성암, 1993, 65∼95쪽.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