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8권 불교 미술, 상징과 영원의 세계
  • 제5장 불교 의례와 의식 문화
  • 4. 불교 의식 문화와 공동체의 이상
  • 공동체의 구심으로서의 불교 의식
정명희

고대 사회에 있어 불교 의식은 한 시대의 종교 자료로서뿐 아니라 해당 시기의 문화를 종합적으로 보여 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불교가 유입된 삼국시대 이후 조선에 이르기까지 의식과 미술의 구도는 정치와 종교의 역학 관계에 따라 많은 변화가 있었다. 종교가 정치와 마찬가지로 권력의 다른 이름이었을 때, 의식 역시 국가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으며 개최되었다.190)고대 사회에서 의례와 정치의 관련성에 대해서는 나희라, 『신라의 국가 제사』, 지식산업사, 2003 참조. 이에 비해 종교가 권력에서 멀어지고 대중 신앙으로 저변화되면서 의식 문화는 그 시기 사람들의 일상의 기원과 좀 더 밀접하게 연관을 맺었다. 기록을 통해 나타나는 과거의 의식 문화는 풍부하고 역동적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쉽게도 남아 있는 시각 문화는 조선 후기의 것이 대부분이어서 조선시대 이전의 시각 문화를 복원하는 것은 쉽지 않다.

조선은 유교를 사회·정치·문화의 이상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치세(治世)의 정치 덕목으로 출발한 유교가 종교의 역할을 대신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였고, 삶과 죽음에 대한 가치관을 담고 있는 불교의 지위는 쉽사리 바뀌지 않았다. 유교적 통치 체계가 정립된 이후 불교가 지녔던 사회적 역할의 많은 부분이 유교식으로 대체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고려시대까지 개최되던 국가 주도의 불교 의식은 줄어들었다. 의식은 존재 기반을 서민들에게서 찾았고 조선의 의식 문화는 점차 일반 대중들의 요구를 담아 내는 산물이 되었다.191)황선명, 『조선조 종교 사회사 연구』, 일지사, 1987, 154쪽 ; 심효섭, 「조선 전기 기신재의 설행과 의례」, 『불교학보』 40,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365∼383쪽.

불교 의식은 가뭄, 전염병의 퇴치와 같은 공동체가 직면한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개최되면서 현실에 적극 개입하였다. 고난을 극복하기 위해 함께 의식을 마련하고 절차를 진행하면서 개개 구성원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 강한 결속을 갖게 되었다. 의식은 수행을 통해 업을 청정하게 한다는 이념에서 비롯되었기에, 종교 본연의 성격을 반영한다. 의식 문화는 그 시대가 요구한 여러 기능을 수행하면서 여전히 사람들의 일상과 정신세계를 다스리는 구심점의 역할을 해 나갔다.

사찰은 예불 행위가 이루어지는 장소인 동시에 과거의 의례 문화를 간직한 보물 창고와 같다. 불교 의례는 우리의 과거 문화를 읽을 수 있는 키워드로, 비단 종교의 영역에 한정되지 않는 한 시대의 여러 문화가 드러난다. 의식을 구성하는 고유한 절차와 형식은 해당 시기의 신앙적 요구에 유연하게 대처하면서 변화되었다. 공동체의 이상이 시각화되는 방식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우리는 이미 익숙하게 보아온 것을 낯선 상황에서 만나는 흥미진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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