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9권 그림에게 물은 사대부의 생활과 풍류
  • 제1장 예를 따르는 삶과 미술
  • 3. 혼령이 깃드는 곳
  • 무덤, 죽은 자의 영원한 안식처
조인수
확대보기
분묘에서의 제향 장면
분묘에서의 제향 장면
팝업창 닫기

유교의 조상 숭배에 따르면 사람이 죽은 후 넋은 혼으로 신주에 깃들고 육신은 백으로 무덤에 묻힌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신주는 소중히 다루지만 영속적으로 모시는 것은 아니었다. 반면 무덤은 잘 보호만 하면 조상의 육신을 영원히 보존하는 곳이었고, 이곳에서 제향을 치르면 혼이 내려온다고 믿었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조상 숭배의 중심은 신주를 모신 사당이 아니라 육신을 묻은 무덤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어쩌면 만나 보지도 못하였던 먼 조상들을 간단한 신주의 형태로 모신 사당보다는, 얼마 전에 죽은 부모나 가족이 실제로 묻혀 있는 무덤이 좀 더 애절하게 효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무덤을 잘 정비하고 자주 찾는 것은 의례에 기초한 것만이 아니라 개인의 애틋한 인정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행위이기도 하였다. 더욱이 제례가 실행되는 측면에서 본다면 무덤은 죽은 자가 고요히 잠들어 있는 장소일 뿐만 아니라 정기적으로 제사가 행해지며 많은 사람이 함께 모여 행사를 치르는 사회 활동의 구심점이 된다.

조선시대의 분묘의 규모는 품계(品階)에 따라 크기가 달랐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분묘는 한계를 정하여 그 안에서 경작이나 목축을 금하는데, 종친 1품은 사방 100보, 2품은 90보, 3품은 80보, 4품은 70보, 5품은 60보, 6품은 50보를 영역으로 한다. 일반 문무관이면 여기서 10보씩 감한다. 이때 한계라는 것은 분묘의 실제 규모라기보다는 대체적인 범위를 언급하는 것이다. 『주자가례』의 치장(治葬)과 성분(成墳) 항목에 따르면 시신을 넣을 구덩이를 파고 삼물(三物), 즉 석회·모래·황토를 골고루 섞은 것으로 둘레를 마감하여 벌레나 도굴 등으로부터 시신이 상하는 것을 방지한다. 봉분의 높이는 4척으로 하며, 무덤의 형태도 흙을 둥그렇게 쌓아 높다란 봉분을 갖춘 모양이 된다.

확대보기
청화백자 묘지
청화백자 묘지
팝업창 닫기

무덤 속에 시신과 함께 넣는 부장품은 고려시대에 비하여 규모가 적은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묘지(墓誌)와 명기(明器)를 들 수 있다. 묘지는 죽은 사람의 이름, 세계, 행적, 수년, 졸장년월일(年月日) 등을 돌에 새기거나 도자기로 만들어 묻는 것이다. 묘지는 분묘가 잊혀지는 것을 막고 피장자의 생전 행적을 살피기 위한 것이라면, 명기는 죽은 자의 영생을 위해 묻는 것이다. 명기란 무덤 안에 시신과 함께 넣는 식기(食器), 악기(樂器), 집기(什器), 무기(武器), 거마(車馬), 인물상 등의 기물을 말한다. 『주자가례』에는 명기에 대하여 죽은 자가 생전에 사용하던 수레, 노비 등을 나무로 깎아 만든 모형이라 하고 가구나 그릇들도 작게 만들어 무덤에 넣는 것을 언급하고 있으나 『사례편람』에서는 이러한 언급이 없다.30)장철수, 「중국 의례가 한국 의례 생활에 미친 영향」, 『한국 문화 인류학』 6, 한국 문화 인류학회, 1973, 4쪽. 『국조오례의』에는 장례를 치를 때 나무를 다듬어서 말과 마차, 하인과 시녀를 작은 크기로 만들고 각각 봉양하는 물건을 지니게 하여 명기로 부장한다고 규정하였다.31)『증보문헌비고』 권87, 예고34, 6. 최근 조사된 조선시대 사대부의 무덤에서는 실제로 백자로 만든 명기가 출토되고 있는데, 장난감처럼 작은 모습을 하고 있다.

확대보기
백자 명기
백자 명기
팝업창 닫기

이처럼 분묘는 외형상으로는 간단하지만, 주변의 자연 환경과 확연히 구분되는 인공적인 모양으로 봉토를 만들고 주변을 정리하였다. 정작 중요한 것은 분묘 속에 매장된 조상의 육신이고 이와 함께 흙 속에 묻어 놓은 묘지와 명기로 인하여 잊혀질 염려 없이 영원한 휴식을 취하게 된다. 가문에서 배출한 뛰어난 인물의 묘소는 후손에게 성지이자 순례지가 되었고 이러한 유력한 조상의 묘에는 제사를 지내기 위해 인근에 재실(齋室)을 크게 지어 시제의 용도로 사용하기도 하였다.32)김봉렬, 『김봉렬의 한국 건축 이야기 3: 이 땅에 새겨진 정신』, 돌베개, 2006, 295∼299쪽. 죽은 조상의 안식처로서 분묘는 살아 있는 후손에게는 추념의 항구적인 발원지가 되는 것이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