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19권 그림에게 물은 사대부의 생활과 풍류
  • 제4장 화조와 사군자에 담은 사대부의 이상
  • 1. 화조와 사군자의 의미와 심상
  • 현세적 염원의 상징
백인산

일반적으로 사대부란 전·현직의 관리를 중심으로 한 유교적 지식 계급을 지칭한다. 그러나 이들의 신분은 대체로 세습되었기 때문에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전·현직 관리뿐만이 아니라 예비 관료까지를 포괄하는 지배 신분층을 뜻하는 개념으로 바뀌었다. 이들이 가격(家格)을 유지하고 가세(家勢)를 넓히기 위해서는 관리로 나아가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대표적인 통로가 바로 과거(科擧)였다. 등과(登科)는 입신양명(立身揚名)과 현달의 지름길이었다. 따라서 사대부 가문의 후손들이 품고 있는 현세적 욕망 가운데 등과하고 승차(陞差)하는 것보다 현실적이고 절실한 바람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조선의 사대부는 이런 염원을 여러 동식물을 통해 담아내곤 하였다. 그중 대표적인 몇몇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옛 그림에서 수면 위를 뛰어오르는 잉어가 등장하는 경우는 십중팔구는 과거 급제를 기원하는 그림이다. ‘등용문(登龍門)’의 고사를 소재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산서성 황하의 지류에 세 단계 폭포가 있는 곳을 용문(龍門)이라 하고 이곳을 뛰어오른 잉어는 용이 된다는 것이 대체적인 내용이다. 약리도(躍鯉圖)나 어변성룡도(魚變成龍圖)라고 부르는 이런 그림들은 등과하여 입신출세(立身出世)를 바라는 사대부의 소망을 반영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등용문의 잉어 외에도 쏘가리를 소재로 한 그림도 과거에 급제하여 대궐에 들어가 벼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쏘가리를 뜻하는 한자인 ‘궐(鱖)’이 대궐을 의미하는 궐(闕) 자와 동음(同音)인 탓이다. 이렇듯 독음(讀音)이 같은 소재들은 비록 그가 지닌 뜻이 다른 경우라도 상징적으로 밀접한 관련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쏘가리가 곧 궁궐이니 쏘가리를 잡아 놓은 것은 결국 벼슬을 맡아 놓았다는 의미인 셈이기 때문이다.

게를 소재로 한 그림도 대체로 등과와 관련된 경우가 많다. 게의 등딱 지를 갑(甲)이라고 부른 데서 유래한 것이다. 과거 시험에서 갑(甲)을 받아 장원 급제하라는 의미로 전화된 것이다. 여기에 갈대를 더하면 전시(殿試)에 장원 급제하여 임금의 부름을 받으라는 의미로 진전된다. 갈대를 뜻하는 노(蘆) 자가 임금이 내리는 음식을 뜻하는 려(臚)와 발음이 같기 때문에 이런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한다. 그 밖에도 백로(白鷺)와 연밥(蓮顆)을 함께 그려, ‘일로연과(一路連科)’, 즉 한달음에 연이어 과거에 급제하고자 하는 세속적인 욕망을 담아내었고, 사슴(鹿)을 그려 나라에서 녹(祿)을 받기를 기원하기도 하였다.

확대보기
십장생도
십장생도
팝업창 닫기

장수는 인간이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본능적인 욕구로 조선의 사대부도 예외일 수 없었다. 간혹 조선의 사대부 중에는 대의명분(大義名分)과 절 의를 위해 초개와 같이 목숨을 버리는 일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사례는 도덕적인 규범과 이상의 의미가 있을지언정, 일반적인 성향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들이 지닌 이상과 현세적 욕망 사이에는 항상 적지 않은 긴장과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무병장수하는 일은 신분과 계층을 불문하고 가장 큰 현실적 욕망 가운데 하나였다.

조선시대의 적지 않은 그림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신선과 같은 소재가 인물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것도 대체로 장생불사(長生不死)와 연관되어 있지만, 장수에 대한 염원을 피력한 그림 소재로는 동식물들이 가장 널리 애용되었다. 대표적인 예가 십장생도(十長生圖)이다. 십장생도는 불멸의 생명력을 지닌 자연물이거나 장수를 한다고 알려진 동식물들을 소재로 그린 그림을 일컫는다. 십장생은 애초에는 해·산·물·돌·구름·소나무·불로초·거북·학·사슴 등 열 가지를 지칭하였으나, 실제 십장생도에서는 십장물 중 어떤 것은 제외되거나 복숭아, 대나무, 괴석 등이 대신 추가되는 등 융통성 있게 운용되고 있다. 소나무와 학을 소재로 하는 송학도(松鶴圖)나 소나무와 사슴을 조화시킨 송록도(松鹿圖)와 같이 십장생 중 한두 개를 선별하여 그리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이 역시 넓은 의미에서 보면 십장생도에 속하는 그림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그림들은 화원(畵員)들에 의해 화려한 진채(眞彩)의 대작(大作) 병풍(屛風)으로 제작되어 왕실에서 사용하거나 정초에 세화(歲畵)로 재상이나 근신(近臣)에게 하사되곤 하였다.

그런가 하면 고양이와 나비를 그린 소위 모질도(耄耋圖)도 장수를 염원하는 대표적인 그림으로 꼽을 수 있다. 고양이와 나비가 장수를 상징하게 된 것은 한자의 독음 때문이다. 즉, 고양이를 뜻하는 묘(猫)와 70세 노인을 뜻하는 모(耄)가 원 독음이 같고, 나비를 뜻하는 접(蝶)이 80세 노인을 의미하는 질(耋)과 독음이 같았기 때문이니, 동음이의(同音異義)를 이용한 우의의 대표적인 경우이다.

장수를 의미하는 그림 중에는 대나무를 소재로 한 것도 있다. 대나무는 사군자의 대표적인 소재로 알려져 있지만, 장수를 기원하거나 경하하는 축수의 의미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죽(竹)’과 ‘축(祝)’은 ‘Chu’로 발음하는 동음이자(同音異字)로 수석(壽石)이나 영지(靈芝) 등과 함께 그려져 축수(祝壽)의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김조순이 그의 아들인 황산(黃山) 김유근(金逌根, 1785∼1840)의 생일을 맞아 대나무를 그려 주면서 장수를 기원한 다음 글이 실례(實例)이다.

특별히 8폭의 대나무를 그려 너에게 준다. 대나무란 것은 오래 사는 물건이고, 그 덕이 군자를 닮았다. 8폭으로 한 것은 100세나 90세는 사람마다 바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성인도 오히려 70세를 기약하셨으니, 80세 도 어려운 것이다. 사람마다 역시 건강하게 살기를 바랄 수는 있지만 고금의 현인군자도 대개 그러하셨다. 내 이제 이 한 폭으로 10년을 헤아리겠으니, 너로 하여금 지금부터 다시 40년을 살게 한다면, 나와 너는 모두 갖추게 되어 여한이 없을 것이다.280)김조순, 『풍고집』 권16, 「유아생조(逌兒生朝)」.

아들의 40번째 생일을 맞아 대나무 그림 8폭을 그려주며, 40세를 다시 살아 80세를 넘기기를 바라는 애틋한 부정이 절절히 묻어나오는 글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대나무를 그려 장수하기를 바라는 이 경우는 다소 특이한 예이지만, 조선시대의 많은 묵죽화가 이와 같이 축수의 용도로 그려졌을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다.

대나무뿐만 아니라 개결한 선비의 상징으로 인식되던 난초도 때로는 장수의 소망을 담아내는 상징물로 쓰이기도 하였다. 조선 말기 묵란화로 이름이 높았던 이하응(李昰應)이 쓴 다음 글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내 나이 65세이고, 손자의 나이는 15세이다. 나는 이미 쇠약하고 늙었지만 손자는 젊고 강건하다. 지금 늙은 팔로 그려서 주노니, 무릇 난초란 무리 지어 피어나서 오래 살고 복도 많을 뿐만 아니라 자손이 많은 징조로 여기는 것이므로, 너는 모름지기 허리에 차고서 경계로 삼아야 할 것이다. 갑신년 가을 7월 초하루에 쓰다.281)김정숙, 『석파(石坡) 이하응(李昰應)의 묵란화(墨蘭畵) 연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2, 94쪽 재인용.

청나라 군대에 끌려가 중국 보정부(保定府)에 유폐되어 있던 시절, 맏손자 이준용(李埈鎔, 1870∼1917)이 성년이 된 것을 기념하여 묵란 병풍을 그려 보내고 그 마지막 폭에 쓴 제문이다. 자신은 비록 유폐된 처지이지만, 이제 막 성년이 된 손자에게 강녕과 다복, 장수의 염원을 묵란화에 실어 보낸 것이다.

장수와 더불어 인간의 세속적인 욕망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부귀 일 것이다. 그러나 “불의로 부귀해지는 것은 나에게는 뜬구름과 같다.”고282)『논어(論語)』, 술이(述而). 한 공자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부귀는 유교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오히려 경계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청렴하고 결백한 청백리(淸白吏)를 관리의 도리이자 모범으로 숭앙하고 상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사대부들의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경제적 기반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사대부들 역시 도덕적인 이상과는 달리 부귀에 대한 욕구도 여느 시대, 여타 계층에 못지않게 강렬하였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에 화조화에서도 부귀와 영화를 얻고자 하는 사대부의 현세적 욕망이 담긴 그림들이 적지 않게 찾아진다. 모란 그림도 그중 하나이다. 모란은 그 형세가 크고 화려하여 예로부터 꽃 중의 왕(花王)이라 불리었으며, 송대 주돈이가 연을 상찬하는 글인 애련설에서 모란을 ‘꽃 중의 부귀한 자(花之富貴者)’라 칭한 이후로 부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꽃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확대보기
심사정의 화조
심사정의 화조
팝업창 닫기

한편, 부귀 못지않게 ‘다자(多子)’, 즉 많은 자손을 두는 것 또한 농업 경제를 기반으로 하는 유교 사회에서는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다. 특히, 종법(宗法) 질서를 사회 체계의 근간으로 삼았던 조선시대에는 자손을 많이 두어 대를 잇고 가계를 번창시키고자 하는 열망이 매우 컸다. 그래서 그림을 비롯한 예술품에서도 이러한 염원을 반영하는 소재들이 빈번히 등장한다. 석류, 수박, 포도, 연자 등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석류와 수박은 열매 속에 많은 씨를 담고 있으며, 포도는 덩굴(蔓帶)의 왕성한 생장력과 둥그런 알이 알알이 맺힌 포도송이의 탐스러운 생김새가 많은 자손을 연상시키기 때문이었다. 그런가 하면 연의 열매인 연자(蓮子)는 독음이 연달아 아들을 낳는다는 ‘연자(連子)’와 같아 동음이의를 이용한 또 하나의 예이다.

조선의 사대부들은 도학자(道學子)이자 정치가였으며, 때로는 문학자이자 예술가로서 당시 사회를 이끌었던 계층이다. 그들은 한 시대의 사표(師表)를 자처하였던 만큼 지배 계층으로서의 자율적인 책임 의식과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받았고, 또 이를 체행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다. 그러나 그들 역시 현실을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 본연의 현실적인 욕구를 완벽하게 제거하고 살아가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이에 조선시대의 다양한 미술품들에는 입신현달(立身顯達), 무병장수(無病長壽), 부귀다자(富貴多子) 같은 현실적 욕망이 투영되어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중에서도 화조화는 조선 사대부의 현실적 욕망을 담아내는 가장 유용한 화과(畵科)였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화조화의 소재가 되는 여러 동식물이 지니는 상징과 우의가 여느 화과보다도 현실적 욕망과 맞닿아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