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성

전두환 정권은 언론인 강제 해직과 언론사 통폐합 과정을 통해 방송을 장악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방송사 통폐합은 방송 통제의 시발점이었다. 방송사 통폐합의 핵심은 KBS를 중심으로 한 공영 방송 구조의 강제적 구축에 있었다. 이 과정에서 삼성 그룹의 중앙 미디어 계열인 TBC, 기독교 방송의 보도국, 동아 방송, 일부 지역 방송 등이 KBS에 강제적으로 흡수되었다. 또한 지방 MBC 주식의 51%를 MBC가 강제로 인수하고 MBC의 주식 65%를 KBS가 인수하여 KBS가 모든 방송을 사실상 지배하는 전일적 인 지배 구조를 구축하였고 동시에 형식적인 방송의 공영화도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전일적 공영제의 확립은 국민적 합의를 전혀 거치지 않은 채 전두환 정권이 지배 체제 강화를 목적으로 추진하였기 때문에 그 의도가 효율적인 방송 통제에 있었다고 이해할 수밖에 없다. 방송의 공공성을 보장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방송을 국가의 영역에 종속시켜 지배 권력을 재생산하는 제도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의도였다. 즉, 관영적 공영 방송 제도를 구축하였다고 볼 수 있다.

전두환 정권은 방송 광고 공사를 통하여 방송 시장을 관리하는 독특한 통제 방식을 활용하였다. 공영 방송 제도를 운영하기 위해 방송 광고 영업권을 국가의 관리하에 있는 방송 광고 공사가 독점하게 하였다. 방송 광고 공사는 1970년대 첨예화되었던 방송사 간의 지나친 광고 경쟁과 상업주의 폐단을 줄이고 프로그램의 공영화를 실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⁸⁷⁾ 강대인 외, 앞의 책, p.186. 방송 광고 공사는 방송 광고를 대행한 수수료로 언론 공익 사업을 지원하는 언론 유관 기구로 방송 광고료, 방송 광고 대행사, 대행 수수료 등 방송 광고의 분야를 관할하였다. 방송 광고의 영업권을 국가가 장악하여 조성된 자금의 사용까지 독점하는 관리 체제가 수립된 것이다. 방송 광고 공사는 방송 광고 시장의 치열한 경쟁을 일정 정도 제한하여 방송의 공익성을 높이고 국민의 자산인 전파를 사용하고 있는 방송 사업자들에게서 방송 사업으로 얻은 초과 이윤을⁸⁸⁾ 방송광고 대행 수수료로 조성되는 공익 자금은 국민의 자산인 전파를 방송사들이 독점적으로 사용한 대가로 준조세의 성격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현재 방송광고공사 체제는 지나친 광고 단가 경쟁이나 일부 미디어로 광고 쏠림현상을 제한하는 등의 공익적인 효과도 있다고 볼 수 있다. 준조세의 형태로 환수하는 제도적 장치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방송 광고 공사가 조성한 자금을 언론인 후생 복지를 위주로 활용하려 하였다는 점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방송 광고 공사가 1981년에서 1984년까지 조성해서 집행한 592억 원의 공익 자금 중 언론인의 자질 향상과 후생 복지 등에 180억 원을 지원한 바 있다.⁸⁹⁾ 강대인 외, 앞의 책, pp.186∼187.

1980년대 관영적 공영 방송 체제는 산업적으로는 KBS와 MBC의 독과점 체제(혹은 복점 체제)를 형성시켰다. 국가가 보장한 방송의 독과점 체계는 치열한 방송 광고 시장의 경쟁 구도를 회피해 갈 수 있게 하였다. 이러한 제도적인 뒷받침 이외에도 광고 소구력을 급상승시키는 방송 광고 컬러화, 지역 방송의 확충, 1986년 아시안 게임 등 대형 이벤트 개최 등이 방송사의 활황 국면을 이끌었다. 가장 기본적인 텔레비전 수상기의 보급도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컬러텔레비전 수상기까지 국내 생산이 가능해지면서 1981년에는 텔레비전 수상기 보급률이 전체 가구 대비 80%를 넘어섰고 라디오 보급은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1980년부터 4대 매체 중 방송 광고비의 비중은 꾸준히 성장하였다. 1970년대 중반에 이미 신문 매체를 압도하던 방송 광고비의 비중은 1980년부터 신문 광고비를 앞서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방송 광고비 규모가 커진 데는 공영 방송이 상업 방송의 재원 충당 방식인 광고를 KBS 1과 KBS 2, 두 채널 모두 채택하였기 때문이다. KBS는 통폐합으로 거대해진 방송사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1969년 중단하였던 광고 방송을 재개하였다. 이렇게 KBS까지 광고 방송을 재개하게 된 것은 막대한 방송 시설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특히 TBC 등을 통폐합하는 데에 투입한 경비 부담과 컬러 프로그램 제작비 등이 재정을 압박하는 요인이었고, 이는 MBC와 시청률 경쟁을 벌이게 된 동기가 되었다.⁹⁰⁾ 정순일 외, 『한국TV 40년의 발자취』, 한울아카데미, 2000, p.155. 1982년부터 KBS의 재원 중 시청료 대비 광고 수입의 비중이 거의 비슷하였고, 시청료 징수가 갈수록 어려워지자 광고 수입의 비중은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⁹¹⁾ 강대인 외, 앞의 책, pp.191∼193. 이는 형식적으로 공영 방송 체제가 구축되었지만 그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재원 구조는 공영성 담보와 거리가 멀었다는 점을 보여 준다.⁹²⁾ 조항제, 앞의 글, p.150.

이러한 KBS의 관영적·상업적 공영성에 대한 비판은 1986년부터 전개된 시청료 징수 거부 운동으로 본격화되었다. 시청료 거부 운동이 일어난 까닭은 총선을 앞두고 KBS가 편파 왜곡 보도를 일삼은 데도 원인이 크지만 근본적으로 공영성을 결여한 공영 방송에 대한 시청자들의 도전이라 할 수 있다. 결국 KBS 1의 광고 방송을 점차적으로 축소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게 된다.

1981년부터 1990년까지 KBS와 MBC의 광고 매출액 추이 등을 보면 거의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두 방송사의 복점 체계에서 동일한 광고료, 동일한 광고 관행, 광고 시간 완전 판매 등에 기인한 것이다.⁹³⁾ 조항제, 위의 글, pp.184∼185. 결국 두 방송사는 방송 광고 공사가 통제하는 방송 광고 시장을 둘러싸고 경쟁적 의존 관계에 있었으며, 공동 이익의 극대화를 도모하는 환경에 있었다. 따라서 1980년대는 제도적으로 관리되는 시장 시스템 아래에서 방송 사업이 안정적인 자본 축적의 기반을 다지게 되는 시기로 평가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