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0권 광고, 시대를 읽다
  • 제2장 광고로 본 근대 풍경
  • 2. 일제 강점기 광고와 식민주의
  • 아지노모도의 문화적 식민주의 창출
성주현

광고는 소비자를 설득하기 위해 사회적 언어를 쓰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문화에 호소해야 한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본 아지노모도의 광고 기법은 철저하게 토착화(土着化) 전략을 구사하였다. 그리하여 가장 일본적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한국적인 맛으로 우리의 입맛을 바꾸어 놓았다.

새로운 조미료를 생산한 아지노모도는 이를 알리기 위해 맨투맨식의 판촉 활동도 마다하지 않았다. 아지노모도 직원으로 구성된 홍보팀은 장(場)이 서는 곳이면 어디든지 찾아 다리품을 팔았다. 붉은색과 흰색 옷을 입은 서너 명의 사원, 현지에서 고용한 기수, 나팔수와 북치는 사람 등 십여 명으로 구성된 홍보팀은 깃발을 들고 거리를 돌면서 축음기로 당시 유행하던 노래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노래와 흥겨움에 모여든 사람들에게 아지노모도를 팔았다. 한때 유행하였던 약장수들의 영업 전략을 활용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아지노모도의 판촉 행사는 광고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우선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친숙한 생활 문화를 활용하였다. 아지노모도 광 고가 처음 등장한 것은 일제가 1915년에 개최한 조선 물산 공진회(朝鮮物産共進會)였다. 조선 물산 공진회는 일종의 산업 박람회로 ‘낙후된 조선이 한일 합방 후 일본에 의해 눈부시게 발전을 하였다.’는 일제의 왜곡된 선전장으로 활용되었는데, 아지노모도도 여기에 참여하여 ‘아지노모도(味の素)’라고 쓴 등불 20개를 밝히기도 하였다. 그리고 『매일신보』 1915년 9월 13일자에 바다의 떠오르는 해를 향해 다가가는 배를 배경으로 “시정 5년의 조선은 기념 공진회로, 수(手)에 취(取)한 양(樣)으로 시(視)하고, 발매 5년의 아지노모도는 순풍에 진(進)하는 선(船)의 양(樣)으로 유미(有味)히 매(賣)한 아지노모도”라는 카피로 첫 광고를 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아지노모도는 일제의 식민 문화와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었다. 이후 아지노모도는 식민지 조선인의 입맛을 지배하기 위해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근대성을 모토(motto)로 하는 광고 기법을 활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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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노모도의 최초 광고
아지노모도의 최초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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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한복을 입고 음식을 준비하는 여인들과 함께 설날 음식이나 추석 음식에는 아지노모도를 사용해야 한다는 카피가 등장하였다. 나아가 음식을 만드는 데 고추장, 된장 같은 재래 조미료와 함께 아지노모도는 필수품이라고 하였다. 또한 소비 계층도 시골 가정에서부터 신여성, 김 서방에 이르기까지 남녀를 불문하고 아주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계층을 끌어들이고 있다. 심지어 어린이까지도 “할머니도 엄마도 울 아버지도 언니도 말했습니다. 아지노모도는 모든 음식을 맛나게 해준다고요!”라고 선전하였다. 이러한 광고 효과는 광복 후 세대에게도 영향이 남아 있어 어릴 적 어머니가 “아지노모도 사오라”고 심부름시키는 소리가 여전히 귓가에 맴돌 정도였다.

아지노모도의 광고는 새로운 조미료를 토착 문화에 흡수시키는 데에 그치지 않았다. 시대의 변화와 함께 등장한 신문화의 선구를 자처하기도 하였다. 즉 “신여성은 아지노모도를”, “근대 여성은 모두 애용자”라는 카피와 함께 개량 한복을 입은 여인이 등장하는가 하면 “이것을 모르시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 됩니다.”라는 카피를 통해 아지노모도를 사용하면 자연스럽게 ‘신여성’, ‘근대 여성’,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처럼 유도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개량 한복에 뾰족구두를 신고 양산을 쓴 채 아지노모도를 든 신여성 뒤에는 지게꾼을 등장시키는가 하면 시골에서 올라와 식당에서 국수를 먹으면서 “우리 시골 국수 맛과는 맛이 딴판”이라고 감탄하는 노인을 통해 우열의 대립적 이미지를 상징하기도 하였다. 즉 재래의 문화는 새로운 상품의 필요에 따라 전용되어 소비자의 낯설음을 완화시키는 수단이 되기도 하고, 구태의 면모가 강조되어 상품의 새로움과 참신성을 부각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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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식민주의를 창출한 아지노모도 광고
문화적 식민주의를 창출한 아지노모도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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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을 쓰고 곰방대를 문 시골 사람이 무지함으로 인해 ‘까딱하면 일생을 망칠 뻔했던 실화’를 알리는 약 광고나 한복을 입은 여인 옆에 아지노모도를 선전하는 조미료 광고 어디에서도 자연스러운 문화적 전이를 찾을 수는 없다. 상품은 광고 안으로 재래의 문화나 소비자를 끌어들이지만 어디까지나 상품의 목적에 끼워 맞춘 대상에 불과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일본 상품의 본질은 잊지 않았다. 때로는 일본 국기를 배경으로 국산임을 자랑하거나 전시 체제 후원을 기도하는 광고도 빠뜨리지 않았다. 이러한 점에서 일제 강점기 광고는 제국주의와 함께 들어온 신문화에 밀려 설 자리를 잃은 토착 문화의 서글픈 한 단면을 보여 주기도 하였다.132) 이기리, 앞의 글, pp.13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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