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0권 광고, 시대를 읽다
  • 제2장 광고로 본 근대 풍경
  • 2. 일제 강점기 광고와 식민주의
  • 선거와 광고
성주현

오늘날 선거는 대의제(代議制)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 주권주의를 실현하는 제도의 하나로, 민주주의의 성패를 가늠하는 기본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주권자인 국민은 각종 선거를 통하여 직접 정치에 참여하게 된다. 즉 국민은 선거를 통하여 공직자를 선출하고 자신의 의사를 정치에 반영시킬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선거에 관해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삼국시대 백제의 정사암 회의(政事巖會議), 신라의 화백 회의(和白會議)와 남당 회의(南堂會議), 고구려의 제가 회의(諸家會議)를 비롯하여 고려의 도당 회의(都堂會議) 등이 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왕명이 절대적이었으나 정책 결정 과정에서 개인의 독단을 피하기 위하여 도당 회의가 있었고, 지방에서는 향촌의 자치 규약인 향약(鄕約)에 향약정(鄕約正)과 임원들을 선출하는 제도가 있었다. 그 밖에 1885년 반포된 향회예규(鄕會例規)에 의한 향회 제도는 지방 주민으로 구성된 군회·면회·이회를 두어 공공 사무를 의결하게 하고 특히 면리(面里)의 집행 기관인 집강(執綱)과 존위(尊位)는 주민이 선출하도록 하였으나 일제가 강점한 이후 폐지되었다. 이 향회 제도는 근대적 의미에서의 지방 자치의 첫 제도이기도 하였다.

일제는 강점 초기에 무단 정치(武斷政治)를 통해 억압적 국가 기구를 강화하여 대규모 관료의 투입을 통한 중앙 집권적 근대 국가의 기틀을 발전시켰다. 그 결과 조선에 존재했던 지방 정치의 상대적 자율성은 약화되었다. 그러나 일제는 3·1 운동 이후 식민지에 대한 중앙 권력의 지배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우리나라의 토착 지주 세력을 정치적으로 배제하면서도 경제적으로는 포섭하였다. 이에 따라 1920년 7월 도(道)에는 평의회(評議會), 부(府)와 면(面)에는 협의회(協議會), 23개 면에는 민선 면협의회가 구성되는 등 역사상 처음으로 적어도 형식적인 측면에서 선거를 통한 지방 자치 가 제도적으로 시행되었다. 그러나 지방의 각종 협의회는 조선 총독부의 정책을 의례적으로 통과시키는 도구에 불과하였고, 자산가나 친일파들을 관변(官邊)으로 중용하는 계기로 활용되었을 뿐이었다. 이는 식민 통치를 위한 도구로 이용되었으며, 여기에 참여한 인물은 대부분 지역 유지였고 일부는 자연스럽게 친일 세력으로 부상하였다.

그렇다면 일제 강점기 선거 광고는 어떠하였을까? 일제 강점기 선거 광고는 오늘날 선거 광고와 사뭇 달랐다. 현대 선거 광고는 정당에 대한 이미지를 살리는 것이 핵심이지만 일제 강점기 선거 광고는 단순하였다. 신문에 선거와 관련된 광고가 등장한 것은 1923년 11월 20일 제2회 부 및 지정면협의회원 총선거가 시행된 직후였다. 당시 부협의회원에는 한국인 70명, 일본인 126명, 지정면협의회원에는 한국인 114명, 일본인 153명이 각각 당선되었다. 당선자들은 신문을 통해 당선사례라는 광고를 게재하였다. 1923년 11월 22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경성부협의원의 당선사례에 등장한 인사는 이규현(李圭顯), 민용호(閔溶鎬), 오긍선(吳兢善), 방규환(方奎煥), 한익교(韓翼敎), 이진호(李軫鎬), 유전(劉銓), 신승균(申昇均) 등이다. 이들은 개별 광고를 하였는데, 광고 문안은 다음과 같이 동일하였다.

금반 경성부협의원 선거에 제하여 유권자 제씨의 심후하신 종정에 인하와 (다)행히 당선의 영광을 몽(蒙)하였삽기 자에 지상으로 근히 사의를 표하나이다.

당시 『동아일보』에 실린 당선사례 광고에는 경성부 외에도 인천부, 대구부, 평양부, 의주부, 부산부, 진남포부 등과 지정면협의회원 당선자들이 이름을 올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1933년 실시된 도의원 선거에서는 당선사례 외에도 지역 유권자 일동의 후보자 추천 광고가 적지 않게 보이고 있다. 후보자 추천 광고에는 후보자 자신의 얼굴 사진과 간단한 약력 및 의견을 곁들이고 있다. 한 예로 진위군 유권자 유지 일동이 경기도 후보에 추대한 이민훤(李敏烜)의 광고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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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훤 군은 본군 생장으로 지방 발전과 공익 사업에 다대한 공이 많음은 일반에 공지하는 바이다. 군은 일찍이 안중공보교 학무 위원, 진위 청년회 위원장, 진청 학원 직원 회장 등등의 요직에 처하여 무산 아동 교육에 다년 진력에 분투 활동하였고, 현하 평택면협의원, 평택 공보 학부모회 부회장의 요직선상에서 정신적 지도하에 헌신적 물질적 양방면에 헌신 노력 투사이므로 군이 차제에 도회 의원 후보자로 추천됨은 폐피한 농촌을 진흥케 하여 국리민복에 위대한 효과가 유하옵기에 도회 의원을 의촉코자 하니 유권자 제씨는 이민훤 씨를 투표 당선케 하여 주심을 앙망하나이다.

진위군 유권자 유지 일동134) 『동아일보』 1933년 5월 13일자.

이처럼 추천 광고는 지역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인물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도회 의원으로 당선되면 신문에 당선사례를 실어 인사를 대신하고 있다. 당선사례 광고는 개별로 하는 경우도 있지만 경남도회 의원처럼 합동으로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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