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0권 광고, 시대를 읽다
  • 제3장 광고 산업의 변천
  • 4. 광고주의 변화
  • 1980년대 광고주
이병관

1980년대에 일어난 두 사건은 광고 산업의 매우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었다. 먼저, 1981년 한국 방송 광고 공사가 설립되면서 모든 방송 광고의 판매가 광고 공사를 거치게 되었다. 한국 광고 공사는 광고 시간의 영업을 독점 대행하고 광고 대행사를 인정하는 권한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방송 광고물도 심의하였다.197) 방송 광고물의 심의는 1989년 2월 방송위원회로 이관되었다. 또한 같은 해에는 컬러텔레비전 방송을 개시하였고, 방송 광고는 프로그램보다 몇 개월 늦은 4월 1일에 컬러화가 시작되었다. 컬 러텔레비전 방송의 결과 1980년 100대 광고주 가운데 방송 광고비 순위 12위이던 금성사가 1987년에는 5위로, 삼성전자는 15위에서 7위로 뛰어올랐다.198) 김민환·김광수, 앞의 글. 또한 식품, 화장품, 패션 등 색상 효과가 큰 분야는 컬러 CF에 큰 관심을 보였는데, 광고의 컬러화는 소비자의 구매욕을 더욱 자극하여 신상품 개발, 시장 확대 등 산업 발전을 촉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1970년대 중반 이후에는 광고의 증가에 비례하여 광고 규제 및 심의가 강화되었다. 1976년에 제정된 언론법 시행령은 방송 광고를 본 프로그램의 8% 이내로만 허용하여 방송 광고 활동을 제한하였고, 방송 광고 심의 위원회는 심의를 강화하여 광고 제작물에 대한 광고 표현에 제재를 가하여 자율성을 위축시켰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1988년 9월 30일 32개 회원사가 참여하여 한국 광고주 협회를 창립하였다. 다시 말해 한국 광고주 협회는 광고 산업의 주체이면서도 역할과 권리를 찾지 못하던 관행을 깨고 광고주로서의 권리를 찾는 구심점 역할과 권익 옹호를 위해 설립된 단체였다.

한국 광고주 협회의 설립 목표로는 기업과 광고에 대한 인식을 제고시키는 일, 기업 언론으로서 광고의 자유를 신장시키는 일, 소비자에 대한 광고의 신뢰도를 높이는 일, 매체와의 합리적인 거래를 위한 광고 환경을 조성하는 일, 광고의 질적 수준 향상을 위한 조사 연구, 연수 사업 추진 등 이었다. 예를 들면 1987년부터 시작된 파스퇴르 유업과 유가공 협회 간의 우유 광고 논쟁을 둘러싸고 많은 문제가 발생하자, 광고주 협회는 해당 광고주에게 자제를 요청하기도 하였다. 또한 한국 광고주 협회는 광고에 대한 타율적 규제를 막고 광고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광고 자율 심의 기구의 설립을 추진하였으며, 광고 업계의 오랜 숙원인 발행 부수 공시 기구인 한국 ABC 협회의 발족을 주도하기도 하였다.199) 김문성, 앞의 글.

1980년대의 주요 광고주를 살펴보면 초반에는 제약·화장품·세제 업종이, 중반에는 자동차·컴퓨터·가정용품·전기 기기 등의 업종이, 후반 에는 보험·금융업·서비스·오락 등의 업종이 광고 시장 확대에 기여하였다. 1980년에 5위였던 삼성 전자가 1988년 3위를 거쳐 1990년에는 1위를 차지하였으며, 1980년에 7위였던 진로는 1984년에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이 시기 주요 광고주의 변화는 식품 및 제과 업계의 약진인데, 해태 제과, 롯데 제과, 삼양 식품, 제일 제당 등이 상위권을 차지하였다.200) 김민환·김광수, 앞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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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제과 광고
1980년대 제과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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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가전제품 광고
1970년대 가전제품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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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텔레비전이 첫 선을 보인 것은 1966년 금성사(현재 LG 전자)가 출시한 진공관식 19인치 흑백텔레비전이었다. 당시 텔레비전 가격은 6만 8350원으로 엄청나게 비쌌다. 이 금액은 당시 대졸자 초임 1만 5000원의 네 배였으며, 쌀 27가마를 살 수 있었다. 1970년대에는 아파트가 많이 건설되어 주거 환경이 급격히 변화함에 따라 냉장고, 세탁기 등의 백색 가전제품이 소비자들의 인기를 끌었다. 이에 따라 국내 가전사들의 경쟁도 격화되었다. 당시 가전 시장은 금성사가 독주하고 있었는데, 이를 뒤쫓는 삼성 전자의 추격도 이때부터 만만치 않았다. 1975년 출시된 이코노 TV, 은하 세탁기, 1976년에 출시된 하이 콜드 냉장고 등이 이러한 삼성 전자의 추격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특히 당시가 1차 유류 파동을 겪은 직후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코노’라는 브랜드를 내세워 절약을 강조한 것은 훌륭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냉장고도 역시 냉장고 가동열로 성에를 막아 20%의 절전 효과가 있는 ‘절전형 냉장고’라는 점을 강조한 마케팅 전략으로 큰 효과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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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가전제품 광고
1980년대 가전제품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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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에 이르러 컬러텔레비전의 시대가 열리자 국내 가전 시장의 규모는 더욱 커졌다. 특히 1984년 LA 올림픽과 1988년 서울 올림픽은 비디오테이프리코더(VTR)와 컬러텔레비전을 중심으로 한 소비재 시장의 폭발적인 신장을 촉진하였고 그럴수록 금성·삼성·대우 등 가전 3사의 광고전은 더욱더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1987년까지 전체 가구의 약 14.6%였던 VTR 보급률은 올림픽을 계기로 1988년에 다섯 가구에 한 대꼴로 급격히 증가하였고 1992년에는 54.2%에 이르렀다. 이와 같이 가전 시장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계속된 금성과 삼성 전자의 광고전은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금성)”, “소리가 다르면 감동도 다릅니다(삼성)” 등 빼어난 광고 히트작을 남기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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