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1권 근대와 만난 미술과 도시
  • 제1장 미술의 탄생
  • 3. 미술 개념의 분화와 질서화
  • 사진
윤세진

사진은 그 자체로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산물이다. 때문에 그것이 순수 예술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은 사진사에서 중요한 논쟁거리였다.50)장 클로드 르마니·앙드레 루이예 편저, 정진국 옮김, 『세계 사진사』, 까치, 1993, 155∼186쪽. 1851년 런던 만국 박람회와 1855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 사진이 전시되었지만, 이는 근대적 테크놀로지의 하나로서 ‘산업관’에서 이루어졌다.51)근대 사진전에 대해서는 이경민, 「박람회와 사진, 그리고 예술 제도 : 한국 근대 사진의 예술 제도화 과정」, 『한국 현대 미술 새로 보기』, 미진사, 2007을 참고. 사진이 ‘미학’을 탐구하면서 본격적으로 ‘예술’의 지위를 탐하게 된 것은 19세기 말 ‘사진적 회화(photographie pictorialiste)’ 운동부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사진의 의식적인 예술화(藝術化)와는 무관하게 사진이 여타의 미술과 마찬가지로 감상을 목적으로 ‘전시’되는 순간부터 사진 역시 미술의 하나로 범주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1910년 『대한매일신보』에는 미국에서 오색 사진과 오색 도화 인쇄법을 배워 온 이종찬 씨를 소개하면서 “차등 기술은 한국에 초유한 미술이라더라.”라는 기사를 실었다.52)「잡보」, 『대한매일신보』 1910년 2월 23일자. 물론 여기서 미술은 광의의 ‘기술’을 의미한다. 실제로 1915년 시정 5년 기념 조선 물산 공진회에서 사진은 문구, 인쇄 물과 함께 제6부 ‘공업’ 부문의 제30류로 분류되어 전시되었다. 일찍이 제1회 내국 권업 박람회(1877)에서 미술관에 전시될 하위 장르 중 하나로 ‘사진’을 포함시켰던 일본의 경우와 달리, 우리나라에서 사진이 회화나 조각과 동등한 ‘미술’의 일환으로 전시된 것은 1929년에 경복궁에서 열린 조선 박람회 때였다.53)이경민, 앞의 글, 98쪽. ‘조선 박람회 규칙’에 따르면 ‘제16부 미술 및 공예’ 부분에 동양화, 서양화, 서(書) 및 사군자, 조소, 미술 공예과 함께 ‘예술 사진’ 항목이 들어 있다. 그리고 미술 및 공예 출품물을 위해 설립된 미술 공예 교육관에 함께 전시할 예술 사진 공모전이 열리기도 하였으나, 공모에 출품된 사진의 ‘예술성’이 어떠하였는지는 짐작하기 어렵다. 비록 조선 미술 전람회에는 포함되지 못하였지만, 이 조선 박람회를 계기로 예술 사진 전람회가 빈번하게 열렸으며 여러 사진가 그룹이 결성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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