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1권 근대와 만난 미술과 도시
  • 제5장 도시 공간과 시각 문화
  • 2. 1950년대 이후 도시와 시각 문화
  • 대중 매체와 소비문화
김영나

20세기 문화에 가장 커다란 변화를 불러온 것은 기술의 발전과 정보 교류의 흐름에 영향을 준 대중 매체(大衆媒體)의 발전이었다. 매스 미디어(Mass Media), 즉 대중 매체란 다수의 사람에게 정보와 소통을 매개하는 도구를 말한다. 신문과 잡지가 근대의 대중 매체를 대변하고 지식의 증대에 지대하게 공헌하였지만 이러한 매체는 교육을 받은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국한되었다. 따라서 일정한 수준 이상의 지식층에게만 정보가 도달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러나 청각과 시각적인 매체인 라디오와 텔레비전이 나오면서 대중 매체에서 관객의 범위는 크게 확대되었다.

사진에서 발전된 영화가 소리와 움직임을 도입하고 서사(敍事)의 연속성을 보장하였다면, 텔레비전은 속도, 전파력, 직접성에서 오락, 정치, 문화 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매체로 각광받았다. 1960년대에 텔레비전이 인류에게 유익하게 사용될 것이며 지구의 구석구석을 연결하는 글로벌 빌리지(global village), 즉 지구촌(地球村)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예언한 캐나다 학자 맥루한(Marshall McLuhan, 1911∼1980)을 주목한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태어나 독일과 미국에서 활약하였던 백남준(白南準, 1932∼2006)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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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의 음악 전시회-전자 텔레비전 광경
백남준의 음악 전시회-전자 텔레비전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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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의 가능성을 누구보다도 빨리 간파하였던 그는 텔레비전 수상기 외부에 자석을 작동시켜 모니터의 이미지가 뒤틀리고 왜곡되게 하거나, 텔레비전 세트를 여러 개 놓거나 거꾸로 놓으면서 텔레비전이 단지 방송국에서 제작한 프로그램을 일방적으로 공급하는 매체라는 인식을 반박하였다. 1965년에 일본의 소니사가 휴대용 반인치(半inch) 비디오카메라를 선보이면서 텔레비전은 상호적 매체가 되었다. 누구나 쉽게 작동할 수 있고 금방 모니터로 볼 수 있는 비디오는 관객이 더 이상 제작사의 프로그램만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능동적으로 생산할 수 있게 해주었다. 백남준은 이후 비디오 신서사이저(video synthesizer)를 이용해 다큐멘터리 사진, 퍼포먼스, 무용, 음악과 결합한 다양한 이미지를 창조하면서 비디오 아트(video art) 분야에서 선구적인 예술가가 되었다. 인공위성을 이용한 ‘굿 모닝 미스터 오웰’(1984)이나 통신위성으로 뉴욕, 동경, 서울을 연결한 ‘바이바이 키플링’(1986) 등은 문자 그대로 전 지구적인 커뮤니케이션 이벤트였다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이후 케이블 텔레비전(cable TV)과 같은 다양한 채널과 쌍방향 프로그램이 제공되면서, 텔레비전은 각계각층의 다양한 시각을 제시하거나 논쟁의 장을 제공하기도 하며, 과거의 사건을 다큐멘터리로 볼 수 있게 하고, 아예 일상을 잊어버린 채 드라마의 세계에 빠져버리게도 한다. 신문이나 잡지가 혼자 읽는 매체임에 비해 텔레비전은 가족과 거실에서, 또는 다른 공공 영역에서 여러 사람과 함께 듣거나 볼 수 있다는 의미에서 사회적 공간을 공유하는 매체이기도 하다. 또 거리의 전광판에서는 실시간으로 중요한 텔레비전 뉴스를 방영하기도 한다. 과거의 인쇄 매체에 비해 텔레비전은 즉각 전파를 탈 수 있고 생방송이 가능하며 가공할 만한 숫자의 관객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시대 시각 문화의 가장 강력한 매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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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 찾기 운동
이산가족 찾기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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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은 많은 사람에게 공동체 의식을 투여하는 위력을 가지기도 한다. 텔레비전을 통해 대한민국 국민 전부가 하나가 된 경험은 1983년 6월 30일부터 시작한 이산가족 찾기 운동이었다. 패티 킴의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를 타이틀 음악으로 한 이 프로그램은 수많은 사람을 텔레비전 앞으로 모이게 하였고, 민족의 비극을 가슴으로 느끼고 동질감을 확인하게 하였다. 2002년 6월의 월드컵 경기에서도 우리나라 국가 대표 축구팀이 예상외의 선전을 펼치는 모습과 시 청 앞 광장의 대형 건물을 배경으로 거의 백만 명 이상이 모여 응원하는 모습을 텔레비전으로 보면서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붉은 티셔츠를 입고 시청 앞으로 달려가거나 대형 전광판 앞에 모여 축제 분위기를 만끽하였다.

이러한 대중 매체의 논의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광고와의 관계이다.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이러한 매체는 광고가 없이는 존재하기 어렵고, 광고는 자본주의 경영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한편 이러한 대중 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광고는 단지 상품이나 그 상품을 생산한 기업의 선전을 넘어서 그 시대의 가치관, 권력, 민족주의를 유발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무엇을 사고 소비하느냐 하는 문제가 사람들의 정체성을 형성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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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약 광고
치약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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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보면 6·25 전쟁 이후 피해를 복구하던 시절에 신문이나 잡지 광고에 등장한 것은 미국 상품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와 풍요롭고 자유로워 보이는 미국식 생활 방식에 대한 동경이었다. 유엔군과 함께 들어온 미국 문화를 통해 각인된 ‘메이드 인 유 에스 에이(made in U.S.A)’ 상표는 제품의 질에 대한 확언(確言)이었다. 예를 들면 1955년에 럭키 치약이 낸 신문 광고는 “미제와 꼭 같은(미국 원료 미국 처방으로 제조된)”이라는 카피를 사용하여 미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자사의 상품을 선전하고 있다. 초기 텔레비전 방송도 우리에게 미국 대중 문화에 대한 환상을 심어 주는 데 일조 하다. ‘아이 러브 루시’나 ‘도망자’ 같은 인기 프로그램에서 묘사된 미국 중산층의 풍요로운 생활은 많은 이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고 미국에 대한 동경 일변도에서 벗어난 이후까지도 세계 제일에 대한 열망은 계속되었다. 1969년도 훼스탈 광고에서 “이것이 세계 제일이다”라는 문구나 1995년의 “우리의 경제 영토를 세계로”라는 대우 건설의 광고 문구가 그러한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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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 라면 광고
농심 라면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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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가 대중 매체를 통해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이후 우리나라 경제가 고도성장(高度成長)의 가도를 달리면서부터였다. 가전제품에서부터 드링크, 화장품에 이르는 다양한 제품이 신문, 라디오의 광고 선전용 노래(CM song), 텔레비전 광고를 통해 사람들의 구매 욕망을 부추겼다. 그러다가 1980년대에는 컬러텔레비전이 보급되면서 텔레비전 광고는 더 화려하고 다양해진다. 이 무렵에는 국산 제품의 수준이 향상되면서 우리 것, 우리 맛과 정서를 자극하는 광고가 등장하였다. 예를 들면 코미디언(comedian) 구봉서와 곽규석이 “형님 먼저 드시오, 농심 라면, 아우 먼저 들게나, 농심 라면, 아우 먼저, 형님 먼저, 내가 먼저, 고맙다 아우야.” 하는 ‘농심 라면’ 광고가 연일 전파를 타면서 상품보다도 그 구수한 내용이 더 큰 인기를 끌었다.

기본적으로 1980년대까지의 광고가 주로 한국적인 정서나 발전한 한국의 이미지를 강조하였다면, 1990년대 이후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자란 신세대가 등장하면서 광고는 10대를 대상으로 하는 경향을 보인다. 풍요로운 환경에서 자란 이들 세대는 그들의 부모가 경험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지 못한 세대였다. 또 1980년대 민주화 시위를 이끌던 386세대와 달리 이들은 새 로운 것을 쉽게 받아들이고, 외국 문화를 흡수하며, MTV를 보며 성장하였고, 인터넷이 일상인 세대이다. 1990년대의 개방 정책으로 외국 문화가 물밀듯이 들어오면서 이들은 책보다 애니메이션, 광고, 비디오, 영화를 더 선호한다. 또 단순히 하나의 매체를 즐기기보다는 특정한 장르, 예를 들면 느와르 필름(film noir), 과학 공상 소설, 재즈, 힙합 등에 관심을 가진다. 기존 관습을 뒤집는 『이매진』, 『씨네 21』, 『스키조』, 『게릴라』 등이 이들이 보는 잡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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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 광고
나이키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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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이나 10대를 대상으로 하는 텔레비전 광고 중 대표적인 것이 1980년대의 ‘나이키’ 운동화 광고였다. 신세대의 욕망과 소비 패턴을 잘 파악하면서 상품 정보보다는 세련된 영상에 집중한 이 광고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나이키 운동화는 운동화이기 이전에 청소년들이 꼭 가져야 하는 아이콘이 되었고 이 운동화를 갖기 위해 청소년 범죄도 일어났다. 본고장 미국에서도 농구 선수 마이클 조던을 모델로 내세워 선풍적인 인기를 끈 나이키 광고는 우리나라에서는 마라톤 세계 기록 보유자 알베르토 살라자르가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달리는 모습을 방영하였다. 다양한 카메라 각도와 빠른 화면 전환 등의 기술을 적극 활용하면서 이제는 광고 자체가 하나의 시각 작품이자 핵심 산업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글로벌시대와 정보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전 지구적으로 문화를 공유 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정보는 나날이 더 빠른 방법으로 전달되고 있으며, 예술과 오락에 대한 개념이 변하고 있다. 우리는 늘 할리우드 영화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토론해 왔지만 최근에 해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한류(韓流) 드라마의 붐은 글로벌한 시대에 한 나라에서 만든 드라마가 다른 나라에서 어떻게 새로운 문맥을 만들어 내고 해석되는지를 잘 보여 준다. 연속극 ‘겨울 연가’나 ‘대장금’이 아시아뿐 아니라 중남미에서까지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한국어 배우기 열풍과 한국 문화 알기의 붐이 일어났고, 이런 식으로 대중문화가 문화 산업의 선봉이 되었다.

가장 최근에 글로벌시대의 대중 매체로 등장한 것은 인터넷(internet)이다. 원래 인터넷은 미국에서 핵전쟁과 같은 군사적 도발이 있을 경우를 대비해 비상 통신을 위한 국가 정보 시스템으로 만들었는데, 이제 전 세계를 영역으로 하는 공간에 참여한다. 1990년대부터 그래픽과 이미지 활용 능력이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인터넷은 시각 문화, 기술, 사회를 통합할 수 있는 강력한 매체로 등장하였다. 그뿐 아니라 인터넷은 국가와 국가 간의 국경뿐 아니라 도시와 시골의 경계도 허물고 있다. 온라인을 통한 채팅, 정보 수집, 구매뿐 아니라 개인의 블로그(blog)와 홈페이지(homepage) 등을 통해 누구나 쉽게 작가나 제작자가 될 수 있으며, 무한한 접속 가능성을 통해 시공을 뛰어넘는 소통을 가능케 한다.

인터넷은 예술의 영역으로도 발전하였다. 장영혜 중공업은 인터넷 작가로 시작한 작가들로, 한국인 장영혜와 미국인 마크 보쥬(Mark Boge)가 같이 작업하고 있다. 장영혜 중공업은 자신들을 사업체로 제시한다. 이들의 사업은 기업이나 자본에 대한 비판, 일상과 미술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철학과 위트가 담긴 텍스트 문자로 작성해 인터넷에 띠우는 것이다. 흰 바탕에 검은색의 문자는 강한 비트나 재즈 음악을 배경으로 빠르게 지나간다. 장영혜 중공업의 작업은 기존처럼 화랑, 작업실, 미술관 관계자와의 접촉이 필요 없는 작업이다. 이들은 국경이 존재하지 않는 인터넷상에서 세계 각 국의 관객들을 만나게 된다.

지금까지 지난 100여 년간 한성이 경성으로, 다시 서울로 이름이 바뀌면서 변화한 도시 공간과 건축물, 사진과 인쇄 매체, 공공 조형물,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함께 등장한 새로운 대중 매체 등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근대화·산업화·도시화를 앞세운 근대 국가의 성립은 전통적인 삶에서 벗어나 진보적 사회와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주었지만, 한편 그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급격한 사회적·문화적 변화와 그에 대한 적응의 어려움은 일종의 불안감과 부정적인 시각을 수반하게 한 것도 사실이었다. 이러한 근대화 과정에서 옛 건물은 많이 파괴되었고, 부수고 새로 지으면서, 서울은 기억과 역사가 없는 도시가 되어 버렸으며 사람들의 경험과 내용이 담긴 공간은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다행히 최근 문화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면서 근대 문화재를 지정하고 새롭게 보존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은 이러한 지난 역사에서 얻은 교훈이라고 하겠다.

오늘날의 도시는 근대 초기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물리적으로나 시각적으로 확장되었다. 근대 초기에는 건축에 못지않은 주요 매체가 인쇄 매체와 사진이었다면, 오늘날 도시인들은 언어를 모르더라도 누구나 다가갈 수 있는 이미지 중심의 영화, 광고, 비디오, 전자 매체 등 다양한 시각 문화를 사적·공적 영역에서 마주치게 된다. 특히 광고와 사진은 인쇄 매체의 한계에서 벗어나 텔레비전, 거리의 전광판, 옥외 대형 광고를 통해 도시에 침투하고 있으며, 인터넷의 가공할 만한 위력은 시골·도시·국가 간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전 지구적 문화 공유를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글로벌’한 시대에 살고 있음을 깨닫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칼’로 이야기되는 우리만의 특수한 역사·사회·문화가 우리의 시각 문화에서 동시에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도시 공간과 시각 문화는 여러 각도에서 조명되어야 하고 어느 측면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이 글은 주로 19세기 말부터 현재까지 도시 공간 속의 시각 이미지가 어떻게 사람들의 일상과 무의식을 파고들어 작동하느냐에 관심을 가지고 이미지의 제작·수용·소비에 초점을 맞추고, 그 문화적 의미를 해석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러한 시도는 기본적으로 근대 이후 우리가 다른 외부 세계를 어떻게 지각하고 수용하고 이해하였는가를 알아보기 위함이다. 이러한 근대와 현대의 도시 공간과 시각 이미지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이해하게 된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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