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2권 여행과 관광으로 본 근대
  • 제2장 상상의 틀, 여행의 수단
  • 1. 철도의 등장과 관광으로서의 여행
  • 관광 안내서
성주현

근대 자본주의는 여행, 나아가 관광이라는 새로운 소비문화를 창출하였다. 초기 근대 관광 문화의 대표적인 수단은 철도였다. 철도가 등장하기 이전에는 말이나 배가 주요 수단이었지만 증기 기관의 발명과 철도의 등장으로 교통수단이 발전함에 따라 공간 이동이 자유로워졌다. 이에 따라 여행도 자유로워졌고 점차 상품화되어 갔다. 영국에서는 토머스 쿡(Thomas Cook, 1808∼1892)이 처음으로 철도 여행을 조직해 근대 여행 상품의 기틀을 마련하였으며, 뒤이어 미국, 네덜란드, 독일 등에서는 관광 상품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관광 회사가 생겨났다. 이러한 관광의 상품화는 제국주의가 맹위를 떨치던 19세기 말부터 서구에서 두드러졌으며, 가깝게는 서구의 모델을 도입하는 데 적극적이었던 일본에서도 이를 수용하여 관광 문화가 발달하였다. 이러한 인식에서 출발한 관광 문화는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 관광 정책과 맞물려 번성하였으며 점차 대중화되었다.

그리고 여행자들은 식민지의 풍경과 사람을 손쉽게 그들의 시선으로 담아 여행기(旅行記)나 사진엽서 등으로 출판하고 시각화하였다. 특히 사진엽서로 복제된 식민지의 이미지는 관광 안내 책자 등으로 인쇄되어 여행자들의 시선을 자극하였다. 그뿐 아니라 관광 문화가 성장함에 따라 관광 팸플릿이 등장하여 여행 욕구를 자극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관광 문화는 식민지에 그대로 흡수되었다. 여기에는 당시 식민지였던 조선도 예외가 아니었다.95)권혁희, 『조선에서 온 사진엽서』, 민음사, 2005, 63∼71쪽.

일제는 조선에서 철도가 개통되자 제국주의 관광 문화를 그대로 조선에 적용하였다. 1905년 경부선과 경의선이 개통되자 통감부는 1908년 『조선 철도 안내(朝鮮鐵道案內)』를 간행하여 경부선과 경의선의 각 역, 그리고 역 부근의 주요 명승지를 비롯하여 여관, 요리점, 교통은 물론 인력거 요금, 통신 등까지도 자세하게 소개하였다.96)統監府 鐵道管理局, 『韓國鐵道路線案內』, 日韓印刷株式會社, 1908. 그러나 일본인의 조선 관광은 철도 가 개통되기 전인 1904년부터 여권 없이도 가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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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관광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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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는 조선을 강점한 이후에도 조선 총독부 철도국(鐵道局)을 통해 각 지역 또는 철도가 개통된 후 철도 노선을 중심으로 지역을 소개하면서 관광이 가능한 명승지를 홍보하였다. 그런데 이 홍보성 안내서의 대상은 식민지 조선인이 아니라 일본인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런 안내서를 식민지 지식층에서도 적지 않게 활용하였을 것이다. 실제로 1920년대 이후에는 각종 청년 단체나 사회 단체가 주관하여 ‘탐승단(探勝團)’ 또는 ‘관광단(觀光團)’을 조직하여 명승지를 탐방하였다. 그리고 이와 같은 탐승단의 활동을 통해 관광을 재생산하였다. 이러한 탐승단이라는 관광단이 형성된 데는 『개벽(開闢)』의 영향도 적지 않았다. 『개벽』은 1923년 4월부터 1925년 12월까지 거의 3년 동안 매호에 걸쳐 ‘조선 문화의 근본 조사’라는 특집을 대대적으로 연재한 바 있다. 이 특집에서는 전국을 도별로 나눈 다음 주요 지역을 직접 답사하고 그에 대한 인문, 역사, 지리, 명승고적 등을 소개하였고, 일제 강점기라는 한계가 있었지만 ‘조선 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져다주었다. 이에 따라 식자층을 중심으로 조선 문화에 대한 애착심을 통해 민족성을 고양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였다. 나아가 ‘조선 문화 답사’라는 의미가 담긴 탐승단을 구성하여 직접 답사를 떠나는 경향이 점차 확대되었다. 1930년대는 『삼천리(三千里)』가 이와 같은 역할을 이어 갔다. 『삼천리』는 창간호에 ‘전 조선 문사 공천 신선 반도 팔경 발표(全朝鮮文士供薦新選半島八景發表)’라는 특집을 마련하고 금강산·대동강·부여·경주·명사십리·해운대·백두산·촉석루를 조선 팔경으로 선정하였다. 이어 1940년대에는 『반도 산하(半島山河)』라는 책을 발행하였다. 이 책에서는 ‘승경(勝景) 팔경’과 ‘사적(史蹟) 팔경’을 선정하고 기행문을 실음으로써 조선 산천의 아름다움을 관광하는 탐승의 기회를 확대해 갔다.

이와는 달리 일제는 강점 직후부터 식민지 지배 정책의 일환으로 관공서에서 관광단 또는 시찰단을 조직하여 비교적 산업 시설을 잘 갖추었거나 발전한 지역을 견학하였다.97)이에 대해서는 김정훈, 「‘한일 합병’ 전후 국내 관광단의 조직과 그 성격」, 『전남 사학』 25, 전남 사학회, 2005를 참조할 것. 특히 3·1 운동 이후 문화 정치(文化政治)를 표방하면서 일본 관광단 파견은 더욱 강화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방 관리의 주요 업무 가운데 하나가 관광단의 조직일 정도였다.

일본인의 식민지 관광은 육지와 섬이라는 지리적 환경으로 인하여 선박을 이용해 부산과 인천으로 들어와 철도로 조선과 만주까지 여행하거나, 금강산, 동래 온천, 신라의 고도 경주 등지를 관광하고 평양 기생의 기예를 즐겼다. 그리고 1914년에 이르러 호남선과 경원선이 개통되어 조선 전역이 철도로 연결됨에 따라 일본인들은 좀 더 편리하게 식민지 조선을 여행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식민지 조선은 일본인들에게는 ‘새로운 일본’ 곧 신내지(新內地)로 편안히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인식되었다.

이와 더불어 일본인의 식민지 조선 관광을 위해 조선 총독부 철도국에서는 『조선 철도 노선 안내』, 『호남 지방』, 『서선(西鮮) 지방』, 『연선 안내(沿線案內)』, 『조선 철도 여행 안내(朝鮮鐵道旅行案內)』, 『조선 철도 여행 편람 (朝鮮鐵道旅行便覽)』등 관광 안내서를 보급하였다. 이 밖에도 『사계의 조선(四季の朝鮮)』, 『조선 만주 여행(朝鮮滿洲旅行)』, 『조선의 여(朝鮮の旅)』, 『금강산』, 『조선의 도시(朝鮮の都市)』, 『경원선 사진첩(京元線寫眞帖)』, 『경성과 금강산(京城と金剛山)』 등 다양한 여행 안내서를 간행하였다. 그뿐 아니라 조선 철도 협회에서는 기관지 『조선 철도 협회 회보』를 통해 관광지를 소개하였다. 이와 같은 여행 안내서를 통해 독자들은 상상력의 날개를 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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